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명찰’을 획득하다

2025-03-23

김길웅, 칼럼니스트

‘해병대 신병 1390명, 정예 전사로 거듭나다.’ 지난 14일 자 인터넷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새벽에 무심코 신문을 훑어 나가다 눈이 딱 마주친다. 무얼 잊고 챙겨 나오지 못한 양 멈칫했다. 손자 ‘지용’의 해병대 입대 소식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저 오늘 훈련 마쳤어요. 내일 수료식을 끝내면 부대 배치를 받습니다. 김포가 될 것 같아요.”

어제 지용이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대학을 휴학하고 해병대로 입대해 신병 교육을 받은 지 6주 만에 끝난 훈련이다.

‘폭설 속에 입대해 고생한다 했는데, 아, 드디어 그 힘들다는 해병대 신병 훈련을 견뎌냈구나.’

한데 지용이가 전화를 걸어 놓고 말을 잇지 못하는 게 아닌가. 더듬거리는 걔의 얘기에서 저간의 정황을 알아차렸던지, 아내는 흐느끼며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전화는 더 이어지지 못하고, 훈련을 무사히 마쳤다는 걸로 흐지부지 끝났다. 전화를 바꿔 든 나도 “지용아, 힘내이?” 한마디 한 게 고작이었다.

뒷날 다시 지용이 전화다. 격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렸던 걸까. 그래도 그쪽 상황을 자세히 털어놓지 않으니, 속이 뒤숭숭한 채 하루를 넘겼다. 그러고서 오늘 인터넷을 통해 해병대 신병 탄생 소식을 접한 것이다. 기사는 소상했다. 머리에 신병 수료식 현장으로, 일사불란하게 대오를 맞춰 거수경례하는 장면을 클로즈업해 싣고 있었다.

아, 저 대열 속에 우리 지용이가 들어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기사는 ‘해병대 교육훈련단이 연병장에서 신병 1314기, 1390명의 수료식을 개최했다.’로 시작하면서, 2월 3일 입영, 6주 동안의 강도 높은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빨간 명찰’을 획득, 정예 해병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로 이어지고 있다. 수료식엔 지휘관, 군부 요인과 해병 가족 5000여 명이 참석했다 한다. 해병 자격 선포, 해병의 긍지 제창으로 진행된 의식이 퍽 낯설었다. 교육훈련단장이 해병 자격을 공식 선언하자, 도열한 신병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고, 가족들은 뜨거운 박수로 응원을 보냈다. 훈련단장은 훈시에서 특히 빨간 명찰을 향한 자부심과 자신감이라면 어떤 임무라도 완수해 낼 것이라고 격려했다.

훈련 과정은 순탄찮았다. 대설과 꽃샘추위 속에서도 투철한 해병대 정신과 극기주의, 끈끈한 전우애로 천자봉 고지 정복을 완수했다. 가족이 참석하지 못한 훈련병을 위해 포항 해병대전우회에서 격려 행사를 마련, 해병대의 전통적인 전우애와 애대심을 보여줬다. 이어지는 사진에 눈이 꽂히면서 그만 오열하고 말았다. 막 수료식을 끝낸 아들을 부둥켜안고 볼을 비비는 어머니의 뒷모습. 일에 치여 제 아빠도 못 갔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몸이 안 좋아 가보지 못했다. 지용인 부모가 참석지 못한 신병들 틈에 끼어 선배로부터 대접을 받았겠다. 와락 가족이 보고픈 순간, 쏟아져 나온 울음이었구나, 어제 북받치던 그 울음.

“지용아, 나라의 해병으로 거듭난 우리 지용이, 요즘 첫 휴가는 빨리 준다지? 그때 할아버지가 꼬옥 안아 줄게, 그럼 됐지?”

손자 가슴에 붙인 빨간 명찰이 보고 싶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