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수검사 결과가 잘 나왔나요?”
지난 5월 서울아산병원 신관 1층에 위치한 어린이병원. 예기치 않게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ALL) 진단을 받고 4주간 관해유도요법을 마친 서경(5·가명) 양의 부모가 초조하게 답변을 기다렸다. 급성 백혈병의 일종인 ALL은 림프구계 백혈구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해 암세포로 변하고 골수에서 증식해 말초혈액으로 퍼지는 질환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암발생률의 0.4%에도 못 미치지만 소아 백혈병의 약 70~8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유형이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한해 250여 명이 20세가 되기 전 ALL로 진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ALL은 ‘급성’이란 이름처럼 성향 자체가 매우 공격적이고 진행 속도가 빠르지만, 초기 나타나는 이상신호는 빈혈, 피로감 등 특이하지 않은 증상이 많아 환자 스스로 알아채기 쉽지 않다. 더욱이 소아 ALL 환자가 평균적으로 가장 많이 진단되는 4~5세는 감기 증상이 잘 낫지 않는다고 여기기 쉽다. 실제 오랜 기간 열이 떨어지질 않아 혈액 검사를 했다가 우연히 발견되거나 출혈, 멍, 반점 등 혈소판 감소로 인한 증상이 뚜렷이 나타난 뒤에야 진단되는 환자들이 많다.
서울아산병원에선 급성 백혈병이 의심될 때 내원 당일 골수검사 시행 후 결과 확인이 가능하다. 서경 양도 당일 골수검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주치의인 김혜리 소아청소년혈액내과 교수가 “빠르게 진행되는 질환인 만큼, 미뤄야 할 다른 이유가 없다면 즉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권했기 때문이다.
◇진행 빠른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완전관해 도달해도 15%는 재발
ALL의 치료는 혈액과 골수 내에 존재하는 백혈병 세포를 없애기 위해 첫 4주간 진행되는 ‘관해유도요법’이 핵심이다. 말 그대로 암세포가 거의 없는 상태인 ‘관해’를 유도하는 단계로, 3~4가지 정도의 항암제를 조합해 4~6주간 진행한다. 의학적으로는 유도요법 이후 골수검사 결과 모세포 5% 이하, 세포충실도 20% 이상이면서 혈액검사 수치가 정상을 회복한 상태가 4주 이상 지속될 때 완전관해에 도달했다고 본다. 완전관해에 도달할 확률은 95% 정도로 알려졌다. 검사 결과 서경 양은 암세포가 거의 사라진 완전관해 상태로 확인됐다. 하지만 김 교수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골수검사에서 극소량의 암세포가 검출됐기 때문이다.
ALL 환자 중 일부는 겉으로 완치된 듯 보여도 몸속에 극소량의 암세포가 남아있어 재발 위험이 높다. 이를 ‘미세잔존질환(MRD)’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MRD 확인이 어려웠지만, 최근에는 골수 검사 시 이를 측정하면서 항암 강도 조정에 활용하고 있다. 김 교수는 “2021년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기반의 MRD 검사가 도입되며 ALL 치료 결과를 보다 정밀하게 확인하고, 그에 맞는 치료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됐다”며 “특히 MRD 양성 여부는 ALL의 재발 위험도 평가에서 매우 중요한 지표”라고 말했다. 골수검사로 확인한 MRD 수치가 높으면 더욱 강도 높은 약물을 쓰거나 항암주기를 추가하는 식으로 치료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소아 ALL 환자의 약 15%는 재발을 경험한다. 임상 현장에선 MRD 수치 0.01%를 기준으로 ‘양성’과 ‘음성’을 구분한다. MRD 음성은 1만 개의 세포 중 1개 미만의 암세포가 관찰된다는 의미다. MRD 양성이면 유도요법 이후 잔존하는 백혈병 세포의 사멸을 위한 공고요법을 고강도로 진행해야 한다. MRD 음성이라도 3~4% 정도는 재발하기 때문에 공고요법이 필요하다.
◇ 이중특이항체 도입…“무재발 완치율 95% 이상까지도 기대”
과거에는 여러 종류의 세포독성항암제를 조합해 공고요법에 사용했다. 잔존하는 백혈병 세포의 사멸을 위해 필수적인 치료 과정이지만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도 파괴돼 머리카락이 빠지고 피부가 까매지고 입안이 허는 등 부작용이 심했다. 하지만 10년 전 등장한 이중특이항체(BiTE) ‘블린사이토(성분명 블리나투모맙)’는 암세포만 정밀 타격해 치료 효과가 높으면서도 부작용이 적어 환자가 치료를 견디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블린사이토는 환자의 T세포와 암세포를 연결해 T세포가 암세포를 인식하고 파괴하도록 돕는다. 일종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김 교수는 “재발 위험도가 표준인 ALL 환자 대상 임상시험에서 기존 공고요법에 블린사이토를 추가하면 면역 기반 치료 효과를 극대화해 완치율을 96.0%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을 입증했다”며 “20년간 정체됐던 소아 ALL의 ‘무재발 완치율’을 최초로 개선한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평가했다.
연구 결과가 이토록 고무적임에도 진료 현장의 상황과는 괴리가 있다. MRD 음성 환자의 공고요법으로 화학요법과 블린사이토를 교차 투약할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주기당 3000만 원 상당의 약값이 소요된다. 2주기를 완료하려면 6000만 원 가까이 드니 환자 입장에서 적잖은 부담이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어린 자녀의 재발을 어떻게라도 피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김 교수는 “공고요법 단계 허가의 근거가 된 임상연구들은 블린사이토 투여군의 우월성이 확실하지만, 무작위 배정을 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 판단해 조기 종료됐다”며 “아무리 치료효과가 뛰어나도 보험이 안 되면 환자들의 혜택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ALL 완치율을 높이기 위해 공고요법 단계를 강화하는 것은 전 세계적 흐름”이라며 “저출생 사회에서 소아암 환자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지원은 국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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