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문화의 세기, 시민문화권 보장을 위한 용어 바로 읽기 (34) 거버넌스

2025-04-03

거버넌스(governance)는 2000년대 들어 정책분야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 중 하나다. 거버넌스는 지배구조, 즉 지배 권한의 분할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시민사회는 거버넌스를 환영한다. 특히 한국은 오랜 기간 제국주의와 군사독재, 그리고 권위주의 정부를 경험했기 때문에, 국가 정책이나 지방정부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거버넌스 개념이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아 민주적인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반대로 거버넌스는 시민사회에 대한 새로운 통치술이 되기도 한다. 거버넌스가 시민의 참여와 시민에 대한 권한 부여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거버넌스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시민문화권의 증진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민문화권 보장을 위한 차원에서 거버넌스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거버넌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든든한 담보

‘거버넌스’의 어원은 그리스어 ‘키를 조정한다(kybenan)’와 ‘항해하다’(kybernetes)에서 유래한다. 즉 거버넌스는 국가나 조직이 목적에 맞게 잘 갈 수 있도록 하는 행정 기술이다. 선박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선장의 절대적 권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이 경우 거버넌스는 하향식 ‘통치’가 된다. 반대로 선장과 항해사, 조타수, 기관사, 조업 선원 등 모두가 제 역할을 잘할 수 있다면 이 경우 거버넌스는 ‘협치’가 된다. 이처럼 거버넌스는 ‘통치’가 되거나 ‘협치’가 될 수 있다.

공공부문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은 의사결정의 신속한 장점이 있지만 재정적 혹은 전문성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때 정부는 거버넌스를 통해 민간의 재원과 전문성을 추가할 수 있다. 또한, 글로컬이나 지방분권, 노동자의 경영 참여, 시민사회의 정책 참여 등과 같은 상향식 접근법은 그동안 소외되었던 비주체들의 헌신과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거버넌스는 권한과 동시에 책임도 공유하기 때문에 ‘이익’에 관한 동기부여가 확실하고, ‘손실’에 대한 책임도 분담할 수 있어 구성원에게 주인의식을 강화할 수도 있다.

거버넌스, 신자유주의의 산물

그런데 ‘거버넌스’가 인간적인 얼굴로 2000년대 이후에 유행하고 있지만, 거버넌스는 1980년대 비인간적인 글로벌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다. 글로벌 신자유주의는 엄청난 저항 속에서 국가가 독점한 공공부문을 민영화함으로써 거버넌스를 강제했다. 글로벌 신자유주의가 세계와 국가의 관계라면, 로컬 신자유주의는 세계와 지역의 관계다. 이제 지방정부는 국가의 간섭 없이 외국 자본 투자 혹은 교역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이때 지방정부는 성장을 위해 지역 내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하고 저항을 무마시킬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고자 한다. 여기서 거버넌스란 시장(market)이 지방정부에게 내리는 명령인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주체 형성’을 수행하는 행정 기술이 된다. 따라서 거버넌스는 행위 주체자의 진정성과 철학이 없다면 악덕이 된다.

예컨대 지역문화재단과 같은 중간지원조직 설립은 순환보직 공무원 체제를 보완하는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다. 지역문화재단은 과거와 같이 중앙정부 정책의 말단 전달체계가 아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지역문화 자원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지역의 문화정책을 수립・집행하는 전문기구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자체가 지역문화재단에 대한 독립성과 자주성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거버넌스는 통치로 환원되고, 중간지원조직은 행정의 하청으로 전락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중간지원조직은 모두 공공성이 아니라 경영 효율성에 의해 지배된다.

거버넌스, 협력이 아니라 권리

이런 사례 외에도 거버넌스는 현실에서 많은 오해를 낳고 있다. 그중 하나는 거버넌스를 네트워크로 이해하는 것이다. 네트워크는 거버넌스를 권한이 아니라 협력으로 바꾼다. 이 경우 거버넌스는 시민의 기본적인 ‘필요’를 선택할 권리가 개인의 ‘욕구’나 ‘수요’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으로 둔갑할 수 있다. 이때 거버넌스는 접속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역전을 일으킨다. 또한, 거버넌스는 신자유주의적 주체화 장치가 된다. 시민단체는 시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있다는 기쁨으로 정말 열심히 협력하고 노력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행정에 의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거버넌스는 시민단체를 행정이 원하는 대로 의사결정을 하는 거수기로 만들 수 있다.

이처럼 거버넌스는 시민의 주도적 참여와 주체성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민주적인 행정 기술이지만 반대로 시민사회의 자주성과 역량이 부족하면 거수기로 전락하는 문제가 있다. 지방정부의 거버넌스가 ‘통치’인지 ‘협치’인지는 의사결정을 위해 당사자들의 참여를 어느 수준에서 보장하는가에 있다. 왜냐하면 거버넌스는 당사자를 위해 베푸는 게 아니라 그들의 필요로부터 시작하는 권리 행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민문화권 보장은 문화기본법에 근거한 지방정부의 사업과 예산,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정책 수립 과정에 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강민 (사)울산민예총 정책위원장, 예술학박사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