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전시] 비디오가 만들어 내는 시공간의 초월적 경험은 무엇인가

2025-08-24

빛과 비디오로 가득한 도시 속 우리는 얼마나 깊이 몰입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백남준이 반세기 전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백남준아트센터 특별전 ‘백남준의 도시: 태양에 녹아드는 바다‘는 ‘비디오 몰입’이라는 화두로 관객을 맞이한다. 영상과 소리가 쏟아지는 공간에서 우리는 현실과 가상을 오가며 초감각적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

전시 제목은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시 ‘영원‘의 구절에서 차용됐다. 백남준은 이 표현을 통해 비디오의 비선형적 시간 감각을 은유했고 기술과 예술,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미래 도시를 상상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사유를 출발점으로 동시대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실험을 통해 확장된 ‘비디오 몰입’을 제시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백남준의 대표작 'M200'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작품 제목의 M은 모차르트를 의미하며 1991년 함부르크에서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됐다.

86대의 CRT TV를 수직과 수평으로 쌓아 올려 만든 대형 비디오월에는 모차르트의 연주 장면과 피아노, 메트로놈, 악보 이미지가 백남준 특유의 시각 효과와 함께 교차한다.

여기에 '굿모닝 미스터 오웰', '세계와 손잡고', '머스 바이 머스' 같은 주요 푸티지가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한 영상 환경을 구축한다.

단일 채널 TV에서 출발했던 그의 실험은 시간이 흐르며 여러 대의 텔레비전을 조합한 비디오월로 확장되었고, 이후에는 프레임이 사라진 레이저 매체로까지 이어지며 천장과 벽, 바닥까지 아우르는 무한한 시공간으로 진화했다.

이처럼 M200은 백남준이 비디오를 통해 공간 전체를 매핑하며 ‘환경’을 창출하려 했던 시도를 응축한 상징적인 작업이다.

염인화의 '솔라소닉 밴드'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강렬한 체험형 작품 중 하나다.

AI와 확장현실(XR)을 결합한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로, 암석권, 대기권, 빙하권 등 기후계를 무대로 설정해 인공지능 밴드 멤버들이 연주 리허설을 이어간다.

관객은 증강현실 기반의 밴드 스탠드를 통해 ‘밴드 리드’가 되어 악기를 지휘하며 공연에 참여한다. 이 작품은 기후 위기 시대에 야외 공연을 지속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기술을 동원하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했다.

기후와 미디어, AI의 관계에 대한 유기적인 고민을 담아, 기술이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이중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따라서 '솔라소닉 밴드'는 단순한 가상 공연이 아니라,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공연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적 선언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구기정의 '투명성 렌더링 장치'는 실제 식물과 토양, LED 구조물을 결합해 자연과 기술이 교차하는 과정을 드러내며, 이미지가 생성되는 방식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권혜원의 '더블 비전'은 입체시 3D 기술을 활용해 몰입 환경 속에서 오히려 닫힌 세계에 갇히는 역설적 상황을 표현하며 현대인의 시각 경험을 다시 묻는다.

설치작업 외에도 ‘오픈 서킷 스페이스’라는 별도의 공간에서는 360도 스크린 프로젝션 영상이 상영된다.

먼저 백남준의 '호랑이는 살아있다'는 한반도의 분단 현실과 새로운 천년을 향한 희망을 담아 보여주고 강이연의 '배니싱'은 인류세 대멸종을 시각화하며 환경 위기를 환기한다. 구기정의 '투명성 시각 풍경'은 빛과 장치가 만들어내는 투명성 개념을 영상으로 확장한다. 권혜원의 '우로보로스 엔진'은 360도로 천천히 회전하는 파노라마 풍경 속에서 시간이 선형적으로 흐르기보다 끊임없이 돌고 도는 순화하는 세계를 표현한다. 또 염인화의 '솔라소닉 밴드(Inst.)'는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악기와 기후 요소가 만들어내는 ‘기후 리허설’을 그려낸다.

'백남준의 도시: 태양에 녹아드는 바다'는 10월 19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 제2전시실에서 열린다. 이후 전시는 야외 미디어월과 용인포은아트홀로 확장되며 연말까지 이어진다.

[ 경기신문 =류초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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