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하다는 요즘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지난 5일 한국선진화포럼에서 만난 청년들로부터다. 한국선진화포럼은 박정희 정부 당시 서강대 교수로 지내다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돼 경제부총리를 지낸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2005년 창립했다. 이날 포럼은 창립 20주년을 맞아 한국 경제의 지속 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토론의 무게중심은 정책 전문가들의 저성장 대책에 있었지만, 아직도 뇌리에 메아리치는 것은 청년 세대의 취업난 호소였다.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일본보다 잘사는 선진국 청년이 됐지만, 이 시대 청년 세대는 심각한 일자리 고민에 빠져 있다. 지난 7월 기준 15~29세 청년층의 공식 실업률은 5.5%였으나,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한 체감 실업률은 16.1%에 달한다. 같은 달 청년 고용률은 45.8%로, 전년 동월 대비 4년 만에 최저치다.
노란봉투법, 로봇 확산 촉발할 듯
정년연장도 청년 고용 기회 줄여
청년 고용 가로막는 정책 자제를
청년 취업난은 새로운 얘기도 아니어서 이런 통계를 접해도 무덤덤해진다. 그러나 당사자에게 실업은 곧 삶의 고통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 특히 기성세대가 청년 실업 문제에 둔감해졌거나 알고도 모른 체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는 점이다. 지난 4일 양대 노총 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초고령사회가 됐으니 하루빨리 법정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데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양대 노총이 근로자 권익 확대에 기여해온 것도 사실이다. 노란봉투법 통과로 원청 교섭권이 열리고, 취약계층의 처우가 개선될 소지도 커졌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청년 고용의 문을 좁힌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포럼에서 한 청년 토론자는 “올 하반기 서울대 채용박람회 참여 기업 수가 작년보다 32% 줄어든 91곳으로, 2007년 이후 18년 만에 최저 규모가 될 예정”이라며 “서울대가 이런데 다른 대학은 오죽하겠느냐”고 토로했다. 새 정부가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나선들 일자리 없는 대학 졸업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청년의 시선에서 본 일자리 위기는 심각했다. 인공지능(AI) 혁명으로 신입사원이 담당하던 자료 정리, 보고서 작성 같은 기초 업무가 빠르게 AI로 대체되고 있다. 첫 경력을 쌓을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년연장은 청년에게 공포로 다가온다. 연공서열형 임금 구조 속에서 자리를 오래 지키는 고연령 근로자가 늘면 청년 몫의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16년 법정정년 60세 제도화 이후 여러 연구에서 청년 고용 위축 효과가 거듭 실증적으로 확인됐다.
취업난은 청년들의 인생 멍에가 되고 있다. 대학 졸업을 미루거나 대학원 진학과 자격증 취득으로 스펙을 쌓느라 30세가 넘어 첫 취업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자연히 사회 진출과 자산 축적이 늦어지고, 결혼·출산도 지연되거나 포기하는 청년이 많아지고 있다. 반대로 아예 구직을 단념하고 ‘쉬었음’ 상태로 집계된 청년이 20대에서만 42만 명에 달한다. 수치라서 무감각하겠지만 줄 세워 놓으면 끝이 안 보일 인원이다.
청년들의 우려는 노란봉투법 이후 더 커졌다. 법 통과 다음 날 로봇·공장자동화 관련 기업 주가가 폭등했다. 한국의 로봇 밀도는 이미 세계 1위로, 1만 명당 로봇 수가 세계 평균(162대)보다 6배 많은 1012대다. 한 청년은 “최저임금 과속 인상이 키오스크를 늘렸듯이 노란봉투법은 청년 일자리를 줄이고 더 많은 로봇이 들어서게 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정년연장에 대해 청년들은 더욱 비판적이었다. 혜택은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 대기업·공기업 근로자와 공무원에게 집중될 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기업의 인건비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정년을 획일적으로 늘리면 청년 고용은 위축되고 기업 경쟁력까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노동정책의 역설이 뚜렷하기에 “소득 크레바스를 말하기 전에, 출발조차 못 한 청년에게 일자리 기회를 주는 것이 먼저 아니냐”는 목소리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대안도 제시됐다. 기업이 필요로 하고 일할 능력이 있는 경우 재고용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일본의 법정정년은 여전히 60세다. 이후 65세까지 고용 의무가 있긴 해도 기업 실정에 맞춰 정년연장·정년폐지·고용연장(재고용) 중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청년 고용을 가로막는 획일적 정년연장이 아니라는 얘기다.
도산 안창호는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고 했다. 거대 노조의 입장만 반영한 정책 부작용으로 청년 고용 빙하기가 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정책 실패를 피하고자 한다면 청년이 설 자리부터 만드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