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 추창민 감독 “판타지 아닌 현실적인 조선 민초의 삶에 끌려”

2025-10-21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조선을 배경으로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럴듯하게 보이는 천성일 작가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선과 악으로 나눈 서사가 아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민초(민중을 잡초에 비유)를 담았다.”

17일 9부를 전체 공개한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탁류’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은 요즘 인기인 판타지 사극의 흐름을 따르지 않았다. 서인과 동인의 대립, 임진왜란 직전의 혼란한 조선 상황을 그대로 화면에 옮겨 그 시대 백성의 삶에 집중했다. 2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추 감독과 만났다.

‘탁류’는 조선의 모든 돈과 물자가 모여드는 지금의 한강 일대인 경강의 마포나루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액션 사극이다. 공개 이후 디즈니플러스 TV쇼 부문 한국 1위에 올랐고, 아시아권에서도 톱10에 진입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이후 오랜만에 사극으로 돌아온 추 감독은 KBS2 ‘추노’(2010)의 천성일 작가와 의기투합했다.

추 감독은 생생한 현실감을 전달하기 위해 CG(컴퓨터 그래픽) 대신 실제 공간에서 연출했다. 문경에 50m 인공 수로와 3만 평 규모의 세트장을 조성해 경강을 구현하고 시장 골목, 나루터, 포도청, 상단 창고까지 만들었다.

“환경부에서 장마철에는 인공 수로를 걷어내야 한다는 조건부 승인을 받아 촬영했다. 현실적인 공간과 자연광이 주는 분위기로 시청자들이 ‘진짜 조선’을 느끼길 바랐다. 전반적으로 어둡게 촬영한 것도 시대의 암울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시청자들이 몰입해 즐겼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배우들의 외형도 꾸밈없이 담았다. 장시율 역의 로운은 얼굴에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9부 내내 등장했고, 최은을 연기한 신예은은 아버지를 잃은 후 도피 생활을 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팅팅 부은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부정부패를 처단하는 좌포도청 종사관 장천 역의 박서함 역시 평소 피부톤보다 어둡게 분장했다.

세 명의 청춘 배우를 발탁한 추 감독은 “로운을 보며 ‘잘생긴 배우는 연기를 잘 못한다’는 선입견을 깼다. 자기 감정에 푹 빠져 연기한다. 박서함은 후반부 갈수록 연기가 좋아졌고, 신예은은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의 서희를 롤모델로 삼아 처음엔 발랄하다가, 사회를 겪으며 당당하고 냉정해지는 변화를 잘 표현했다”고 칭찬했다.

가장 애정이 가는 캐릭터로는 무덕(박지환)을 꼽았다. 무덕은 아부에 능하고 눈치가 빨라 죽을 고비도 피해간다. 추 감독은 “살기 위한 나쁜 짓을 하면서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인간적인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추 감독의 인성테스트를 거쳐 캐스팅됐다. “3~4개월 영화 촬영만 하다가 처음으로 8~9개월 촬영하는 시리즈를 하려니, 오랜 시간 소통할 좋은 인성을 가진 배우와 스태프가 중요할 거라 생각했다”며 “결과적으로 좋은 배우와 스태프와 인연이 닿아 기분 좋은 작품이 됐다”고 덧붙였다.

첫 시리즈를 연출하며 느꼈던 어려움으로는 ‘시간관리’라고 했다. 추 감독은 세밀한 연출로 하루 2개의 장면만 촬영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배우들에게는 “일반적인 슬픔과 기쁨을 표현하기보다 슬픔 안에서도 복합적 감정이 느껴지게 연기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다보니 중반부 왈패(나루터의 상인과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세력) 서사를 촘촘히 쌓아가는 전개가 다소 느리다는 시청자 반응도 있었다.

그는 “3~4개월에 2시간 영화를 찍는 작업만 하다가, 8~9개월에 9시간을 넘는 작품을 해야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서, 이 숙제를 잘 풀어야 다음 시리즈 연출도 가능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런 공들인 작업을 수행하는 이유로는 ”관객이 한 번 보고 이해하도록 감정을 연출하면 쉽다. 그렇지만 두 세번 보기는 힘들다. 자꾸 보고 싶은 작품을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탁류’는 시즌2를 바라는 시청자의 요청도 이어진다. “장시율의 복수 서사로 압축해 마무리할 수도 있었지만 여운을 주기 위해 주변 인물 이야기를 더 보여줬다. 주인공이 죽지 않았으니 여지는 남겼지만, 시즌제를 노린 건 아니다. 여러 조건이 맞아야 시즌2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극을 연출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엔 “이제 막 작품을 끝내고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차기작을 고르진 않았다. 다만 ‘광해’ 때는 내가 찍은 궁의 모습이 좋은 레퍼런스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출했다. ‘탁류’는 기존에 못해 본 하층민 이야기라서 선택했다. 앞으로도 마음에 맞는 이야기가 나와준다면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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