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3000개 요직에 영향력… 대통령 인사권 손질을 [심층기획-광복 80년, 독립에서 강국으로]

2025-08-18

장차관 임명권에 산하기관까지 좌우

정권교체기 알박기·찍어내기 논란 반복

“불명확한 인사권, 美처럼 명확히 규정을”

“대통령이 제왕적이라고 하는 것에는 어폐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3일 취임 한 달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회가 여소야대가 돼 버리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게 크지 않다. 전임 대통령은 힘들어하지 않았나”라는 말과 함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이 대통령의 말처럼 입법부의 도움 없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그런데도 왜 대한민국 대통령은 강고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걸까.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핵심은 대통령의 권력행사가 불명확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법률상 대통령이 직접 공개적으로 인사에 개입할 수 있는 자리는 국무총리 및 장차관 등 140여개 정도지만, 공공기관의 직위나 장관이 임명하는 자리, 더 나아가 산하기관 임원까지 합쳐지면 최소 3000곳이 넘을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거론되는 공공기관장 거취 잡음이 대통령의 불명확한 권한 행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장면이다.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장이 정권교체 후 자리를 물러나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알박기’와 ‘찍어내기’ 논란이 빚어졌다.

윤석열정부는 12·3 계엄을 저지른 후 50명이 넘는 공공기관장 인사를 단행했고 민주당은 이를 ‘알박기’ 인사로 규정,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윤석열정부 초반에도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 임기 말에 ‘알박기’ 인사가 벌어졌다며 사퇴를 요구했다.

대통령실의 불명확한 인사권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대통령 임기와 공공기관장 임기를 일치하게 하기 위해 ‘한국판 플럼북(Plum Book)’의 설치가 필요하다는 제언은 그래서 나온다. 미국의 경우 대선이 끝날 때마다 대통령이 새로 임명할 수 있는 정무직 공무원의 숫자와 임기 등을 일종의 책자로 만들어 문서화한다. 이를 ‘플럼북’이라고 부른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제도 도입을 통해 대통령실의 인사권한을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지난 21대 대선에서 여야 후보 모두 비슷한 제도 도입을 약속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 주요 공공기관 기관장 등의 임기를 대통령 임기와 일치시켜 공공기관 경영 및 정책 추진의 일관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고,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도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기 위해 ‘낙하산 금지법’을 제정하고 한국형 플럼북(K-플럼북)을 도입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여야가 모두 공약으로 제시한 만큼 국회 논의를 거치면 법안 제정이 가능하다.

이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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