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승객과 승무원 181명 중 179명 사망이라는 비극을 낳은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오는 29일이면 한 달이 된다. 사고 과정에서 조류 충돌이 있었고 활주로 끝의 콘크리트 둔덕이 피해 규모를 키운 것으로 확인됐지만, 아직 공식적인 사고 원인은 나오지 않았다. 유가족협의회는 지난 25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끝까지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조사를 해달라. 유족들은 믿고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현재 공항 임시보호소에 머물고 있는 20여명의 유가족은 희생자 49재가 마무리되는 다음달 15일 가정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항공기 아래쪽에 새가 있다” 직후 셧다운
지난해 12월29일 태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제주항공 737-800 여객기에는 ‘패키지 여행’을 떠났던 가족들이 다수 탑승했다. 여객기는 이날 오전 8시54분43초 무안관제탑과 착륙접근을 위한 최초 교신을 했다. 관제탑은 01활주로로 착륙허가를 냈다.
관제탑은 3분7초 뒤 항공기에 ‘버드 스트라이크’, 즉 조류활동 주의 정보를 발부했다. 주변에 새 떼가 많으니 착륙시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관제탑의 주의정보를 받은 기장과 부기장은 21초 뒤인 오전 8시58분11초 “항공기 아래쪽에 새가 있다”는 대화를 나눴다. 대화내용은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25일 유가족들에게 전달하면서 처음 공개됐다.
사조위에 따르면 여객기에 장착된 블랙박스 비행기록장치(FDR)와 음성기록장치(CVR)는 두 조종사의 대화 39초 뒤인 오전 8시58분50초 기록이 중단됐다. 즉 불과 39초 사이에 새떼가 양쪽 엔진에 빨려들어가면서 여객기 내 전원이 ‘셧다운’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블랙박스는 기체와 별도의 전원공급 장치가 있지만 해당 기종에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조위 역시 항공기가 복행을 시도하던 해당 시점에 조류와 접촉하는 장면을 공항 감시 카메라(CCTV)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전문기관에 유전자 분석을 의뢰한 결과 양쪽 엔진에서 발견된 것은 ‘가창오리’의 깃털과 혈흔으로 파악했다. 가창오리는 겨울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철새로, 군집성이 강해 떼로 몰려다니는 특징이 있다.
무안공항은 2020년 활주로 확장을 위한 전략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서도 조류 충돌 위험성이 제기된 바 있었다. 그러나 정작 조류감지 장비, 조류탐지 전용 레이더, 열화상 카메라 등이 단 한 대도 없었다. 참사 당시에도 조류탐지 기기가 아닌 관제사가 육안으로 새 떼를 확인하고 조종사에게 조류충돌 경고를 했다.
활주로 끝단의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콘크리트 둔덕이 희생자 규모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이에 앞서 조류 충돌만 피할 수 있었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도 지난 14일 국회에서 “(조류탐지)레이더가 있었다면 좀 더 일찍 조류충돌 경보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모든 원인을 종합적으로 밝혀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블랙박스는 여객기가 방위각 시설과 충돌하기 직전 마지막 4분7초를 끝으로 기록이 중단됐다. 즉 가창오리떼를 확인한 조종사들이 복행(예정된 착륙을 하지 않고 고도를 다시 높이는 것)하던 시점부터 동체 착륙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블랙박스에 담겨있지 않다는 얘기다.
의문점도 여전히 많다. 조류떼가 엔진에 들어갔더라도 엔진 전체가 ‘셧다운’이 될 가능성은 극도로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때문에 ‘버드 스트라이크’ 이전에 기체 자체에 결함은 없었는지, 블랙박스 기록이 어떻게 중단됐는지, 비상착륙 당시 랜딩기어는 왜 내려오지 않았었는지 등도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사조위는 “운항상황 및 외부영향, 기체·엔진 이상 유무 등을 파악하기 위해 블랙박스 및 관제교신 기록 등 자료를 시간대별로 동기화하고 분석 중”이라며 “수 개월의 세부분석과 검증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