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10대부터는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게 돼 낮에는 목수 일을 하고 밤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고향을 떠나 오래도록 떠돌아다니며 살았는데, 생판 모르는 객지의 여인숙, 마을회관, 공장, 제재소, 모텔, 산 속 컨테이너 같은 숙소에서 밥 먹듯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밥을 먹으면 힘이 나듯이 그림은 제게 또 다른 힘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공사현장을 누비는 박정근 작가의 개인전 ‘마음을 흔드는 것들’이 내달 2일까지 전주한옥마을 내 향교길68미술관에서 초대전으로 열린다.
박정근 작가는 전북 남원에 거주지를 두고 있지만 세상에, 특히 전북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현장에서 건축 일을 하며 살았고, 그림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뒤늦게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그간 몇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지만 작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 갤러리에서의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라 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영혼의 개’는 다양한 오브제가 어지럽게 뒤섞인 배경에서 하얀색 개 한마리가 명징하게 걷는 모습을 담았다. 어렸을 적 키우던 개를 생각하며 그렸지만, 실은 작가 자신의 자화상과 같은 그림이다. 10대 후반부터 건설현장을 누비며 자신이 버려진 개와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해봤다는 작가는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면, 당연히 개에게도 영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 버린 화판에 먹물을 먹이거나 잡지를 스크랩해 붙여보기도 하고, 흙이나 모래를 바르기도 했다. 그렇게 거친 배경을 만든 뒤 조금씩 석회로 개의 형상을 잡아갔다. 하루 이틀이 아닌 몇 년에 걸친 작업이었다.

‘꽃이 어울려’는 영화 ‘미녀와 야수’의 야수를 닮았다. 들에 사는 거친 짐승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웃는 얼굴로 꽃을 꽂고 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깃든 것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사람 안의 짐승성, 짐승 안의 인간성 같은.
상처 입은 남자가 밑바닥을 기어다니다 꽃을 만나는 작품도 있다. 밑바닥 인생을 헤매던 작가에게 그림이 그랬을 것이고, 뒤늦게 꾸린 가정이 그랬을 것이다. ‘짐승의 기분’은 흙에 풀잎, 나무껍데기 등을 섞어 그렸다. 단순하고 선한 짐승의 표정을 그리고 싶어서. 선량한 짐승의 눈빛을 그리고 싶어 내놓은 작업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말 못하는 짐승의 기분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하고 함부로 하지 않겠지 싶어서.
향교길68 조미진 관장은 “지난 6월 우연히 남원아트센터에서 작가를 만났는데 단순한 구도, 자유로운 형태와 색채, 나무로 거칠게 만들어낸 공작물들을 보면서 마음속 깊이 뭉클한 것이 일어 초대전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목수로서 노동 현장에서 작업을 해 왔을 그의 땀 냄새와 숨소리,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진심까지 느껴졌으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조용히, 그리고 깊게 작품에 담아내는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박정근 작가는 “흔하게 핀 들꽃처럼 흙에서 자랐고, 그런 흙의 마음과 영혼 같은 것들을 그리거나 만들고 싶었다”면서 “사랑, 꿈, 희망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것들,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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