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캔슬링’과 ASMR : 소음과잉, 소음도피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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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캔슬링’과 ASMR : 소음과잉, 소음도피의 시대

Sound and Noise : Noise-Canceling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140), 2024.11.6,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웹에서 보기 Web link

키워드: ASMR, 노이즈캔슬링, 소음, 신호, 공동체

1.머리말

2.소음에서 도망치고 싶다 : 도시와 사운드스케이프

3.'소음'과 '신호'의 차이는 뭘까?

4.연결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 고래의 노래

5.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연구자님은 ‘노이즈캔슬링’을 아시나요?

노이즈캔슬링(noise-canceling)은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기술인데요, 1980년대에 군사 기술로 발명됐지만 저렴한 이어폰에도 적용될 정도로 점차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최근 MZ세대 사이 특히 인기를 얻고 있으며, 2021년 기준 시장 규모는 131억달러(약 17조2000억원)인데 2031년엔 무려 451억달러(약 57조7000억원) 규모의 시장을 이룰 것으로 예측됩니다. (링크)

아무리 주변이 시끄러워도 노이즈캔슬링 이어폰만 끼면,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만의 공간’에 들어온 기분이랄까요.

피로감에 시끄러운 노래 대신 잔잔한 장작소리나 시냇물 소리 등 ASMR*을 듣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 주로 청각을 중심으로 하는, 정신적 안정감을 주는 소리를 뜻합니다. 의미가 없는 메시지나 배경음, 반복되는 소리 등이 주를 이룹니다.

각종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청각의 여유’를 느낄 수 있게 되었죠. 마치 캡슐 안에 홀로 앉아있는 것처럼요.

노이즈캔슬링 에어팟 선전. 여성이 귀에 에어팟을 꽂자 도로에 있던 '시끄러운 차, 공사현장, 사람들, 행진 행렬'들이 일순간에 공중으로 떠오르고 길에는 여성 한 사람만 남습니다. (왼쪽·영상) 넷플릭스의 ‘불멍’ 벽난로 ASMR 영상. 겨울시즌엔 인기 동영상 순위에 들 정도로 호응이 뜨겁습니다. 지난달 31일, 음악을 감상용보다는 '소음차단용' '공부용 배경음'으로 듣는 사람들을 위해 닌텐도는 음악 전용앱을 런칭하기도 했는데요(링크) 이 앱에서는 음악을 '느낌'과 '시간(15분 30분...)'에 따라 골라 들을 수 있습니다. / Apple, Netflix

한편, 이런 ‘해결책’을 보며 곰곰 생각하게 됩니다.

귀를 막아도 소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과연 무엇이 ‘없애야 마땅한 소음’이고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도 알쏭달쏭한 일입니다. 예를 들면 거리를 걷다가 차소리(‘신호’)를 제대로 듣지 못하면 위험해지기도 하니까요. 어떤 이들은 여전히 '노이즈'를 완벽히 '캔슬'할 수 없고요.

분명 오늘날 소음은 문제입니다. 하지만 과연 소음을 개인적으로 막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될까요? 우리는 중요한 것들 역시 덜 듣게 되는 게 아닐까요? 우리가 소음을 조금 다른 차원에서 살펴볼 수는 없을까요?

오늘 편지에서는 <사운드스케이프>(머레이 쉐이퍼)와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데이비드 조지 해스컬)를 지팡이 삼아 ‘노이즈캔슬링’과 소음에 대해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소음에서 도망치고 싶다 : 도시와 사운드스케이프】

근래 조금 엉뚱한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비 오는 날을 정말 좋아하는 편인데요. 근래 비가 내린 날 창문을 열어두고 행복하게 책을 읽던 중,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참다가 결국은 고개를 저으며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머리에 썼습니다. 그리고 별 생각 없이 재생목록에 있던 ‘음악’을 아무거나 틀었는데, 하필 그게 바로 빗소리 ASMR이었죠. 비 오는 날 굳이 귀를 막고 빗소리를 듣는 묘한 상황이랄까요.

빗소리는 똑같은데, ‘소음’만 말끔하게 삭제된 것같아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

오늘날 소음에 짜증과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 사이 ASMR이 유행입니다. 연구자님들 가운데서도 일을 할 때 장작소리나 빗소리, 잔잔한 카페소음 같은 것을 배경음으로 틀어놓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이런 ASMR은 몇 년 전만해도 독특한 ‘뉴트렌드’로 여겨졌지만, 아예 유튜브에도 별도의 카테고리가 생길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죠.

이를 포괄하는 더 큰 단어가 있습니다.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라는 건데요.

사운드스케이프는 풍경(Landscape)과 소리(Sound)가 합쳐진 단어로, 우리 말로는 ‘소리풍경’이라고도 적어볼 수 있을텐데요. 우리가 일상에서 내는 모든 소리와 자연의 소리 등을 합친 개념입니다. 새가 짹짹거리는 소리부터 빗소리, 기차 소리, 사람들이 떠드는 말소리, 음악, 오토바이 소리 등이 모두 포함되죠.

'사운드스케이프' 개념을 대중화한 캐나다의 작곡가, 작가 머레이 쉐이퍼(1933~2021·링크). 종이에 적힌 'Listen'이라는 말처럼, 그는 '귀 기울여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왼쪽) 머레이 쉐이퍼가 그린 한 시골 동네의 '사운드스케이프' 지도. 바람소리, 나무 소리 등이 상세하게 그려져있습니다. / 단편영화 (링크), The Art of Sound and Noise

캐나다 작곡가 머레이 쉐이퍼가 쓴 음향학의 고전 <사운드스케이프>(1977)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소리’의 측면에서 곰곰 뜯어본 책인데요.

이 두꺼운 책의 메시지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고유의 소리 풍경(사운드스케이프) 속에 살아왔다. 하지만 오늘날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소음이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아주 혼란스러워졌다! 우리는 소리 풍경을 개선, 유지해가야 할 것이다”

조금 알쏭달쏭 할 수 있습니다만, 요는 엉망진창 속에서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더 쾌적하고 즐겁게 ‘들으며’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거죠.

반 세기 정도 이전의 책이지만, 너무 많은 소음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더 많이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늘 함께 읽어보려고 가져와보았습니다.

*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부분은 ‘도시와 소음’과 관련된 내용이었는데요. 크게 두 가지 키워드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도시, 소음의 시대 = 산업화·도시화는 소음을 함께 가져왔다

2. 소음 피하기의 시대 = ‘싫은 소음’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1.우선 ‘도시, 소음의 시대’와 관련해서 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과거 농경사회 마을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적당한 크기의 공동체 안에서 필요한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아예 한 동네는 ‘웅변가 한 사람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규모’ 만큼만 조성되기도 했고, 원형 모양으로 만들어져 효율적으로 서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은 거의 드물었지만 - 만약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린다면(“늑대가 나타났다!”), 그건 재빨리 대처해야 할 위험이나 손님의 방문 등 특별한 ‘이벤트’를 알리는 것이었죠.

즉, 어떤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기의 ‘쓸모’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골은 도시보다 [...] 주위가 조용하기 때문에 매우 먼 곳의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다. 도시에서는 이렇게 먼 곳의 소리를 듣는 능력을 잃어버렸고, 이는 지각의 역사에서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이다 [...] 주위가 조용한 하이파이 사운드스케이프*에서는 조그만 사물의 소리조차도 생생하게 흥미로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마차 안에서 들려오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생각에 잠겨 있는 그의 마음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그것은 지붕 위에서 빙빙 돌고있는 풍향계의 소리였다. 바람의 방향이 이렇게 변한 것은 큰 비가 내릴 전조였다’ 인간의 귀도 동물처럼 예민하다 [...] 괴테는 풀밭에 귀를 기울였다 [...]

가장 가까운 것으로부터 가장 먼 지평선까지, 귀는 지진계에 맞먹는 감도를 가지고 작동하고 있다. 인간이 주로 혼자서 혹은 작은 공동체에서 생활했던 때, 소리는 붐비지 않았고 오히려 깊은 정적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양치기나 나무꾼, 농부들은 환경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단서로 그러한 소리를 어떻게 읽어내면 좋을지 알고 있었다.

(*하이파이Hi-fi 사운드스케이프 = 환경소음 레벨이 낮고, 개개의 소리를 명확하게 들을 수 있는 상황. ‘로우파이Lo-fi 사운드스케이프’는 이의 반대, 주로 대도시는 로우파이 환경에 처해있다.)

-머레이 쉐이퍼, <사운드스케이프>(이하 동일)

하지만 오늘날 도시 사람들이 일일이 큰 소리에 깜짝 놀라면 하루 종일 깜짝 놀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깜짝 놀라기만 하고 나에게 아무런 의미나 신호를 주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은 ‘쓸데없는 소리’들이 급격하게 늘어납니다.

과거엔 기껏해야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가 “망치질하는 소리” 정도였지만, 기차 소리, 공장의 무자비한 기계 소리, 마차 소리 등 훨씬 큰 소리들이 일상화되기 시작하죠.

윌리엄 호가스, <분노한 음악가The Enraged Musician>(1741). 도시화가 진전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거리의 악사, 마차 등 거리 소음이 큰 갈등을 만들어 냈고, 많은 '소음 규제'(↔'허용된 소음'Sacred Noise)들이 생겨났습니다. 도시화의 역사가 곧 선택적 소음 규제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런데 통상 이처럼 규제되는 소음들은 주로 엘리트계층의 불만이 중심이 되었고(실제로 판화에서 귀를 막고 있는 이는 실내악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빈곤층과 노동자들은 공장, 철길 등의 소음을 고스란히 감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왼쪽) SF 작가 휴고 건스백이 1925년 한 잡지에 소개한 발명품 헬멧 '아이솔레이터isolator'.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산소호흡기를 연결해 작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15분 정도 착용하면 졸려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이 제품의 특허를 냈지만 단 11개가 팔렸다고 합니다. / wikipedia

많은 사람들은 막대한 ‘소음공해’에 시달리기 시작했죠. 18세기 대도시의 거리 소음이라든지 층간 소음은 많은 사람들을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거리에서 들려오는 마차, 마부의 채찍소리 등과 관련해 아래와 같이 분통을 터트렸죠.

“삐걱대는 마차 바퀴 소리는 말로 다하기 어렵다. 그것은 우리가 이제까지 들었던 소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당신의 피를 일순간에 얼어붙게 만드는 소리인 것이다...그것은 완전히 지옥의 소리다(쇼펜하우어)”

“이것은 인생에서 모든 정적과 사려思慮를 빼앗는 잡음이다...이 철썩하는 소리(마부의 채찍 소리)는 갑자기 날카롭게 울려 두뇌를 마비시키고 일체의 사려를 못살게 굴며, 사상을 죽인다(블랙모어 경)”

“이 편지를 쓴 사람들은 예술, 과학 분야의 교수 및 실천자들입니다. 우리들은 인류의 평화와 즐거움에 전념하는 일에 헌신하려 하고 있습니다만, 길거리 음악가들에게 날마다 방해를 받고 괴로워해, 불안해지고, 피곤하고, 거의 미쳐버릴 것만 같은 상태에 이르러 있습니다...”

이런 분노를 보고 있자면, 오늘날 층간 소음이나 거리 소음으로 화를 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아무리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지만, 인간의 섬세한 귀는 맥락 없는 요란한 소음에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북적이는 거리 소음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것은 철도가 오가는 지역 주민들이나 엄청난 소음 속에서 일해야 하는 공장 노동자들의 경우였습니다. 당시 부자들은 교외에 살았지만, 대도시에는 일자리를 위해 주로 비좁고 불쾌한 소음, 악취 환경에서 빈곤층이 모여 살았습니다.

*

2 .소음에 괴로워하던 이들은, 이후 테이프레코더, 축음기 등의 기술이 발전되자 어떻게해서든 소음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그 일환으로 저자는 20세기 초에 나타난 ‘무자크Moozak’1)라는 상업 배경음 서비스를 언급합니다. 무자크란 단지 소음을 그럴듯하게 얼기설기 뒤덮기 위해 대충 연주되는 ‘소리 벽Sound wall’ ‘배경 음악’같은 것인데요.

딱히 연주자나 연주곡이 전혀 중요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들을 수 있는 음악이요.

이런 음악은 통상 ‘엘리베이터 음악’ ‘쇼핑몰 배경 음악’ 등으로 불리기도 하면서 1930년대 이래 수십 년 간 큰 수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뮤자크는 음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 심리학적인 계획 - 시간과 공간을 위해서 - 스위치를 켜는 것만으로 - 부수 기계는 불필요 - 매일 신선한 프로그램 - 반복이 없는 … - 사무실, 공장, 은행, 병원, 소매점, 호텔이나 모텔, 레스토랑, 전문가의 사무실에서 - 음악을 심리학적, 생리학적으로 응용하는 스페셜리스트입니다’

[…] 음악을 무자크는 배경으로 끌어내렸다. 무자크는 소리를 증식시킨다 [...] 무자크는 들리지 않아도 좋은 음악인 것이다.

저는 이런 대목을 읽으며, 오늘날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배경 음악’ ‘8시간 작업용 음악’ 앰비언스 플레이리스트가 무려 100년 전부터 이미 있었던 굉장히 커다란 수요, 시장이라는 것에 깜짝 놀랐는데요.

Muzak사는 상점, 휴양지, 사무실용 등 이지리스닝 플레이리스트를 전화선을 통해 제공했습니다. '어떤 음악'인지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그리고 그것을 Muzak사가 결정해주었기 때문에) 이처럼 사무실 벽 등에 '다이얼'을 설치해두고 볼륨만 움직여 마치 수돗물을 틀듯 음악을 '틀도록'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왼쪽) 오늘날 유튜브에도 많은 'XX느낌의 배경음악 플레이리스트'라든지 8시간짜리 작업용 (때로 AI가 생성하기도 하는) 배경음악, 앰비언스 등이 과거의 Muzak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reddit(스레드), 유튜브(링크) 갈무리

하지만 머레이 쉐이퍼는 이런 시도에 그렇게까지 긍정적이진 않습니다.

왜냐면 이는 “듣지 않기 위해 듣는” “귀 기울이지 않기 위해 듣는”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런 개인적인 시도는, 오물을 치우기보단 그 위로 향수를 뿌려 코를 속이는 행위라고 고개를 젓죠.

보다 근본적인, 모두를 위한 방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선 '귀를 닫는 것'으론 불가능하다는 거고요.

1) 머레이 쉐이퍼는 <사운드스케이프>에서 'Moozak'라고 표기하지만, 이는 사실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쇼핑몰, 사무실, 휴양지, 백화점 등에 '배경음악'을 서비스한 미국 음악 회사 'Muzak'(링크)를 풍자한 것입니다(링크). 2009년 파산하기 전까지 서비스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서비스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요. 라디오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또 '구체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말, 듣기 위한 음악'들이 아닌 '그럭저럭 거슬리지 않게 들리는 배경음'을 서비스했다는 점에서 라디오와는 다르기도 합니다. (관련유튜브) Muzak는 실제로 오케스트라를 고용해 자체 배경음악을 녹음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오늘날 이런 종류의 음악은 AI로 양산되며 유튜브 및 각종 음원 사이트를 뒤덮고 있기도 합니다.

【3.'소음'과 '신호'의 차이는 뭘까?】

여기까지의 얘기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산업화, 도시화 이전에 사람들은 오랫동안 ‘필요한 만큼의, 감당 가능한’ 소리들을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소리가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은 소음공해에 시달리고 진절머리가 나고 결국 ‘차라리 귀를 닫고 말겠어!’라고 외치게 되죠.

머레이 쉐이퍼는 비록 ‘무자크moozak’같은 것에 얼굴을 찡그리긴 하지만, 도시의 ‘소음공해’ 자체가 문제적이며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엔 동의합니다.

이제, 불필요한 소음만 ‘싹’ 없애버리면 될까요?

그런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대체 그 많은 소리들 가운데 ‘무엇’이 의미있는 신호이고, 의미없는 소음에 불과한지 명확히 구분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

우선, <사운드스케이프>에 따르면 실제 어떤 것을 소음으로 느끼는가는 문화권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소음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지역의 핵심 정체성을 보여주는 시대문화적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저자는 이 책에서 뉴질랜드, 스위스, 자메이카 등 다양한 곳 사람들에게 ‘어떤 소음이 제일 싫어요?’라고 물어봤다는데요.

흥미롭게도 자메이카 사람들은 기계음엔 무관심했지만 대신 동물, 곤충 소리가 ‘지긋지긋한 소음’이라며 화를 낸 비율이 높았다고 합니다. 이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응답이었죠. 또한 ‘문 여는 소리’를 대부분 싫어했지만, 좋아한 나라(캐나다)도 있었습니다. 반가운 손님이 오는 신호라서일까요?

혹은 어떤 도시의 특징적인 ‘소음’은 당대의,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불쾌감을 줄 수 있지만 이후 그 소리가 ‘향수, 추억(노스탤지어)’의 핵심이 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뻥튀기 뻥 소리나 학교 종소리, 소독차 쫓아가는 소리, 노점상, 고등어 트럭 아저씨 소리 등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당시엔 이런 소리에 깜짝 놀라고 화가 나고 낮잠을 깨기도 했겠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주인공은 호송차에서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각별한 ‘소리’들을 떠올립니다.

‘호송차 안의 희미한 어둠 속에서 나는 내가 사랑했던 마을의 모든 특징적인 소리들, 그리고 내가 특별하게 즐겼던 어떤 시간의 소리를 생각해내었다. 이미 누그러진 대기 속에서 신문소년이 외치는 소리, 공원의 새들이 마지막 우짖는 소리, 샌드위치 상인의 외침, 윗마을 가파른 모퉁이에서 들려오는 전차의 삐걱거림, 어둠이 지기 전 부두위로 들리는 하늘의 소곤거림 (...) 그 중에서도 하나가 두드러지게 기억난다 (...) 아이스크림 상인이 거리에서 부는 양철 트럼펫소리, 말의 흐름을 끊는 작고 날카로운 소리를. -알베르 카뮈, <이방인>

만약 이런 소리들을 ‘소음’이라고 모두 귀를 막거나 규제했다면, 그 장소에만 얽힌 독특한 경험, 기억은 남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런 대목을 보며 지난 4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맛있는 젤라또 파는 것을 ‘시끄럽다’는 이유로 심야시간대에 금지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떠오르기도 했는데요.(링크) 젤라또를 구입한 사람들이 광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이를 떠먹으며 떠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소리(소음)’들은 인간이 있다면 반드시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정도를 지키는 건 필요하겠지만, 모든 소음을 없앤다는 건 곧 모든 사람을 없앤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죠.

주택가 소음 민원으로 인해 구급차량의 사이렌 음량이 줄어들고, 각 자동차의 방음 기능 강화로 인해 119 차량이 이송이나 출동 중에 교통사고가 나는 케이스가 최근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기사) 사이렌 소리를 못들은 일반차량들이 119차량을 들이 받는 것이죠. 신호와 소음의 경계는 모호하며 누군가에겐 소음인 것이, 위급한 이들에겐 간절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왼쪽) 이탈리아 밀라노시는 '소음' 문제 해결을 위해 야간시간대 젤라또 등 포장음식 판매 규제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 MBC, getty image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류는 귀로 중요한 '신호'를 듣고 위험을 피하거나, 정보를 얻으며 살아왔습니다. 대표적으론 차가 다가오는 소리(링크), 사이렌 소리, 심상찮은 수군거림, 누군가가 도와달라고 외치는 소리 등이죠.

이 때문에 모든 소리를 없애고 각자가 최신 기술로 각자의 귀를 완전히 막고 다닌다는 것은 애초에 해답이 될 수가 없습니다.

【4.연결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 고래의 노래】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무작정 모든 소음을 참고 귀를 열고서 살아라”는 것은 아닙니다.

‘귀를 닫는 게’ 해답이 아니라, 우리가 ‘사운드스케이프’ 를 쾌적하고 의미있게 가꿔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죠. 모두를 위해서요. 인간은 역사적으로 나쁜 것을 만들기도 했지만 더 나은 것들을 만들어왔습니다. 소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제대로 듣는 건, 풍요를 넘어서 -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신호들에 주목하고 연결을 회복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죠.

*

마지막으로 간단히 펼쳐보고자 하는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Sounds wild and broken>는, 소리풍경을 ‘인간’ 뿐 아니라 ‘생물(동식물 등)’의 세계까지로 넓혀 바라본 책인데요.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소리’와 ’연결’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간단한 얘긴데요. 소리는, ‘소리를 내는 A’와 ‘그것을 듣는 B’ 간의 연결이 필수입니다. 제가 소리를 질러도 듣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즉, 이를 다르게 생각해보면 - 우리 사회에서 소리가 문제가 되는 지점을 곰곰 뜯어보면, 역으로 우리 사회·생태계의 문제를 살펴볼 수도 있겠죠.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이 쓴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 표지 (왼쪽) 소리를 내는 주체가 있다면 그것을 듣는 주체가 있어야 의미를 갖죠. 꼭 특정한 의미를 담은 '말'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면 갑자기 창밖에서 '쿵' 소리가 난다면 '무엇'이 그런 소리를 냈는지 확인하러 가게 됩니다. 이때 '쿵 소리를 낸 것'과 저는 연결이 되어 있는거죠. / 에이도스, Stockimage

*

이 책을 읽으며 제가 흥미롭게 주목한 두 가지 이야깃거리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1. #소음은 평등하지 않다 : 돌고래와 층간소음

2. #모든 소음이 ‘소음’은 아니다 : 소음과 연결, 타인

1. 우선 '소음은 평등하지 않다'는 말에 대해선데요.

우리는 코로나 기간을 겪으며 공간이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됐습니다. 같은 격리 기간이라도 누군가는 개인 소유의 드넓은 정원에서 피크닉을 즐겼지만, 누군가는 5평 공간에 종일 갇혀있어야 했죠.

공간과 마찬가지로 소음 역시 평등하지 않습니다. 삶의 공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취약계층이 일상적으로 소음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죠.

도시의 소음은 고르게 분담되지 않는다. 도시의 소음공해는 일종의 불의다 [...] (소음에 대한) 통제권이 가장 약한 사람들은 종종 빈곤층과 소외된 이들이다.

[...] 도시 소음이 다른 소리경관과 가장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은 빠르기와 예측 불가능한 성격이다. 나는 소음 측정기를 든 채 맨해튼 미드타운을 걷는다 […] 잭해머를 빼면 이중 어느 소리도 예상할 수 없다. 시끄러운 소리는 스트레스와 고통을 가하는데, 폭발음과 타격음이 마구잡이로 들려오는 소리 경관도 그에 못지 않다. 마치 어두운 공간을 걷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손들이 불쑥불쑥 뻗어나와 나를 후려치고 흔들어대는 느낌이다.

[...] 유럽환경청은 질병과 조기 사망의 환경요인으로서 소음이 미립자 오염물질에 이어 두번째이며 연간 1만2000건의 조기 사망과 4만8000건의 심장병 신규 발병을 일으킨다고 추정한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이하 동일)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도심지역의 거리 소음을 크게 줄이는 효과가 있는 '도시숲' 면적엔 지역별로 빈부격차가 크고요.(기사) 최근의 고급 아파트 단지들은 아예 '빗장' 안에 널찍한 정원, 녹지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풍력발전소, 고속도로 등 인근의 주민들은 막대한 소음에 고통받아왔고요(기사). '쪼개기' 방식의 불법 건축 고시원은 사실상 '벽간 소음'이 일상입니다.(기사)

또한, 아무리 ‘노이즈캔슬링’ 기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안전 및 업무 특성, 돌봄 등의 문제로 인해 여전히 귀를 ‘막을 수 없는’ 이들도 아주 많습니다.

과거 2000년대 BOSE사가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홍보할 때, 광고는 대체로 비행기 비즈니스석에 앉은 중상류층 백인 남성 비즈니스맨들을 타깃으로 해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요.2)

꼭 헤드폰 값이 비쌌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누군가의 신호를 받아들일 필요도, 누군가에게 도움의 신호를 보낼 필요도 없이 - 자신의 시공간을 오롯이 홀로 이용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가 있는 이들이었죠.

다닥다닥 붙어있는 고시원 방들. 현재 벽간소음 관련 규정 및 관련 통계도 존재하지 않으며 고시텔, 원룸의 소음 관련 시공 기준도 없다고 합니다. (왼쪽) 시추선과 대형선박, 공사현장 등의 소음 진동이 늘어나면서 돌고래들이 '소리를 질러야만' 소통을 할 수 있게 되며 이상 현상이 나타납니다(링크). 한편 최근 AI로 인해 폭증한 수요로 인해 국내외 '수중 데이터센터' 건설이 앞다투어 추진되고 있다고 합니다(링크). 과연 이는 수중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게될까요. / 경향신문, Dolphins and you

그런데 과연 이는 도시, 인간만의 문제일까요?

이 책에서 제일 엉뚱하고 흥미로운 지점은, 도시 소음에 시달리는 약자들을 바다 소음에 시달리는 돌고래에 비유한 대목입니다.

돌고래 등은 물 속에서 온몸으로 다양한 신호를 보내고 또 받으며 교류하는데요. 인간의 난개발로 인해 바다 생태계에 악영향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죠. 돌고래 등 수중생물들 역시 ‘층간소음’(링크)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오롯이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 속에서는 소리가 빠르고 멀리까지 이동한다. 뭍에서와 달리 소리 에너지는 간섭받지 않은 채 동물의 몸속으로 흘러든다. 바닷속의 소리들은 속속들이 퍼져있으며 바닷속 생물들은 이 소리를 속속들이 느낀다 [...] 오늘날 바닷물은 엔진 소음, 음파탐지기, 탄성파로 소란하다. 인간이 뭍에서 벌이는 활동에서 발생한 퇴적물이 물을 뿌옇게 흐린다 [...] 고래는 먹잇감의 위치를 알려주는 반향정위 펄스를 듣지 못하고, 번식기 물고기는 소음과 혼탁의 와중에 짝을 찾지 못하고, 갑각류는 인간 오염 물질의 안개 속에서 화학적 메시지와 음향적 실타래를 놓쳐 사회적 유대가 약해진다 […] 우리의 소리와 탐욕이 커질수록 우리는 다른 살아있는 음성들을 침묵케 하고 바다의 다양성과 진화적 창조성을 훼손한다.

[...] 도시에서 감각을 침범당하는 느낌과 불쾌감은 ‘파도 밑에 사는 우리 친척’과 [...] 다른 종을 공감적으로 이해하는 소통의 문이다. 소리의 폭력에 잠긴 나는 달갑지 않은 진동, 낯선 에너지에 밤낮으로 온몸이 후들거리는 고래다.

이어 저자는 듣기 좋게 만들어놓은 ‘고래 노래 ASMR 음반’과 ‘진짜 고래 노래’의 차이를 강조하며, 우리가 안온함만 좇을 게 아니라 ‘진짜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진짜 현실’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되니까요.

현재의 ‘고래 소리’ 음반과 자연 다큐멘터리 사운드트랙은 소음을 피하고 제거하기 위해 신중하게 녹음되고 편집된다. 온라인 음반 매장에서 ‘고래 소리’를 검색하면 이완, 수면, 고요한 명상, 이명과 스트레스 완화, ‘전일적’ 치유 등을 약속하는 수백장의 앨범이 뜬다. 혹등고래가 스타인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향유고래의 폭발적인 반향정위 펄스에 몸이 강타당하고 근육이 마비당하면서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말이다. 이 음반들에 담긴 “진정한 자연의 소리”에는 진짜 고래를 있는 그대로 경험할 수 있는 굉음과 불협화음이 빠져있다 […]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의 감각은 친숙함과 예측 가능성에 위안을 받는다. 바깥 세상의 감각적 극단과 변덕을 막아줄 보금자리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보편적 인간 욕구다 […] 하지만 산업의 위력은 이 완충 작용의 효과를 완벽하게 끌어올리느라 오히려 단절을 일으켜 감각 경험과 인간 윤리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훼손한다.

*

2. 이어, 모든 소음이 반드시 ‘소음’은 아닙니다.

머레이 쉐이퍼는 <사운드스케이프> 서문에서 “소음이란 듣지 않도록 배운 소리Noises are the sounds we have learned to ignore”라는 유명한 정의를 내놓는데요.

앞서도 언급했듯 소음과 신호를 가르는 기준이 모호하고 - 물론 지나친 소음은 막아야겠지만, 모든 소리는 삶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주로 어떤 소음이 ‘규제해야 하는 소음’인지의 판단(및 실제 규제)은 그간 주로 엘리트, 권력층에 의해 결정되기도 했죠.

소리는 우리를 타인의 삶에 연결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감각 경험에 대한 통제권을 일부나마 그들에게 내어주어야 한다 [...] 이웃 간의 관계가 건강한 동네에서는 소리가 집과 집의 경계를 넘어 흘러도 대개는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우리는 공동체의 소리를 참아주며 때로는 즐기기도 한다. 문제가 생겨도 이튿날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직접 만나 대화로 해결한다. 하지만 불화로 반목하는 동네에서는 소리가 더 큰 적대를 낳을 수 있다 […] 집값이 오르고 백인이 들어오면서 (웨스트할렘 지역의) 소음 민원이 급증했다. 인도에 접이식 탁자를 펼쳐놓고 도미노를 하면서 라디오를 쩌렁쩌렁 틀어두거나 아이들이 폭죽을 터뜨리는 수십년된 관습은 새로 이주한 백인 주민들에게 탐탁치 않다 […] 런던의 채플 마켓에서는 개축 아파트에 새로 입주한 사람들이 고함 소리 - “사과 세개에 1파운드요!”-와 이른 아침부터 덜컹거리는 외발 수레에 대해 불평한다.

어느 장소에서든 달라진 것은 동네의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의 욕망과 요구다. ‘소음’에 대한 인식은 권위자에 대한 청원을 통해 무기가 되어 현지인을 몰아내고 신규 입주민을 우대한다.

다수의 학자들은 도시 주거지역 소음 문제는 당연하게도 건축의 문제인 동시에,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오랫동안 강조해왔습니다.3)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소음 문제’가 이토록 큰 이슈가 되고 있다는 건,

‘소음’이 엉망진창으로 많다는 현실과 별개로도, 오늘날 지나치게 우리가 “듣지 않기로 결정한 소리”가 많다는 현실 - 수많은 연결이 죄다 끊겨있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

“뿌리뽑히고 산업화된 우리 세상에서 아름다움은 속임수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행동이 낳은 결과로부터 감각을 고립시켜 (우리가 직접 자각할 수 있다면 갸우뚱할지도 모르는) 추함을 바탕으로 유쾌한 경험의 거품을 만든다.” -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

2) Hagood, Mack. “Quiet Comfort: Noise, Otherness, and the Mobile Production of Personal Space.” American Quarterly 63, no. 3 (2011): 573–89. (링크)

3)글 속 한문장 기사(“층간소음은 소음문제? 관계문제?”)를 참조해주세요

【5.맺음말】

오늘 편지는 쓰면서 개인적으로도 많이 갸웃하게 되기도 했고 반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저야말로 이어폰에 의지해 ‘소음’을 차단해왔던, 비 오는 날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끼고 빗소리 ASMR을 듣던 도시 사람이니까요. 갑자기 내일부터 영영 귀에 든 이어폰을 빼고 '모든 소음'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로 살아갈 자신도 없습니다. ('챌린지' 정도는 가능할지 몰라도요)

다만, 이번 레터를 쓰면서 한가지 희망과 위안을 얻었다면 -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삶과 관련 없는, 맥락이 희미한 과도한 '소음'에 괴로워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는 것입니다.

*

오늘 살펴본 책에서 저자들은 당장 이어폰을 빼고 모든 사람, 생명과 연결되고 모든 소리를 곧이곧대로 들으라고 꾸중하진 않습니다.

다만 저자들은 도시에서의 소음이 우리가 차마 받아들이긴 어려울 정도로 심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진짜 현실'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강조하죠. 그것은 우리가 때론 소음을 견딜 수 없을 땐 '도피'하더라도, 결국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사려깊고 풍부하게 듣고, 연결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을 통해 가능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소음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으니까요.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은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의 종장에서 말합니다.

"나머지 존재들과 달리 우리 인간에게는 통제 수단이 있다. 우리는 다른 소리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 고래는, 숲은, 새들은 그럴 수 없다."

*

앞으로는 어떤 소리가 ‘소음’으로 여겨져 당장 귀를 막고 싶어질 때,

주위를 막고 예상가능하고 편안한 소리에만 머무르고 싶어질 때 한번쯤 곰곰 생각해보려 합니다.

과연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듣기’를 통해 내가 연결되는 곳은 어딘지에 대해서요.

✏️

"세상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항상 진행되는 거대한 음악 작품입니다...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 거대하고 기적적인 작곡의 작곡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개선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소음을 더할 수도 있고, 더 아름다운 소리를 더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머레이 쉐이퍼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머레이 쉐이퍼, 한명호 외 옮김, 『사운드스케이프 : 세계의 조율』, 그물코, 2008.

-이 책은 꽤 예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절판된지가 오래 됐고 도서관 가운데 소장하고 있는 곳이 별로 없어서 읽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레터를 쓰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중심이 되는 단어들(노이즈캔슬링, ASMR, 사운드스케이프 등)이 지나치게 '트렌디'해서 MZ세대가 아니라면 너무 낯설게 느끼지 않으실까...하는 부분이었는데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런 단어들을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없는데다가, 무엇보다도 이 책(원문)이 1977년에 나온 책이라는 점에 조금 용기를 얻기로 했습니다. 이 책은 정말로 오늘날 읽는 편이 더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ASMR의 유행과 더불어 '사운드스케이프'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도 슬슬 기사 등에서 등장하고 있기도 하고요.

물론 이 책은 대중서적이 아니고, 독자가 음향학적 지식이 있다는 걸 전제하고 쓴 학술서기 때문에 저는 이 책을 '제대로 100% 소화'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 음향 등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 어딘가에서 사운드스케이프라는 단어를 보고 흥미를 느끼신 분들이라면 시도해볼만한 책입니다. (재출간은...불가능하려나요😭)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노승영 옮김,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 에이도스, 2023.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을 보면, '힐링하는 자연'같은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직접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전반적은 느낌은 제목과는 조금 다르긴 합니다. 우리는 흔히 자연의 소리라고 하면 자극적이지 않고, 고요하고, 심신을 치유해주는 - 그런 '안전한' 소리를 떠올리곤 하는데, 실은 열대우림같은 곳은 엄청나게 '시끄럽다'고 하거든요. 다만 도시 상황과 달리 '예상치 못한' 소음이 발생하진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소리에서 불편감을 느끼는 경우는 많지 않고요. 과거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지점을 이번 레터에선 주로 다루어보았습니다(돌고래의 해양소음을 도시의 층간소음에 비유한 대목). 돌고래는 귀를 막을 수가 없죠.

이하 사족이지만, 이번 레터를 마무리하며 과거에 썼던 '좋은 뉴스'(링크) 관련 에세이가 문득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쩌면 오늘 바라본 '소음'과 '신호'의 얘기가 뉴스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사건사고 뉴스를 보는 건 마음이 심란해지고 기운이 빠지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어떤 이들은 '소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 건너편 어딘가의 사람들이 겪는 고난, 산업 재해를 당한 이들의 고통은 누군가에겐 '소음'일 수 있지만, 당사자에겐 절박한 구조 '신호'일 수 있습니다.

카렐 차페크, 이리나 옮김, 『조금 미친 사람들』, 휴머니스트, 2024.

-이 책은 오늘 직접 레터에 쓰진 않았고 주제와 직접적인 연관(?)은 딱히 없지만, 레터를 쓰는 내내 책상 앞에 앉아 때때로 뒤적여본 책입니다.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의 스페인 여행기인데요. 이 여행기를 읽는 독자는 만약 이 책에서 '소음'을 덜어냈다면 얼마나 보잘것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엘 소오오올(el sol)'하며 신문을 파는 헌병옷 입은 신문팔이꾼이라든지, 열정적으로 캐스터네츠를 두드리며 플라멩코 춤을 추며 환호하는 사람들, 투우장의 '소음'들이요.

"기타는 현을 두동강 내듯 귀청을 찢는 음을 쏟아내고, 구경꾼은 소리치기 시작하며 춤추는 사람에게 잔을 건네 건배를 칭한다...베네치아 곤돌라 사공과 나폴리 협잡꾼의 달콤한 목소리와 구애의 말과는 전혀 다르다. 스페인에서는 거칠고 광적으로, 목청껏 지른다. 노래는 일반적으로 사랑의 비통함, 조롱, 질투, 그리고 복수로 채워진다...딱딱거리는 소리와 북소리, 높고 짧게 떨리는 소리...기타 연주자들은 의자에 앉아 앞뒤로 흔들거리며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른다...사파테아르(Zapatear) : 리드미컬하고 열정적으로 발을 구르는 것." - 카렐 차페크, <조금 미친 사람들>

이어 최근 출간된 찰스 디킨스의 <단지 순박한 사람들>(링크)을 재밌게 읽는 중인데, 이렇게 19세기말~20세기초 소설, 산문들을 읽다보면 새삼스럽게 가장 낯설고 어리둥절해지는 점은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너무 마구 떠든다'는 것입니다(예를 들면 어떤 남자가 자기 아이를 때리자 주변에 있던 여자, 노파, 전당포 주인 등이 달려든다든지). 그 때에 비해 오늘날의 도시엔 확실히 사람들이 내는 '소음'이 전반적으로 굉장히 적어졌죠. 조용해서 좋은지는 모르겠습니다.

【글 속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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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고 진절머리나는 도시 소음들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600자

🖍글 속 한 문장

"오늘날 도시 환경에 온갖 것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만큼 소리 또한 그 공간에 가득 차 있고[...]가끔은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지 매 순간 낱낱이 인지하지 못했지만 너무 많은 소리를 듣고 있을 때도 있었고, 소리를 듣지 않았을 때보다 많이 들었을 때 훨씬 더 피곤하다는 것을 분명히 감지할 때도 있었다 [...] 문득 이런 소리를 따로 만들어 듣게 된 이유가 어쩌면 소리에 대한 사람들의 피로감이 한계치를 넘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 개개인이 귀를 막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도 더욱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신예슬 음악비평가가 도시의 사운드스케이프와 ASMR,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엮어 쓴 칼럼입니다. 머레이 쉐이퍼는 '귀를 닫는 것'을 <사운드스케이프>에서 굉장히 경계하지만, 한편 도시 생활에서는 소음이 한계치에 이르렀다는 점을 에둘러 인정하고 있긴 합니다.

필자 역시 '귀높이'라는 행사에 참석해 오늘날 도시에서의 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를 둘러싼 피곤한 소리 환경에 대해 생각을 이어갑니다. 모두가 '고요함'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도 어떻게 개인적 해결이 아닌 사회적 해결, 잘 듣기를 추구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겠죠.

제주의 사운드스케이프 담는 사람

독서시간: 약 10분 / 글자수: 약 6300자

🖍글 속 한 문장

"슬리핑라이언 이용원 대표는 서울에서의 공공기관 생활을 뒤로 하고 ‘생태 감수성’을 찾기위해 제주행 비행기를 탄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의 궁극적은 목표는 본인이 녹음한 사운드스케이프가 화성에 울리는 것 [...] 사실 (창업) 준비를 제대로 한 건 아니다. 그냥 창업할 거라는 다짐을 하고 녹음기 한 대를 샀을 뿐이다. 환경교육을 할 때 보통 말이나 글, 또는 이미지로 설명한다. 그러한 교육을 전달할 때 넘지 못 하는 선, 한계가 있다. 그래서 후각이나 촉각, 미각, 청각과 같은 다른 감각으로 전달하는 것을 고민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환경보전협회에서 근무하다가 '생태감수성'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녹음기를 들고 제주로 간 이용원 대표 심층 인터뷰입니다. 레터에서 아주 자세하게 다루진 못했습니다만 이 인터뷰에 사운드스케이프와 ASMR의 차이 등이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이 인터뷰를 읽으시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녹음을 하러 한 장소에 4~5번 간다고 하는데, 그 중 사라져버린 소리들도 있다고 합니다. 머레이 쉐이퍼는 <사운드스케이프>에서 '사라지는 소리들을 위한 박물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데요. 어떤 장소의 소리는, 장소가 바뀌면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이를테면 서울 염천교 동 수제화 거리가 그렇습니다.(링크)

“저희가 지켜보고 있어요!”라는 외침

독서시간: 약 2분 / 글자수: 약 1200자

🖍글 속 한 문장

“밖에서 한 여성의 외침이 들렸다. 잘못 들었는가 싶었는데 흐느낌 같기도 한 외침이 점점 커졌다. 서둘러 창문을 열었다. 도로변에서 하얀 롱패딩을 입은 한 여성이 겁에 질려 울먹이는 목소리로 “살려주세요!” 하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 신고를 위해 휴대전화를 챙기는데 “저희가 지켜보고 있어요!”라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맞은편에도 오피스텔이 있었는데 거주민 중 한 여성이 외친 목소리였다. 그 말에 구호를 요청한 여성은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흐느꼈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한적한 새벽 도로 위, 여성의 구호요청이 메아리처럼 퍼지는 듯했다. 다시 한 번 맞은편 오피스텔에서 여성이 “여기 지켜보는 사람 많아요!”라고 달랬다. 구호를 외치던 여성의 흐느낌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기자가 실제 경험한 일화를 바탕으로 쓴 짧은 칼럼입니다. 어느날 저녁 집에 있었는데 길에서 한 여성의 '살려주세요!'라는 외침이 들렸고, 맞은 편 오피스텔에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어요!'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예전에 이 칼럼을 읽고 나서 왠지 마음에 남았는데요. 이번 레터를 쓰면서 이 칼럼을 다시 떠올려보니, 만약 제가 저 상황에서 다른 오피스텔에 있었고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으로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있었다면 저런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리고 문득 오늘날 비록 '괜히 기분만 나쁘게 만드는 뉴스'들이 많지만, 그런 '소음'들을 모두 다 제거한다면 우리 사회엔 모두가 각자 위험에 처해 아무런 도움을 구하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층간소음은 소음 문제? 관계 문제?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400자

🖍글 속 한 문장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층간소음에 분노하게 되는 원인을 이같이 설명하며 “상황을 이해하기보다는 ‘사람이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층간소음이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는 행동은 ‘친밀도’와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상대방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면 상황을 고려하는 여유가 생기면서 ‘나를 힘들게 하려고’ 또는 ‘의도적’으로 소음을 유발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옆집, 윗집과 아랫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는 아파트 생활에서 층간소음 갈등은 필연적인 현상이 아닐까”

👤김스피의 블라블라

오늘날 도시 고층 아파트에서의 층간소음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당연하게도 '불쾌한 소음'이 누군가에게 주는 나쁜 영향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저 역시 한때 층간소음으로 많이 힘들었을 때가 있었고요. 그리고 층간소음 외에도, 도시의 대중교통 통근자들에게 있어 대체로 '타인은 지옥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도시 생활을 못견디게 하는 것은 어쩌면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자체라기보다는, 모든 타인이 '신호'가 아닌 '소음'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도록 모든 관계망이 철저하게 끊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실제로 흥미롭게도 19~20세기 소설(참고문헌란에도 마지막에 간단히 적었습니다만)에서 '타인이 내는 소음'을 끔찍할 정도로 불쾌하게 여기는 경우는 의외로 별로 없더라고요. 좀 번거로워서 대충 하녀에게 말해두든가, 술 한 잔 사주고 내쫓는 경우는 있더라도요. 이 문제 관련해서도 오래 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언젠가 레터에 다루어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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