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세 사람이 있다. 먼저 1931년생인 김옥선은 3선 국회의원이자 사회사업가, 교육자다. 배우자가 없는 여성을 위해 그가 열아홉 살에 설립한 에벤에셀 모자원은 오랜 역사 속에서 여전히 운영 중이다. 그런 김옥선은 군사정권에서 초선을 한 이후로 격랑의 정치 여정을 거쳤다. 양복 차림에 목소리까지 걸출한 김옥선이 처음 정치권에 입문한 20대 때의 언론사 수식은 ‘남장 처녀’. 차림과 달리 평생 여성으로서의 성 정체성을 지녔던 그는 징용에서 돌아오지 못한 오빠를 대신해 아들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익혔다고 소회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의 남장은 가부장 중심의 한국 사회가 딸에게 강요한 아들되기이자, 남성화 전략을 똑똑한 여성의 능력으로 치부하던 남성적 시대를 반증한다.
문혜림은 문동환 목사의 부인이자 문익환 목사의 제수다. 미국에서처럼 남편의 성을 따른 그의 본명은 헤리엇 페이 핀치백. 그는 민주화 운동과 기독교 교육 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1986년에 기지촌 여성을 위한 단체 두레방을 만들며 성매매 여성이 군사문화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알렸다. 문혜림이 낯선 땅 한국으로의 이민을 택했다면, 김인선은 1970년대 가난을 이기기 위해 간호조무사로서 독일로 이민을 떠났다. 이후 신학을 공부하고, 동성 파트너인 수현과 함께 소수자와 이민자의 삶을 보듬어 왔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옥선이 있다. 사진가 김옥선. 그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에 태어난 이 세 명의 여성을 통해 한국 근대사가 배제해온 행간을 다시 읽고자 한다. 김옥선은 그동안 초상사진을 통해 각기 다른 몸의 정체성, 이주와 표류로 인해 경계에 놓인 삶,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존재에 주목해왔다. 다만 인물사진만으로 타계한 문혜림, 연로한 정치인 옥선의 과거 공백을 메우기는 쉽지 않은 일. 작가는 초상사진에 더해 다양한 재현과 기록의 방편을 동원한다. 아카이브, 인터뷰, 그들의 활동을 기억하는 장소에 대한 사진을 통해 근대화 시기 여성들의 여정을 현재로 소환한다.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