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이원 동원체계’ 도입에 청년 반발 시위
17년 만의 징병제 부활…크로아티아, 비용 부담 우려
병역제 논란 “시민과 국가의 관계 시험해”

냉전 종식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던 유럽의 징병제가 부활하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안보 불안이 고조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을 중심으로 병역 의무의 재도입·확대와 자발적 군사훈련 강화가 잇따르고 있다. 국가 차원의 병력 동원 시도가 본격화되면서 청년층의 거부감, 성 평등 논쟁, 재정 부담 등 새로운 사회 갈등의 불씨도 되살아나고 있다.
로이터통신과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독일 의회는 지난 5일(현지시간) 수개월간 논란이 돼온 새 병역법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현재 18만3000명 수준인 현역 병력을 2035년까지 26만명으로, 예비군은 최소 20만명 규모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기본적으로는 자발적 모집을 중심으로 운용하되 목표 인원이 충원되지 않으면 징병제를 발동할 수 있는 ‘이원 동원체계’다. 2011년 징병제 중단 이후 처음으로, 2008년 1월1일 이후 출생한 모든 남성이 단계적으로 군 복무 적합성 평가(신체검사)를 받게 된다. 18세 남녀 모두 복무 의향 조사 대상자지만 법적 의무 대상은 남성만 해당한다.
법안 발표 직후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는 청년층이 “전쟁 기계의 부품이 되고 싶지 않다”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남성만 의무 대상’이라는 형평성 논란까지 더해지며 파문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독일 매체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7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내부에서조차 병역 거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전직 군인 출신 의원들은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고 밝혔으나 일부 의원은 좌파 성향의 현 정부를 위해서는 희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AfD 지지층 일부도 온라인에서 “이 정부 아래서는 싸우지 않는다” “왜 반독일 정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비외른 회케 튀링겐주 AfD 대표는 “젊은이가 군복을 입기 전에 국가는 먼저 ‘독일인을 위한 국가’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극우 진영 내부에서도 균열이 감지된다.
독일 사례는 유럽 전역에서 나타나는 병역 정책 변화 흐름과 이에 따른 갈등의 한 단면이다.
지난 10월 크로아티아는 2008년 폐지됐던 징병제를 17년 만에 부활시켰다. 내년부터 18세 남성은 2개월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정부는 매년 약 1만8000명 규모의 병역 대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성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는 대체 복무 제도를 허용한다.
그러나 야권에서는 징병제 부활이 안보 위협에 대한 과도한 대응이고 장기적으로 사회·재정 부담을 초래한다고 비판한다고 현지 매체 베체르니 리스트가 보도했다. 정부는 훈련병 급여와 피복·장비 등으로 연간 약 2370만유로(약 405억원)의 군사훈련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한다.

프랑스도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1990년대 징병제를 공식 폐지한 이후 25년 이상 유지해온 전문군 체계를 손질해 18~19세 청년을 대상으로 10개월짜리 자발적 군사복무 제도를 도입했다. 2026년 여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첫 모집 규모는 약 3000명 수준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위험을 피하려면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며 청년들의 참여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프랑스 신문 르몽드는 사설에서 “이번 (병역) 프로그램이 프랑스에 실제로 필요한 국방 역량과 어떻게 부합하는지 여전히 의문”이라며 “앞서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했던 다른 제도처럼 비용 부담과 현실성 부족으로 실패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병역제를 둘러싼 논쟁은 다시 한번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시험하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의 위협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그동안 나토를 실질적으로 떠받쳐 온 미국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동맹국들에 더 큰 방위 부담을 요구하는 기류가 겹치면서 유럽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BBC는 유럽 전역에서 자발적 국가복무 확대부터 징병제 재도입까지 ‘동원 체계의 회귀’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나토 회원국 가운데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그리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노르웨이, 스웨덴, 튀르키예 등 9개국이 의무복무제를 유지한다. 이 중 튀르키예는 미국에 이어 나토 2위 규모의 군대를 보유한 국가로 20~41세 남성에게 6~12개월 복무를 의무화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남녀 모두에게 약 12개월 복무를 요구한다.
반면 영국을 비롯해 알바니아, 체코, 헝가리,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스페인 등은 징병제를 폐지한 뒤 직업군인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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