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학수 ㈜아성넷 대표이사
정보통신신문사 명예기자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인천광역시회 산악회에서 뒤늦은 시산제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한 회원사 대표가 “복을 나누자”며 참석한 이들에게 ‘로또’를 나눠주었다. 덕분에 필자도 오랜만에 로또 한 장을 손에 쥐었다.
문득 곧 다가올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복권 한 장의 기대’와 ‘한 표의 권리’ 중 어떤 것이 더 큰 가치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독재 권력으로부터 직접 투표권을 쟁취한 민주주의 운동을 하신 분들이 보면 분개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풍자도 가능케 한 그들에게 감사하며 유권자 개인이 느끼는 선거의 상대적 가치를 비교해 보았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은 국가의 모든 행위는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한정적으로 행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거권은 권력을 위임하는 절차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반 국민이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로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선거 때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한 모든 정부 부처가 투표 독려 캠페인을 벌이지만 투표율은 대통령 선거가 70%를 웃돌 뿐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 선거는 50~60%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유권자가 자신의 투표가 사회 변화에 실질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느끼는 ‘정치 효능감’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예를 들면 유권자가 지지하는 후보자가 당선될 확률이 낮거나, 후보자의 공약에 대한 기대치가 낮거나, 누가 되든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고 판단할 경우가 그렇다.
특히 정치권의 이전투구로 인한 냉소적 기권이 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 때문에 후보자의 정보나 공약에 대한 검증에 시간을 할애할 유권자가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또한 검증에 실패했다고 해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유권자는 어떤 사실에 흥미를 느끼거나, 남들 앞에서 똑똑해 보이고 싶을 때는 공부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지지하기 위해 공부까지 해가며 투표하지는 않을 것이다. (팀 하포드, 2008)
결과적으로 얻을 게 많은 소수의 국민은 잃을 게 거의 없는 수백만 명의 국민보다 훨씬 열심히 싸우고, 운동하고, 공부해서 비합리적인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우리나라에서 복권의 대명사가 된 ‘로또’의 당첨 확률은 약 800만 분의 1이다. 매우 낮은 확률로 ‘벼락 맞을 확률‘이나 ‘로또 청약’ 등에 비유가 되곤 한다. 그러나 ‘로또 명당’으로 손꼽히는 한 복권 판매점은 인근 도로가 복권을 구매하러 온 차량으로 인해 수년째 몸살을 앓고 있다는 기사도 있고, 매장 앞으로 길게 줄지어 있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다.
복권은 단순하다. “2010 로또 및 복권 구매 행태와 인식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복권 구매 사유로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43.65%)’, ‘인생 역전을 원하기 때문에(24.4%)’, ‘일주일의 행복을 위해서(16.0%) 구매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꾸준히 구매하면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고 응답한 응답자 비율도 44.7%로 나타났다.
복권을 구매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서 많이 하는 대답 중의 하나는 바로 ‘재미있어서’였다. 복권을 사고 당첨을 발표할 때까지 복권이 당첨되었을 때를 꿈꾸는 즐거움이 매우 크다는 것을 강조하며, 당첨이 안 되어도 이러한 즐거움이 곧 큰 보상이라는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집약하고, 이에 기초해 정치권력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핵심적인 제도적 장치이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위기를 맞게 된다. 왜냐하면 대표성이 결여 된 소수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사람은 '보상'에 반응한다. 적어도 복권만큼의 매력적인 보상이나, 투표를 통해 얻는 변화의 가능성을 체감할 수 있는 사회적 인센티브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