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한국인의 얼굴’ 이면엔

2025-02-20

혹시 가장 오래된 한국인의 얼굴이 궁금하다면 최근 재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상설전시실 1층)에 가보시라. 최신 발굴·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유물 1156건 1807점을 선보이는 이곳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건 고대국가 부여의 금동 가면 한 쌍이다. 기원후 2~3세기로 추정되는 이 가면은 중국 지린(吉林)시 마오얼산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머리는 뒤로 넘겨 상투를 틀었고 툭 불거진 광대뼈 아래 벌린 입속에 가지런한 치아까지 쌍둥이 같은 모습이다. 2014년 특별전에 처음 선보였고 11년 만에 상설전시실에 자리 잡게 됐다. 부여는 고구려와 백제 모두가 후손을 자처하는, 우리 고대사에서 비중이 적잖은 나라지만 당대 영토가 모두 남한 외곽에 있다. 유적 접근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금동 가면의 존재감이 더욱 두드러진다.

박물관에 따르면 이 가면은 골동상을 거쳐 만주에서 건너와 1923년 조선총독부박물관(1915~45)이 사들였다. 당시 일제는 제국주의적 야심을 품고 일본을 중심에 둔 ‘동양’을 뒷받침해 줄 문화재(요즘 표현으론 문화유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 구입 당시만 해도 부여 유물로 생각했다기보다 다양한 중국 문화재를 확보하는 차원이었던 듯하다. 그러다 2000년대 이후 이 가면을 본격 연구한 한국과 미국 학자들에 의해 ‘부여인의 얼굴’로 보는 게 정설이 됐다고 한다. 마침 박물관이 일제강점기 입수 문화재를 조사하면서 2014년 특별전이 기획돼 금동 가면이 세간에 공개됐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언급된 상투 특징까지 뚜렷한 모습에 ‘가장 오래된 한국인의 얼굴’로 주목받았다.

이 가면이 위치한 전시실에선 고조선 이래 한반도 북부와 중국 동북 지역에 등장했던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등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고조선 멸망 후 그 땅에는 중국 한나라가 설치한 군현이 들어섰는데, 그 가운데 낙랑군은 4세기 초까지 남아 있었다. 조선총독부가 중국 문화재를 수집하면서 특히 한나라 유물에 집착한 것도 낙랑군을 예시로 삼아 한반도 역사를 ‘예속의 역사’로 파악하려는 속셈이었다. 이태희 학예연구관은 “유물 비교를 통해 식민사학을 전파하려던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의지가 광범위한 문화재 수집으로 이어졌다”면서 “부여 금동 가면은 이렇게 수집된 1만4789건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수집품들이 1945년 해방과 함께 출범한 국립박물관의 토대가 됐다. 다만 100여 년 전 일제가 구입할 때 맥락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반세기 이상 수장고에서 잠들었던 부여 금동 가면은 이제 고조선으로부터 삼국시대로 이어지는 우리 고대사의 연결고리를 실증하는 존재가 됐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학자 E H 카의 경구를 박물관 현장에서 확인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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