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각자 자신의 삶에 찾아온 변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의 아버지입니다. 학력고사와 수능으로 대학을 결정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학기 내내 출제되는 수행평가를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지며 예전 대학에서 받던 교육이 고등학교 과정에 추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AI가 몰고 오는 거대한 변화
사람·업종 예외 없이 무차별적
남의 일로 여겼다간 늦을 수도

수행평가 과제를 살펴보면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과 연관된 책들을 읽고 요약하던 예전 독후감 수준이 아닙니다. 특정한 주제에 대해 논지를 밝히고 자신만의 관점을 더해나가는 것이 과제로 나옵니다. 연관된 뉴스 기사나 저술 등을 레퍼런스로 참조하도록 요구해 마치 작은 논문을 쓰는 것 같습니다. 꾸준히 창의적 사고를 만들어온 사람이라면 할 수 있겠지만, 대학에서도 그런 훈련을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부모의 도리임을 알지만, 대학 입시에 낙오하지 않으려면 아이가 지쳐 과제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내는 현실적인 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결국 밀린 과제에 시작조차 엄두를 못 내는 자녀를 보다 못한 그는 챗GPT의 도움을 받길 권했다 합니다. 경쟁의 우위에 서기 위해 AI까지 동원되는 현실을 보며, 예전 떡을 썰던 한석봉의 어머니가 떠올랐지만 차마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국경을 넘어 일하게 된 전문가 이야기입니다. 다양한 경험을 쌓아 온 그는 최근 큰 다국적 기업과 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받은 계약서가 무척이나 두터운 문서였다는 것입니다. 규모가 큰 기업답게 온갖 안전장치를 잔뜩 넣은 수십 페이지의 계약서는, 한국어로도 어려운 내용을 영어로 채워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고 토로했습니다.
계약 금액도 크지 않아 검토를 위해 법률회사에 의뢰하는 것은 투자 대비 효과가 낮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불공정함을 알아도 그 위세에 눌려 서명했을 터이지만 그의 이번 선택은 달랐습니다. e메일의 첨부파일을 AI 서비스에 넣자마자 계약서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한 답변이 출력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AI는 답변의 마지막에 불공정한 조항의 수정을 요구하는 영문 e메일도 원하면 만들어주겠다 했습니다. 그는 ‘부탁한다’는 프롬프트로 얻은 수정 계약서를 다운로드 받아 바로 그 회사에 보냈다 했습니다. 모든 일을 10분 안에 처리했다는 그의 이야기에 최근 로스쿨에 진학했다는 다른 지인의 자제가 걱정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예전 강연장에서 만났던 창업가 이야기입니다. 대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맡아오던 그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AI 기반 동영상 생성 시스템의 비약적 발전에 매료되어 기업의 광고영상을 만드는 사업을 창업했습니다.
예전 광고는 주로 TV를 통해 방영되었습니다. 그 시절 광고를 송출하기 위해 지불하는 매체비도 상당히 큰 액수라 광고 제작비 역시 적지 않았습니다. 배경 세트 제작 비용과 유명 모델의 개런티, 그리고 특수효과를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영상 제작비로 수억 대의 금액을 지불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이제는 다매체 시대로 접어들며 제작 콘텐트의 개수가 늘어나 편당 제작비에 많은 예산을 넣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최근 AI가 영상 생성을 해내기 시작하며 낮은 비용으로 영상을 만드는 일이 가능해지자 많은 고객사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합니다.
예를 들어 스타의 예전 모습을 특수효과로 재현해내는 광고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AI를 기반으로 같은 효과의 영상을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이 그 10분의 1에 불과했다 합니다. 뿐만 아니라 특수효과를 위해 한 달 이상 걸리던 작업이 불과 며칠 만에 가능했고, 수정사항 또한 하루 만에 반영할 수 있어 금액뿐 아니라 속도로도 우위에 서게 되었다 그는 설명했습니다.
한 달도 안 된 시간 동안 학생과 학부모, 전문직 프리랜서, 직장인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이들로부터 새로운 경험을 듣게 되자, 문득 든 생각은 ‘무언가 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은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업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다가오는 속도는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일화들의 엮임이 가리키는 교훈은 AI로 인한 변화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일의 단계를 가리지 않고, 업종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남의 일로만 생각하면 조금 늦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동시에 모든 이에게 변화의 징조가 찾아온다면 무언가 큰 것이 온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느끼고 계신지요?
무언가 오고 있습니다.
결코 작지 않은 것이 말입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