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와 민주주의

2025-04-25

[문정주의 의료와 사회-11]

2025년 4월 4일. 못된 짓만 하던 대통령을 드디어 파면했어. 국회가 탄핵을 의결하고 헌법재판소가 파면을 선고하며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냈어. 123일이 걸렸으니 길기도 했지? 그 과정에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국민이었어. 서슬 퍼런 계엄이 선포되던 밤 국회로 달려가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섰고, 다음날부터 집회를 열었어.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서, 농민이 트랙터를 몰고 온 남태령에서, 대통령 관저 앞 한남동에서, 헌법재판소로 가는 광화문에서, 전국 곳곳에서 모여 외쳤어. 제멋대로 계엄을 선포해 총칼로 국민을 짓누르려 한 대통령을 쫓아내라고, 내란 우두머리를 처벌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자고.

그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많이도 했어. 언뜻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일본이 조선인을 강제로 중노동에 동원한 데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기후 위기를 무시해 태양광과 풍력발전에 등을 돌리고, 우리 사회의 성차별을 부정하며 여성가족부를 없애려 하고, 이태원 참사와 해병대 채상병의 죽음에 관해 진실을 숨기는 등,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의사인력 확대 계획도 그랬어. 2024년 2월 6일에 “의대 정원을 2025년부터 2,000명 증원”한다고 발표한 거야. 놀라운 숫자였어. 사람들은 놀라워하는 한편 미심쩍어했어. 단번에 그렇게 많이 늘려도 별 탈이 없을지, 4년 전에 정부가 400명을 늘리려 했을 때 전공의가 병원을 뛰쳐나가고 의과대학생이 집단으로 휴학하는 등 격렬하게 반대해 실패했는데 그 다섯 배를 늘리는 일이 과연 순조로울지.

미심쩍었어도 그 정책은 강력한 지지를 받았어. 여론 조사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무려 76%인 거야(한국갤럽, 2024.02.16.). 같은 조사에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겨우 33%였는데 말이지. 아니, 정책 하나에 대통령 지지율보다 2배로 긍정 평가가 나온다는 건 이상하지 않냐고? 그러게, 보통은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

응급실 뺑뺑이, 산부인과 헬기런, 소아과 오픈런

이상하다 할 만큼 강력한 지지는 우리나라 의료에 관한 사람들의 불안을 보여줘. 정치적 견해의 차이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는 거야.

이미 의료 현장에는 불안한 조짐이 있었어. 더구나 그 전해에는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 여론을 뒤흔들었어.

2023년 3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대구에서, 건물 4층에서 떨어진 17세 환자가 응급실을 전전하다 2시간 반 만에 구급차 안에서 숨을 거둔 일이 있었어. “‘도와주세요’라는 소리가 들린다”라는 신고에 구급대가 출동해 4분 만에 환자를 찾았고, 머리와 발목을 다쳤어도 간단한 대화를 할 정도로 의식이 있는 것을 확인했어. 가까운 파티마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는데 의사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필요해 보인다’고, 환자를 자기네 병원에서 진료할 수 없다고 했어. 그래서 경북대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이번에는 의사가 중증 외상(外傷, trauma)이 의심된다며 외상센터로 가게 했어. 그러나 그 병원 외상센터에서는 빈 병상이 없다며 환자를 받지 않았어. 계명대동산병원은 다른 외상환자 수술이 시작됐다는 이유로, 영남대병원은 외상환자 3명이 대기 중이라고,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신경외과 의사들이 학회·출장을 떠났다고 환자를 받지 않았어. 할 수 없이 구급대는 중소 규모의 병원에 연락해야 했어. 그러는 중에 환자가 그만 숨진 거야. 대학병원을 비롯해 의료기관이 수두룩한 대도시 한복판에서였어.

수도권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어. 2023년 5월 경기도 용인에서 밤중에 교통사고를 당한 70대 환자가 수술해 줄 병원을 찾지 못해 2시간을 구급차 안에 있다가 숨진 거야. 신고 접수 10분 만에 구급차가 도착해 환자가 심하게 다친 것을 보고 대학병원에서 수술받아야 한다고 판단했어. 하지만 가까운 대학병원 3곳이 모두 중환자실에 빈 병상이 없어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했고, 수원과 안산을 포함해 병원 8곳에 문의해도 받아주는 데가 없었어. 간신히 의정부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가 가능하다고 응답해 옮기던 중, 구급차 안에서 환자가 숨을 거두었어.

서울도 다르지 않았어. 2023년 5월 초 광진구 군자동에서 5세 아이가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해 숨졌어. 밤중에 40도로 열이 나고 숨이 가빠 119에 신고해 구급차를 탔어. 아주 가까이에 큰 대학병원이 몇 개씩 있었지만, 4곳에서 “병상이 없다, 진료할 수 없다”라고 했어. 5번째 병원에서 ‘입원 없이 진료만’ 받는 조건으로 응급실에 들어가 급성 폐쇄성 후두염이라 진단받고 약을 받아 집에 왔어. 그러나 다음날도 숨쉬기가 힘들어해 다시 응급실에 가려던 중 아이가 쓰러지고 숨졌어. 서울에 입원실이 있는 병원이 약 300개고 종합병원만 해도 50개가 넘는데 아이는 살지 못했어.

듣기만 해도 마음이 아프지? 사람들이 이걸 ‘응급실 뺑뺑이’라고 불렀어. 그 안에는 응급의료에 대한 불안, 아플 때 진료받을 귀중한 권리가 헌신짝처럼 취급된 데 대한 분노가 담겼어.

그런데 실은 응급의료 말고 다른 분야에도 구멍이 숭숭해. 대표적인 것이 분만이야. 지난 10년 동안 전국 산부인과 분만실 중 35%가 사라졌어(보건복지부 2024.05.16.). 분만실을 운영하려면 의료진이 여러 명 있어야 하고 당직을 서야 하는 등 어려움이 상당한데, 젊은 남녀의 혼인이 줄면서 임신도 줄어 분만실에 수입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야. 큰 도시에는 그래도 대학병원을 비롯해 분만을 받는 병원들이 있지만, 소도시나 농어촌에는 전혀 없는 곳이 늘었어. 그래서 임신한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먼 거리를 다니며 산전 진찰을 받고 만삭 때는 도시로 임시 이사도 해. 그렇게 해도 “갑자기 새벽에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울진에서 포항까지 비상등을 켜고 1시간 20분을 달렸다”라는 아찔한 일이 생겨. 드물게는 심한 자궁출혈로 구급대의 헬기를 타기도 해. 분만이 목숨을 건 모험이 되고 만 거야. 사람들이 여기에도 이름을 붙였어. ‘산부인과 헬기런’이야. 

또,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눈에 띄게 줄었어. 2017년과 2022년 사이 서울에서 12.5%가 문을 닫은 거야(서울연구원, 2023.05.22.). 태어나는 아이가 적어지면서 의원에 수입이 감소해 운영이 어렵게 된 까닭이야. 그 결과 남아 있는 의원에 대기 환자의 순번이 길어졌어. 감기가 유행할 때면 아침 일찍 그날의 접수가 꽉 차버려 어떻게든 아이를 진료받게 하려고 부모가 이른 새벽부터 의원 입구에 줄을 서. 이 고달픈 일에도 이름이 붙었어. 문 열기를 기다려서 뛰어간다고 ‘소아과 오픈런’이야.

공적 의료체계가 있어야

새로운 이름이 자꾸 생겨나지? 정말이지 머리가 무거워. 그런데 이 이름들을 허투루 볼 것은 아니야.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붙인 것 같아도 우리나라 의료의 허점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어.

허점은, 의료에 공적(公的) 체계가 없는 거야. 앞에서 소방서를 예로 들었던 것 기억나지? 소방과 같은 필수 업무에는 국가가 지역마다 공공기관(소방서)을 만들고 조직과 인력을 갖춘 체계를 세워. 그 체계 안에서 소방서는 화재나 재난에 대응하고 사람을 구조하는 일을 해내. 소규모 화재나 재난은 개별 소방서가 단독으로 대응하고, 규모가 큰일에는 이웃하는 소방서가 한꺼번에 나서서 협력해. 지난번 경상북도의 산불처럼 중대 재난이 일어나면 온 나라의 소방서가 달려가. 이처럼 조직 전체가 공동으로 책임을 짊어져.

그 공적 체계가, 소방만큼이나 필수인 의료에는 없어. 공공기관(공공병원)이 전국을 합쳐도 겨우 몇 개뿐이고 이 기관들을 조직적으로 연결하는 체계는 아예 없어. 물론 우리나라에 의료기관은 많지. 개인의원이 7만 개, 병원이 4천 개를 넘으니까. 하지만 모든 의원은 사립이고 병원은 95%가 사립으로, 국가가 의료를 떠넘긴 셈이야. 그러나 사립기관에는 한계가 있어. 돈을 벌어 이익을 내야 하는 한계, 기관 간의 관계는 오직 경쟁이라 서로 협력하지 못하는 한계야. 그래서 이익이 줄어들면 문을 닫아야 하고, 재난과 같은 사태가 벌어져도 조직적인 협력은 못 해.

공적 의료체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응급의료는 사실상 어려운 과제야. 더욱이 ‘사고로 심하게 다친’ 외상환자의 치료는 어떤 병원에게든 어려워. 어, 병원을 편드는 것 아니냐고? 뺑뺑이 사례를 보면 의사들의 소명감이 부족해 보인다고? 그렇게 단순하면 얼마나 좋겠어. 하지만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데는 인력과 시설이 까다롭게 필요해. 그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소명감도 소용없어.

어디 한번 자세히 살펴볼까. 여러 곳을 다쳤으니 여러 과목의 전문의가 있어야 하고, 환자 상태가 위험하니 즉시 치료해야 하고, 곧장 수술할 수 있게 빈 수술실이 있어야 해. 그래야 신속하게 처치하고 수술해서 환자를 살려. 만약 병원의 여건이 그렇지 못하면, 즉, 치료를 맡아야 할 전문의 중 일부 과목 전문의가 그날 없거나, 있어도 다른 수술을 하는 중이라 환자를 봐줄 수 없거나, 반대로 의사는 있는데 병원 안의 수술실이 모두 꽉 차서 빈방이 없으면, 그때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 그래서 “우리 병원은 받을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오는 거야.

갑갑하지. 여기서 분명한 건, 개별 병원이 단독으로 치료를 맡는 한 뺑뺑이를 피할 수 없다는 거야. 환자를 살리려면 의사가 어디에 있든 달려올 수 있어야 해. 수술실에 빈방이 어느 병원에 있든 쓸 수 있어야 해. 다시 말해, 병원과 병원이 벽을 넘어 협력하는 공적 체계가 있어야 해.

이탈리아 볼로냐에서라면

공적 의료체계가 상상이 안 된다고? 당연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거라 낯설어. 다행히도 참고할 나라들은 있어. 유럽에서, 특히 국영의료제도를 갖춘 10여 개 국가에는 공적 의료체계가 있어.

그중 이탈리아를 소개할게. 이탈리아는 국영의료제도를 통해 국가가 의료를 책임져. 지역별로 있는 ‘의료본부’가 의료체계의 중심이야. 그 체계에 기둥이 두 개 있어. 첫째, 공공병원 조직체야. 지역 곳곳에 있는 공공병원에서 사람들이 응급·분만·수술·입원을 무료로 이용해. 둘째, 주치의 등록제야. 누구나 주치의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등록제를 본부가 관리해.

이탈리아 중북부에 인구 87만 명의 도시 볼로냐가 있어. 이곳 의료본부는 900병상의 마조레 병원을 비롯해 공공병원 9개를 운영해. 병원들은 개별 기관이 아니고 하나로 통합된 조직체야. 병원에서 진료하는 1,300여 명 의사들도 병원별 구분 없이 내과부, 외과부, 응급부 등으로 전문 분야별 부서에 소속돼. 응급부에는 응급의학과, 외상외과, 외상 척추외과, 외상 정형외과 전문의 200여 명이 있어. 이 전문의들이 9개 병원에 있는 모든 응급실, 마조레 병원에 있는 응급의료센터와 외상센터를 지켜.

2023년 우리나라 대구의 17세 환자가 이탈리아 볼로냐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지역 신문에 이렇게 기사가 났을 거야.

“심하게 다친 환자를 구급대가 출동 4분 만에 찾았다. 가까운 부드리오 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옮겼고 의사가 긴급히 검사를 하는 동시에 응급부 중앙에 알렸다. 중앙에서는 외상외과 수술이 즉시 필요하다고 판단해 전문의에게 알리고 마조레 병원 외상센터에 연락했다. 센터는 이 환자를 즉시 수술하기 위해 예정된 수술 일정을 바꿔 빈방을 마련했다. 환자가 센터에 도착하자 곧 수술이 시작됐다. 3시간 뒤 환자는 부모가 지켜보는 회복실에서 눈을 떴다.”

우리나라의 결말과는 완전히 다르지? 공동으로 협력하는 공공병원 조직체가 환자를 살려. 이렇게 공적 의료체계가 있는 데서는 “우리 병원이 받을 수 없다”라는, 환자를 벼랑 끝으로 모는 말이 나오지 않아. 응급실 뺑뺑이도 없어.

안전한 분만을 위한 공적 체계도 이탈리아에서 볼 수 있어. 1970년대에 국영의료를 도입할 때 가장 먼저 이 체계부터 세웠어. 2단계로 구성돼. 첫 단계가 동네마다 있는 ‘가족상담진료실’이야. 이곳에 의료본부 소속의 의사, 조산사, 사회복지사가 있어서 임신부를 상담하고 산전진찰을 해줘. 다음 단계가 공공병원의 ‘분만센터’야. 임신 36주가 되면 임신부를 센터의 진료실로 보내서 분만을 준비하게 해. 볼로냐에는 마조레 병원에 분만센터와 신생아 집중치료실이 있어 지역의 거의 모든 분만을 여기서 받아.

소아과 오픈런도 이탈리아에는 없어. 아이들을 위한 주치의 등록제 덕분이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0~6세 아이들의 주치의를 맡는데, 지역에 있는 전문의 명단에서 부모가 선택해 등록하면 돼. 주치의는 아이가 정기 검진과 필수 예방접종을 받게 하고 아플 때 진료해 주며 집으로 왕진도 와.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관찰해서 부모와 육아 상담도 해. 주치의가 해주는 모든 것이 무료야.

어렵게 지켜낸 민주주의로

며칠 전 정부가 내년도 입시에 의과대학 정원을 원점으로 되돌리기로 했어. 작년 2월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세등등하게 2,000명 증원을 발표하던 것을 생각하면 무색하기만 해. 그리고 무책임해. 국민은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퇴사하며 일어난 의료대란으로 1년 넘게 고통받고 있어. 그 고통을 겪게 해놓고 아무런 성과 없이 원점으로 되돌린다면 그건 국민에 대한 배신이야.

애초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정부에 과연 있었는지 의심스러워. 사실 정부 계획은 빈 수레였어. 2,000이라는 숫자로 눈길을 끌었지만, 증원된 의사가 어떻게 일할 건지에 관한 계획이 없었어. 증원과 함께 추진한다는 ‘필수의료 패키지’에는 일부 분야에 돈을 올려준다는 것뿐이야. 이것만으로는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어. 의사가 수천 아니라 수만 명이 늘어도 일할 곳이 사립기관뿐이면 문제는 그대로 남아. 응급실 뺑뺑이도, 산부인과 헬기런도, 소아과 오픈런도 지금처럼 반복돼.

이제 우리나라는 새봄을 맞이했어. 주권자로서 당당히 요구하자. 더 나은 의료체계를, 국민의 생명을 살리고 건강을 보호할 공적 의료체계를 말이야. 우리가 지켜낸 민주주의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그렇게 이루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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