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는 탄소중립설비 공사 입찰에 참여하면서 평소 알고 지내던 동종업계 다른 회사 두 곳에 예산액보다 높은 가격을 써내도록 했다. A사는 예산액과 동일한 가격을 제시했고, 단 한 푼의 감액 없이 사업을 따냈다.
B사는 설비 발주사와 짜고 입찰 자격 요건을 강화함으로써 경쟁업체들의 참여를 원천 봉쇄한 뒤 수의계약으로 일감을 얻었다.
배출권거래제 할당대상업체가 온실가스 저감설비를 도입할 때 정부가 비용 30~70%를 제공하는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이 허술한 관리 속에 ‘눈 먼 돈 나눠 먹기’ 식으로 운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과 환경부는 5일 이같은 내용의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 운영실태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가 2021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국고보조금 총액 1850억원이 지급된 316개 사업을 들여다 본 결과 업무방해‧입찰방해 등 의심 사례와 전기공사업법 위반 등 모두 496건이 적발됐다.
사업자가 원하는 금액으로 사업비가 정해지도록 설비업체끼리 짜고 비교견적서를 일괄 작성한 경우는 135건이었다. 한국환경공단은 지원설비 사업비를 정할 때 보조금 신청업체로부터 3개 이상의 비교견적을 받아 최저금액을 고른다. 이를 악용해 일부러 더 높은 비교견적을 제시한 것이다. 정부는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의 정당한 사업비 산정 업무를 방해한 사례로 판단했다.
실제 경쟁 입찰이 아닌데도 들러리 업체를 세워 유찰을 막거나 일부러 높은 가격을 쓰는 업체를 참여 시키는 사례도 74건에 달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또 발주처와 수주처가 공모해 일부러 특정업체에 유리하게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한 경우도 4건 적발됐다. 입찰 참여 자격에 못 미치는 데도 계약하거나 서로 낙찰 건을 정한 뒤 상대방 입찰에 들러리로 참여하는 담합 사례도 21건이었다.
안전과 직결된 전기공사나 건설공사를 하며 무등록자와 계약을 체결한 경우도 120건에 달했고, 분리발주가 원칙인 전기공사를 일괄발주한 경우도 20건이었다. 종합공사의 경우 30억원 등 일정 금액 이상은 조달청장에게 위탁해 계약을 맺어야 하지만 지원업체가 자체조달(나라장터)로 체결한 경우도 82건이나 됐다. 지원대상이 아닌 비용에 보조금을 지급한 경우, 정산금액 반납과 착수신고서 제출이 늦어진 경우도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다.
정부는 업무‧입찰방해 의심사례 등 209건은 수사의뢰하고 전기공사업법·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행위 140건은 환경부를 통해 고발 조치했다. 보조금 초과지급액 828만9000원은 환수 예정인데 경찰 조사에 따라 더 늘 수 있다.
정부는 환경공단이 지원업체(보조금 수령자)를 정하면 이후 업체가 입찰 공고부터 낙찰자 선정까지 계약 전반을 스스로 수행하면서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보조금 수령자가 입찰·계약을 진행할 때 국가계약법을 따르도록 하고 위반 시 보조금 환수와 사업참여 제한 근거를 만들기로 했다. 또 그간 관리‧감독 관련 구체적인 근거 규정이 없었던 만큼 구체적 내용을 포함하는 운영지침 개정을 추진한다.
환경공단의 컨설팅 참여 업체가 특수관계로 의심되는 업체가 낙찰 받도록 개입한 사례가 나타난 만큼 컨설팅 업체 관리‧감독 체계를 구축하고 불필요한 컨설팅 업무를 최소화할 계획이다. 또 탄소중립설비 시장가격 확인이 어려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원가계산 용역기관을 활용해 사업비 적정성을 따지기로 했다. 아울러 입찰·계약 절차와 방법, 주요 위반 사례집도 만들어 홍보한다.
김종문 추진단장(국무1차장)은 “보조금 수령자가 사업 전반을 독자 수행하는 유사한 구조의 사업에서 위법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계기관에 전파하고 추가점검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