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에 거주하는 회사원 손모(40)씨는 2년째 한 OTT 서비스를 울며 겨자 먹기로 구독 중이다. 손씨는“휴대폰 개통 때 통신사에서 할인 중이라며 꼬드기길래 한 달만 구독하고 해지하려 했는데, 모바일에서 해지 버튼을 못 찾아 결국 지금까지 구독하고 있다”며 “전화로 해지하려고 해도 업무 시간 마치고 밤이 되면 이미 전화 상담 시간이 종료된 시각이라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손씨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특정 서비스를 구독하거나, 실제로는 특가가 아닌데도 특가라는 홍보에 속아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커머스 업체에서 ‘다크패턴’이라는 마케팅 기법을 활용하는 경우가 늘면서다. 다크패턴이란 사용자 인터페이스나 서비스 해지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 소비자의 충동 구매 등 비합리적 소비를 유도하고 이탈은 방지하는 마케팅 장치다. 서비스 이용을 해지하려고 하면 특별한 혜택을 제안해 해지를 포기하게 만들거나, 특가를 제안하고서 ‘특정한 조건에서만 특가가 적용된다’고 뒤늦게 고지하는 등 소비자의 합리적인 소비를 막는 게 목적이다.
직장인 김모(35)씨도 최근 가을 여행 특가 여행 상품을 구매하려고 이커머스 홈페이지를 이용하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홈페이지 광고에 뜬 특가 가격과 실제 결제창의 가격이 달랐기 때문이다. 약관을 자세히 읽어보니 특정 카드로 결제할 경우에만 특가로 결제가 진행된다고 안내돼 있었다. 김씨는“특가 가격에 설레서 일정을 맞춰본 게 억울할 지경”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같은 다크패턴은 현행법상 위법 소지가 있다. 전자상거래법상 온라인으로 가입이 이뤄진 경우 해지도 같은 방식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업 측에서 소비자 보호 등을 이유로 해지 절차를 까다롭게 만든 것만으로 위법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맹점이 있다. 2025년 2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전자상거래법은 이런 다크패턴에 대해 과태료 및 영업 정지 등 실질적 처벌을 가능하도록 했으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처벌이 가볍다며 지적하고 있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7월 다크패턴을 ▶편취형▶오도형 ▶방해형 ▶압박형 등 4개 범주, 19개 유형으로 구분한 ‘온라인 다크패턴 자율관리 가이드라인’을 제정·발표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유형이 ‘숨은 갱신’ ‘거짓 할인’ ‘유인 판매’ ‘탈퇴 방해’ 등이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다크패턴은 소비자들이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쓰게 만드는 행위로, 이로 인한 소비자들의 손해가 막대하다”며 “사업자들이 이를 통해 얻는 이익 상당 부분을 과징금으로 물려야 현실적으로 이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대안으로 “정부의 제재 강화와 함께 소비자들 스스로 다크패턴을 악용하는 기업 정보를 공유하는 등 의식적인 소비 행위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공정위가 일일이 단속에 나서는 것보다는 신고센터를 만들고, 신고센터가 설립됐다는 걸 홍보해서 사업자들이 이같은 마케팅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국회도 지난달 21일 정무위원회 공정위 국정감사에서 공정위의 행태를 비판했다.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은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나서 소비자 피해가 큰 대규모 쇼핑 플랫폼부터 고칠 수 있도록 시정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