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즈니+의 첫 사극 ‘탁류’는 추창민 감독이 천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이후 13년 만에 연출을 맡은 데다 KBS 드라마 ‘추노(2010)’의 천성일 작가가 집필해 기대가 높았다. 이에 부응하듯 사극이 주는 아우라와 압도적인 스케일, 깊이 있는 서사가 주는 몰입감, 청춘 배우들의 열연 등이 화제가 되며 ‘보기 드문 정통 사극’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2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추 감독은 “‘광해’ 이후 사극 제안이 많았지만 고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광해’ 이후 ‘7년의 밤’ ‘행복의 나라’ 등을 연출했다. ‘탁류’ 연출을 수락한 이유에 대해 “궁을 배경으로 한 양반들의 이야기가 아닌 하층민, 민초들의 삶을 다룬 점에 끌렸다”며 “민초란 먹고 사는 게 가장 힘든 배고픈 사람들이다. 어느 시대에나 배고픈 사람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 중기 경강의 마포 나루터가 배경이다. 조선의 모든 물자와 돈이 몰려드는 곳인 만큼 인간의 욕망이 들끓고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가운데 힘 없는 민초들이 하루 하루 먹고 살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일꾼 장시율(로운 분), 무덕(박지환 분)을 비롯해 시율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훗날 종사관이 되는 정천(박서함 분), 최고 상단의 딸 최은(신예은 분) 등을 중심으로 인간과 삶의 본질을 깊이 있게 통찰했다. 추 감독은 “궁중 사극은 양반·권력 다툼 등 정치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 작품은 하층민의 피를 빨아 먹는 그리 높지 않은 벼슬인 종사관 등 민초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악을 그린다는 점에서 끌렸다”며 “또 그들 뒤에 더 큰 악이 있고 그들의 손발이 되는 왈패 등이 민초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하는 층위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먹을 것이 없어 한 끼만 먹고 내일이 보장되지 않은 아귀 다툼이 벌어지는 시기가 임진왜란 직전이었다”며 “삶과 죽음 앞에서 무엇이든 하려 했던 하층민의 생존 본능을 다뤘다”고 강조했다.

특히 추 감독은 성실한 나루터 일꾼인 시율보다 진짜 주인공은 무덕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힘 있는 쪽에 붙고 싶지만 양심의 가책으로 흔들리는 인물인 무덕이 평범하고 인간적인 민초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시율로 대표되는 선한 인물과 무덕과 왈패 등으로 대표되는 악이 대결을 벌이는 듯 보이지만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을 관통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인간의 본능이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컴퓨터그래픽(CG)을 최소화하고 정통 촬영 기법을 고수한 점과 아이돌 출신 등 신인급 배우를 과감하게 캐스팅한 점도 호평을 받고 있다. 추 감독은 “아이돌 출신이라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놀랍도록 좋은 배우라는 점을 알게 됐다”며 “로운은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다 빼내서 연기를 해줬고, 예은이는 정말 좋은 배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