
[울산저널]김형균 기자= 세계 1위 ‘K-조선’의 명성 이면에 이주노동자 인권문제가 드러났다. 지난 11월 7일 울산시청 시민홀에서 열린 ‘울산지역 조선업 종사 이주노동자 인권증진 토론회’에서는 화려한 수주 실적 뒤에 가려진 이주노동자들의 참혹한 인권 실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날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정부의 E-7-3(숙련기능인력) 비자가 사실상 '강제 노동'을 구조화하는 덫이 되고 있다며 HD현대중공업 등 대기업은 '밥값 차별'과 같은 반인권적 행태로 이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단순한 인권 문제를 넘어, 울산 조선업 전체를 '수출 시한폭탄'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이미 울산 동구 지역 사회는 급격하게 늘어난 이주노동자에 대한 행정 공백이 한계에 다다랐다 고 한목소리로 경고했다.
덫이 된 E-7 비자, "이곳은 현대판 강제 노동 수용소"
이날 발제를 맡은 김현주 울산이주민센터 센터장 은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 특히 E-7 비자의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E-9(고용허가제) 비자 역시 사업장 변경이 어려워 문제가 심각하지만, E-7(숙련기능인력) 비자는 이보다 더 심각한 '강제 노동'의 족쇄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E-7 이주노동자들은 조선해양플랜트협회 같은 민간 기업 협회를 통해 입국하는 과정에서 1인당 1500만 원에서 3000만 원에 달하는 막대한 송출 비용과 빚을 지게 된다.
문제는 이 빚을 갚아야 하는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사업장을 단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다는 점이다.
김 센터장은 "이것이 바로 강제 노동"이라며, "E-7-3 광역형 비자는 지자체에 최저임금만 주고 각종 규제를 피할 수 있게 해주는 '만능형 비자'로 악용되고 있다" 고 지적했다.
HD현대중공업의 두 얼굴: '밥값 차별'과 '기만적 사직'
대기업의 인권 침해 실태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특히 HD현대중공업은 내국인 노동자와 달리 이주노동자에게만 거액의 '밥값'을 공제하는 차별적 행위를 자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현주 센터장은 "현대중공업은 단체협약에 따라 모든 노동자에게 30일 세 끼 밥을 무료로 제공함에도, 유독 직접 고용한 이주노동자에게만 50만 원이 넘는 돈을 밥값으로 갈취하고 있다" 고 밝혔다.
김 센터장은 "회사는 이미 2023년에 폐지된 고용노동부의 '숙식비 공제 지침'을 핑계로 삼았으나, 이는 명백한 동문서답이며 차별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로 인해 일부 이주노동자들은 돈을 아끼기 위해 밥을 굶었고, 올해 초 한 노동자는 10kg 넘게 살이 빠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기만적 사직 강요' 사례도 고발됐다. 강미솔 변호사(희망법)는 HD현대중공업에 E-7-3 비자로 근무하던 스리랑카 노동자 2명의 부당해고 사건을 소개했다. 이들은 팀장으로부터 "다른 회사 가도 된다"는 잘못된 안내를 받고 사직서를 제출했다가 E-7-3 비자 자격을 상실, 순식간에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했다.
강 변호사는 "회사는 E-7-3 비자 노동자가 자발적 사직 시 이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하고 사직서를 수리했다" 며, 이는 명백한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 임에도 울산지방노동위원회는 통역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채 이들의 구제 신청을 기각했다 고 비판했다.
"강제 노동 선박, 미국·EU 수출길 막힐 수도"

이러한 인권 침해는 단순한 노무 문제를 넘어, 울산 조선업의 '수출길'을 막을 수 있는 경제적 시한폭탄으로 지목됐다.
윤선영 이주인권셋 대표(전 국가인권위 이주인권팀장)는 막대한 빚에 묶여 사업장 이동조차 못 하는 E-7 노동자들의 현실은 국제법상 명백한 '노동력 착취 인신매매'에 해당한다고 경고했다.
윤 대표는 "미국은 매년 인신매매 보고서(TIP)를 발간하며,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금지한다" 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은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을 근거로 한국산 소금의 수입을 금지한 바 있다.
그는 "만약 HD현대중공업이 만든 선박이 '강제 노동'의 산물로 지정된다면, 미국과 EU 등 주요 시장에서 수입 금지 조치를 당할 수 있다" 며, 미국이 이런 사건을 악용하여 무역분쟁의 도구로 삼을 경우 이는 울산 경제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계에 다다른 울산 동구: "이주민은 쏟아지는데, 행정은 공백"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이 바닥을 치는 동안, 이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울산 동구 지역 사회는 행정적·재정적 한계에 부딪혔다.
김정아 울산 동구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장은 "동구의 이주민 수가 3년 새 2000명에서 8000명으로 3배 이상 급증했지만, 동구청은 이들이 언제 몇 명이나 들어오는지 사전에 전혀 협의받지 못하고 있다" 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동구청의 재정 상태다. 김 센터장은 "지방 세수가 급감해 공무원 임금 책정도 못 하는 실정 "이라며, "이주노동자 지원을 위한 인력과 예산, 지원 시설을 확충할 여력이 전혀 없다" 고 토로했다. 저임금 이주노동자 유입은 지역 상권 회복에도 기여하지 못하고 , 문화적 괴리감과 행정 공백 속에 지역 사회의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대안은 무엇인가: "공공성 강화와 차별금지"
참가자들은 'K-조선'이 인권 유린이라는 오명을 벗고 지속가능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첫째,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비자 타입과 상관없이 강제 노동의 근본 원인인 사업장 이동 제한을 철폐해야 한다.
둘째, 민간이 아닌 공공이 도입을 책임져야 한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 등 민간에 맡겨진 도입·운영을 정부가 직접 관리하여 송출 비리와 브로커 문제를 근절해야 한다.
셋째, 대기업의 과도한 특혜를 중단시켜야 한다. HD현대중공업 등이 저임금 이주노동자를 직고용하는 것은 '과도한 특혜' 라며, 내국인과 동일한 임금과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넷째, 지역 거버넌스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울산시, 기업, 지자체가 참여하는 '지역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건설산업기본법과 같은 '조선산업기본법'을 제정하여 제도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날 토론진행을 맡았던 이선이 노무사는 “이주노동자의 증언을 들으면서 사실 되게 좀 너무 충격적이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고 말하며 “자료집에 쓰여진 ‘이주노동자의 몫소리들’을 보면서 이주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사회는 우리의 몫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김현주 센터장은 "피해를 입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일괄 구제가 전제돼야 한다"며, "모든 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될 때 K-조선도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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