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의 ‘마제파’, 불굴의 판타지

2025-10-23

1843년의 어느 날, 리스트는 쇼팽의 녹턴을 연주하면서 즉흥적으로 장식을 추가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쇼팽은 살짝 빈정상해 악보대로가 아니면 차라리 치지 않는 게 어떠냐고 했다. 두 사람은 잠시 언쟁을 벌였다가 리스트가 나중에 사과하며 ‘곡을 쓴 사람이 쇼팽이라면 연주자가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다.

이 작은 이야기는 두 음악가의 성격 차이를 잘 드러내 준다. 쇼팽이 고전적이고 단정하며 시적이라면 그때그때의 즉흥에 자신을 맡길 줄 아는 리스트는 보다 서사적이다. 이처럼 악상의 규모, 판타지의 폭을 그때그때 크게 넓히는 리스트의 면모는 그의 초절기교 연습곡,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인 ‘마제파’에서 잘 드러난다.

‘마제파’는 폴란드 왕 요한 카지미르 2세의 시동 이름이다. 그는 한 귀족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다가 발각되어 사나운 말 위에 결박당한 채 초원으로 추방되는 벌을 받는다. 광란의 질주 속에 사경을 헤매던 그를 다행히 카자크 기병이 발견한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마제파는 1687년 그들의 수령이 된다.

이 극적인 이야기는 바이런이 극시로 써서 널리 알려졌다. 리스트는 같은 소재를 취한 위고의 시를 읽고 작곡에 임했으니 과연 피아노로 된 교향시처럼 스케일이 크다. 거대한 먼지 구름 같은 화성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진 뒤 음의 판타지가 펼쳐진다. 마제파를 태운 말이 내달리는 모습, 그럼에도 마제파의 마음속에 여전한 사랑, 낙상의 아찔한 순간과 죽음의 공포가 차례로 그려진다. 그러나 곡의 마지막은 당당한 팡파르다. 죽음을 극복한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이다. 불과 7분여의 시간, 음악은 변화무쌍하고 신출귀몰하다.

리스트의 환상은 극한을 향한다. 돌파한다. 뚫고 나간다. 시가 예감하지 못한 새로운 감각이 거기서 비로소 열린다. 초절기교보다 더 환호받아 마땅한 것은 새로움을 향하는 불굴의 갈망이다.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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