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악기·연주법 살려 바흐가 상상했던 소리 찾죠"

2025-08-24

“과거 바흐는 고결하고 위대하지만 어딘가 거리감이 있는 음악가였죠. 이제는 고음악을 그대로 재현하는 ‘원전 연주’를 통해 훨씬 더 친밀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역사주의 연주’의 거장 필리프 헤레베허는 최근 이메일 인터뷰에서 바흐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역사주의 연주는 고음악을 당대 악기와 연주법을 활용해, 작곡가의 의도에 최대한 가깝게 원전에 충실한 방식으로 재현하는 연주다. 그는 다음달 18~20일 서울·대전·인천에서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와 함께 바흐 ‘b단조 미사’를 19년 만에 국내 무대에 올린다.

헤레베허는 평생 바흐의 거의 모든 작품을 연주·녹음해 왔지만, 특히 b단조 미사를 독보적인 작품으로 꼽는다. 그는 “평생 이 곡을 200번 정도 지휘했다”며 “마태 수난곡과 마찬가지로 매번 새로운 경험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한 미사곡이 아니라, 바흐가 생애 전반에 걸쳐 쓴 여러 악장들을 모아 말년에 음악적 유산으로 남긴 곡”이라며 “대위법적 완성도와 영적인 힘이 응축돼 있는, 존재론적 여정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그는 바흐를 당시 악기로 연주하는 의미에 대해 “바흐가 상상했던 소리의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시대 악기로 연주할 때 “음악은 더 투명하고 따뜻해지며, 구조와 의미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바흐의 목소리를 ‘더 크게’가 아니라 ‘더 진실되게’ 전달하기 위해 시대 악기 연주가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헤레베허는 역사주의 연주 자체도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고 했다. “지식의 폭이 넓어지면서 엄청나게 발전했고, 다양성도 확대됐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은 음악 자체에 대한 존중입니다. 모든 세대가 바흐를 새롭게 듣고 이해해야 합니다.”

함께 내한하는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는 헤레베허가 벨기에 겐트대 의대생 시절 친구들과 1970년 창단한 합창·연주 단체다. 그는 창단 동기에 대해 “여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라는 농담 섞인 설명을 했으나, 이후 이 단체가 의사의 길을 내려놓고 전업 음악가로 나설 수 있도록 지탱해준 ‘55년의 동반자’가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솔리스트로도 손색없는 연주자들의 역량과 레퍼토리에 맞춰 최적의 합창단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정신과 의사였다가 지휘자로 전향한 독특한 이력 역시 그의 음악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의과대학에서는 사고하는 법을 배우는데, 이는 정신의 근육을 단련하는 것과 같다”며 “지휘자는 분석적 사고력과 더불어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헤레베허는 음악의 목표를 ‘영적인 소통’으로 정의했다. 그는 “음악은 언어 없이도 고요, 긴장, 기쁨, 고통, 초월을 나눌 수 있게 하는 영적인 소통의 한 형태”라며 “만약 공연을 통해 음악이 단순한 소리를 넘어 마음과 정신을 동시에 울리는 순간을 만들 수 있다면, 저는 그 목표를 달성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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