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장미대선’이다. 장미대선은 오뉴월에 치러지는 대선을 말한다. 제6공화국 출범 이후 대선은 으레 12월 중순에 열렸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2017년에는 5월에 대선을 치렀다. 윤석열 대통령도 탄핵으로 물러나면서 공교롭게도 다시 장미철에 대선을 맞게 된 것이다. 장미의 꽃말인 정열·희망·사랑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의 파면으로 시작된 선거라는 점에서 실로 역설적이다.
공동체 구성원의 성장·협력 중요
6·3 대선의 시대정신은 동반성장
지속가능한 사회·국가 위한 초석
민관합동 국가동반성장위 필요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을 뻔했던 계엄령 발동은 민주공화국의 헌법질서를 위협하는 폭력이었다. 이어진 탄핵 심판 과정은 대한민국 발전사의 한편에서 드러나지 않게 곪아왔던 환부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정치지도자들의 거짓말이 난무하고, 언론은 저마다의 편의적 렌즈를 통해 사건을 확대 재생산했다. 한국 사회 성장의 적지 않은 부분을 견인해 온 관료사회와 공직자들이 지켜야 할 공직 에토스(공직윤리와 책임감)마저 나락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진영 논리에 빠진 당파성, 선악 구분의 일방화가 만들어내는 확증편향은 이제 두려움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대한민국 공동체가 암묵적으로 존중해 오던 공공선조차 희미해졌다. 한마디로 민주공화국의 위기이다.
이 위기는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요체는 공화주의의 근간인 자유·공공복리·법치주의의 흔들림이다.
공화주의란 법의 공정성에 기반한 법치주의와 권력 분산, 남에게 지배받지 않을 자유, 그리고 공동체의 공공복리를 추구하는 공공선과 이를 함께 실천해 나갈 성숙한 시민적 덕성을 가치로 삼는다. 이처럼 공화주의에서 중요시하는 덕목에는 동반성장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공동체 구성원 누구도 배제됨 없이 삶의 질을 높여가는 공공선의 실현, 부자와 빈자, 발전 지역과 소외 지역이 한데 어울려 함께 성장하고 협력함으로써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야말로 동반성장사회의 중추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공화주의가 지향하는 가치와 동반성장은 결국 시대를 이끄는 본질적 비전의 영역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흔히 한 시대를 이끄는 가치를 ‘시대정신’이라 부른다. 예를 들면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성장이 시대정신이었다면, 전두환 군부정권을 무너뜨리고 문민사회를 열기 위한 민주화 역시 한 시대의 정신이었다. 그렇다면 갈등과 분열 그리고 불신이 만연한 이번 6·3 장미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시민혁명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중세 봉건사회가 해체되고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길로 들어선 이래, ‘자본주의 4.0’ 시대라는 오늘날까지도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과 타협, 양보와 협력, 개선과 절충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참정권 확보, 노동권 보장, 의무교육 실시, 사회복지정책 확대, 반독점법 제정, 누진세 적용 등 사회적 약자와 동행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 역시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이처럼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동반성장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가치이자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기를 돌파하는 해답이다. 동반성장은 포용과 균형을 바탕으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시작점이며 공화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동반성장은 지속가능한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가는 포괄적인 시대정신이다. 모든 영역에서 ‘함께 잘 사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바로 동반성장이다. 그러므로 동반성장은 경제 영역의 의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통합과 발전을 위한 핵심원리로 작동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공화국, 대한민국의 성장발전을 위해 동반성장을 시대적, 국가적 과제로 삼고 그 실천 방안으로 범정부가 참여하는 민관합동 ‘국가동반성장위원회’ 구성을 제안한다. 첫째, 동반성장에 관한 사회적 의제를 포괄하고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현 민간중심의 ‘동반성장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국가동반성장위원회로 격상하여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광역지자체에도 동반성장위원회를 설치하여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동반성장정책을 추진한다. 셋째, 위원회를 중소벤처기업정책을 통합 조정하는 컨트롤타워 및 실질적인 지원센터로서 기능하게 하려면 관련 중앙부처가 위원회에 참여하여 중소기업 관련 업무를 통괄함으로써 조직 및 업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그에 기초하여 현 위원회의 본래 업무와 초과이익공유제 실행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위원회 산하에 동반성장 옴부즈맨, 특별사법경찰 등을 두어 실질적인 중소기업 지원 역할을 담당한다.
이번 6·3 장미대선을 통해,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대한민국의 상처가 치유되고 민주공화국에 새로운 활력이 싹트길 기대한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이 남긴 상흔을 떨쳐내고 공화주의의 근본 가치에 충실하려면, 동반성장 정신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을 위기에서 구출할 확실한 동력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