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한국 산불 걱정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3-31

지금으로부터 거의 41년 전인 1984년 5월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년 재위)가 한국을 방문했다. 교황의 방한은 사상 처음이었다. 그날 김포공항에 착륙한 특별기에서 내린 요한 바오로 2세가 무릎을 꿇고 한국 땅에 입을 맞추는 모습은 지금도 국민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는 한국인들을 향해 “대결과 전쟁이 아니고 대화와 상호 신뢰, 형제애로 다시 화목한 한가족이 되길 바란다”고 축복했다. 국내 언론은 ‘분단의 땅에 입맞추다’ 등 제목으로 이를 대서특필했다. 지금 돌이켜 봐도 한반도에 강림한 ‘5월의 크리스마스’가 아닐 수 없다.

1984년과 1989년 두 차례 한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와 달리 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2005∼2013년 재위)는 임기 중 방한한 적이 없다. 한국에 무관심했다기보다는 취임 후 8년도 채 안 돼 스스로 물러난 점에서 보듯 건강상 문제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 스승과 제자로 만난 인연도 있다.

2007년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베네딕토 16세가 김 추기경의 안부를 물으며 “김 추기경이 (학생 때) 독일어를 매우 잘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2013년 즉위한 현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듬해인 2014년 8월14일부터 18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을 다녀갔다. 이 기간 그는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회담하고 한국 천주교의 시조로 통하는 김대건 신부의 충남 당진 생가도 방문했다. 광화문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 시복식을 집전한 것은 참으로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그해 4월 일어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프란치스코가 희생자와 그 유족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은 한국인에게 큰 위로를 안겼다. 일각에선 ‘8월의 크리스마스’란 찬사도 나왔다.

1936년 12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현재 88세다. 몇 해 전부터 건강 악화설이 나돌더니 얼마 전에는 폐렴 증세로 꽤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지난 23일 퇴원한 그는 현재 외부 활동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의료진은 “상태가 호전되었다”면서도 최소 2개월 동안 요양할 것을 권고했다. 그런 프란치스코가 29일 최근 영남 지역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한국 국민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하길 기도한다”며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다니 그저 고마운 일이다. 그간 교황의 병세가 호전되길 간절히 바랐을 이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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