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태권도신문] 젊은 시절 사회활동이 왕성할 즈음에 태권도의 소중한 인연으로 만나 약 50년이 가까운 지금까지 번함 없고 허물없는 절친한 관계로 노령의 나이 인생을 즐기고 있는 김중영회장(9단)과 전창식 고문(9단)을 만났다.
두 사람의 공통점을 보면 평소에는 만만하게 보일 만큼 여리고 약하며 부드럽고 순하게 보이나 내면에는 잠재된 강인함을 가진 소유자로서 겸손함은 물론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동시에 갖추고 있고 소신과 지혜로운 면을 가져 많은 태권도인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이상적인 인간상을 지니고 있다.
김중영 회장은 1942년 충남 서천 출신으로 1953년 6.25 동란이 끝난 후 12살 나이에 서울로 상경하여 서울 청량리 창무관에서 태권도를 시작하였으며 전창식 고문은 1942년 서울 종로 출신으로 해방 이후 어머니의 고향인 경기도 김포군으로 이사를 하고 1958년 서울 영등포 무덕관에서 태권도를 시작했다.
김중영 회장은 태권도를 배우며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중학교 나이부터 책 장사를 하면서 수련비와 학비를 마련하고 책과의 인연으로 고등학교 진학 후 어린 나이에 형의 명의를 빌려 오성출판사의 사장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사업은 이어오고 있다.

또한 1980년대 국기원과 함께 최초로 태권도 교본과 영문판 태권도 교본을 발간한 김중영 회장은 2000년대 서울스포츠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서 최초로 태권도 석사학위과정을 신설하고 태권도의 학술적 체계와 우수인재양성에 노력하여 많은 태권도인들이 기억하고 있으며 지난 2024년도에는 국기원이 주최한 자랑 스런 태권도인 상 대상(문화장)의 영광을 안았다.
전창식 고문은 미들급 선수로서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했으며 태권도를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같은 동네에 잘 사는 또래 아이가 친구를 때렸기에 때린 아이를 혼내주겠다는 마음으로 부모님 몰래 태권도를 계속했는데 결국은 나쁜 친구를 혼내주지 못하고 나이가 들었다며 과거를 회상한다.
김중영 회장과 전창식 고문이 처음 만난 인연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1980년도 전창식 고문이 당시 서울시태권도협회 감사 시절 김중영 회장은 당시 서울 종로구태권도협회 대의원이었다. 패기가 넘치는 젊은 시절 두 사람은 성격이 비슷하고 남 앞에 나서기보다는 주변에서 남을 도와주는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이기에 만날수록 서로 정이 들고 이해하는 마음이 통했으리라 생각한다.
성장하면서 태권도를 열심히 수련한 김중영 회장은 서울 양평동에서 동아체육관을 개관하였으며 전창식 고문은 서울 등촌동에서 등촌종합체육관을 개관하고 수백 명의 수련생 제자들을 지도하며 사범의 보람과 동시에 운영자로서 경제적 도움에 큰 성과를 거두고 현재까지 남부럽지 않게 남은 인생을 즐기고 있다.

특히 1990년 김중영 회장이 국기원 심사위원장 시절에 전창식 고문은 심사부위원장으로서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으며 오랜 세월 동안 주변 비슷한 지역에 살면서 친근감은 더해지고 죽마고우 이상으로 관계가 좋다는 것이 서로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다.
두 사람은 필자의 ‘어디가 좋으신가요?’ 라는 질문에 서로를 칭찬한다, 칭찬 내용 또한 서로가 비슷하다. 내용인 즉 친근감이 남다르게 돈독하고 모든 행동에 변함이 없으며 성격 또한 비슷하면서 정신적으로 강인한 면과 온유한 면이 골고루 다 갖춘 것이라고 서로는 말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대부분 비슷한 시점에서 여려가지 이유와 환경적 변화로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일상생활에서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도 이별이 반복되는 것을 돌이켜보면 태권도인으로서 만난 김중영 회장과 전창식 고문의 관계는 우리가 본받아야 하기에 충분하다.
어느 글에 ‘친구 한 명만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사람마다 기준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언제라도 아무 부담감 없이 연락할 수 있는 친구, 나에 부족함을 일깨워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김중영 회장과 전창식 고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