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2년 6월 10일 하루아침에 돈이 돈이 아니게 되었다. 기존 화폐인 환(?)화 표시 한국은행권(사진)의 유통과 거래가 금지되고, 화폐 단위가 10분의 1로 변경(리디노미네이션)된 원화가 법화로 지정됐다. 모든 자연인·법인·임의 단체는 보유한 환화 표시 은행권과 어음·수표 등을 금융기관에 예입한 후 원화로 인출해야 했다. 제3차 긴급통화조치가 단행된 것이다.
이 조치는 말 그대로 ‘벼락처럼’ 이뤄졌다. 근거가 되는 긴급통화조치법은 바로 전날인 6월 9일 공포됐다. 6종의 새 은행권은 영국의 토마스 데라루(Thomas De La Rue)사에서 제조한 것으로, 네덜란드 국적 화물선에 싣고 대한민국 영해에 진입해 해군 함정에 옮겨 싣고 한 달가량 바다 위에서 시간을 보낸 후에야 부산항에 하역됐다.

이렇게 비밀 작전을 편 것은 ‘화교들이 장롱에 숨겨둔 뭉칫돈’이 나올 것을 기대해서였지만 그런 건 없었다. 오히려 서민경제가 탈이 났다. 봉쇄예금 계정에 돈이 묶이면서 자금시장이 경색됐고 생산 활동이 위축되면서 경제난이 심해졌다. 은행에 들어온 구권 예금을 봉쇄계정으로 동결하고 그 돈을 통화 조치 후 6개월 이내에 설립될 산업개발공사의 주식으로 전환하는 정책, 즉 부자의 돈을 빼앗아 ‘좋은 곳’에 쓴다는 식의 계획 역시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됐다. 대한민국이 가난의 수렁에서 벗어난 것은 깜짝 조치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경제 정책과 국민의 피땀 어린 노력 덕분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유세에서 지역화폐를 강조하며 “나라가 공짜 돈 주면 왜 안 되나. 나라가 빚 지면 안 된다는 무식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역사의 교훈은 분명하다. 한 걸음씩 신중하게 국민과 함께 나아가는 경제 정책만이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 이재명 정부와 대한민국의 성공을 기원한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