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부는 더 이상 ‘착한 사람들의 선행’이 아니다. 저성장과 고령화가 고착되는 시대에 기부는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떠받치는 성장 전략이 될 수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기부를 경제·복지·환경 등 사회 전반의 동력을 마련하는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세제 혜택 등 공공의 유인 장치를 통해 사회적 자원을 확충하는 방식이다.
기부 의향 있어도 세 부담에 주저
영국 ‘레거시10’, 상속세 혜택 줘
기부 자산 다변화 흐름 포용해야

한국의 기부 문화도 외형적으로는 성장했다. 2023년 기부금 총액은 16조원을 넘었고, 사회복지·교육·학술·문화예술·의료·환경 등 기부 대상 영역도 다양해졌다. 특히 개인 기부가 11조원 이상으로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이는 기부가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만의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기부 관련 제도는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고령화 흐름 속에서 개인이 평생 일군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유산 기부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재산의 정리와 상속세 절감에 이점이 있어서 비상장 주식이나 지분 정리가 곤란한 부동산 등을 두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유산 기부가 주목받는다. 또한 신탁을 활용하면 유언장 없이도 유산을 기부할 수 있어 절세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탁월한 선택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 기부자들은 유산 기부에 뜻이 있더라도 여전히 높은 세제 문턱 앞에서 선뜻 나서지 못한다. 한국의 전체 기부액에서 유산 기부의 비중은 1%도 되지 못한다. 현장에서 만난 기부자들은 상속·증여세의 이중 부담을 토로하곤 한다.
미국·영국·호주 등 기부 문화 선진국은 강력한 세제 인센티브를 통해 유산 기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상속재산의 10%를 기부하면 상속세율을 10% 감면해주는 영국의 ‘레거시10(Legacy 10)’이 대표적이다. 영국의 유산 기부 규모가 2024년 기준 약 45억 파운드(약 8조6600억원)로 주요 자선단체 모금액 평균의 약 30%에 이르게 된 데에는 이 ‘레거시10’ 제도가 핵심 역할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은 시의적절하다. 이른바 ‘한국형 레거시10’을 논의할 때가 무르익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속재산의 일정 비율 이상을 기부하면 세액 공제를 허용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더 나아가 자선단체들을 중심으로 상속 시점뿐 아니라 생전 기부에 대해서도 증여세 감면을 적용하자는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제도 조정이 아니라 기부가 사회로 즉시 환류되는 효과를 고려한 더 전략적인 접근이며, 원조 격인 영국보다 진일보한 방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생전 기부의 확대는 즉시 사회적 기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파급 효과가 클 것이다. 최근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학술지(Oxford Economic Papers)에 실린 한국 사례 연구를 보자. 2014년 기부금 공제 방식 변화 이후 데이터를 분석해 기부 가격(기부자의 부담 비용)이 1% 높아지면 기부금이 3.5%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이는 미국 등에서 관측된 약 1% 감소보다 큰 수치다. 한국 사회가 세제 혜택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의미다. 결국 증여세 감면 등 세제 혜택에 따른 세수 감소보다 기부 확대로 줄어드는 사회적 비용 완화 효과가 더 클 수 있다.
물론 레거시10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상자산·주식·보험·부동산 등 기부 자산이 다변화하는 만큼 이를 포용할 제도적 기반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미국 일부 자선재단은 ‘디지털 자산 기부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고, 일본은 ‘증권형 기부제’를 통해 다양한 자산 기부를 장려하고 있다. 한국도 비현금 자산이 공익 목적의 자원으로 원활히 순환될 수 있는 제도 설계를 서둘러야 한다.
기부는 자산을 사회로 환원하여 세대 간 격차를 줄이고 공동체 신뢰를 회복하는 순환 구조의 출발점이자 위기를 극복할 국가적 동력을 만드는 일이다. 또한 지금의 아이들에게 든든한 우산이 돼주고 내일의 사회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사회적 투자다.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단 한 번이라도 기부를 통해 우리의 내일에 힘을 보태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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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기 초록우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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