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저도 5년 간 절약해서 4000만원 목돈을 만져보고 싶은데, 당장 우리 회사는 비용이 발생하는 사업을 무조건 외면해요. 기업이 누릴 수 있는 혜택도 모호하다 보니, 윗분들도 바로 포기하라고 하시네요. 그림의 떡입니다."
#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직장인 A씨. 최근 정부가 홍보 중인 '중소기업 재직자 우대 저축공제' 가입을 고민하고 있다. 은행 예금이자가 3%대로 떨어진 것과 달리, 5년 간 매월 50만원씩 납입하면 만기 시 최대 4000만원의 목돈을 쥘 수 있는 까닭이다. A씨는 회사에 좋은 상품이라며 소개했지만, 회사는 기업 부담이 크다며 상품 가입을 포기하라고 회답했다.
'중소기업 재직자 우대 저축공제' 가입자가 출시 23일만에 1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 연 13.5%의 금리'로 '최대 34%의 수익률'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 중소기업 재직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같은 홍보효과와 달리, 많은 중소기업들이 상품 가입을 꺼리고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옛 내일채움공제는 근로자가 매달 납입하는 만큼 정부도 기여금을 제공했는데, 이번 저축공제는 기업이 납입금의 일부를 모두 부담해야 하는 까닭이다. 정부가 가입사에게 법인세 및 대출이자 감면 등의 혜택을 제공하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14일 중소벤처기업부 및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출시된 '중소기업 재직자 우대 저축공제'는 23일만에 가입자 1만명을 달성했다.
해당 상품은 중소기업 재직자가 5년간 매월 10~50만원씩(총 600만~3000만원)을 납입하면 5년 후 기업의 기여금 최대 1027만원이 더해져 총 805만~4027만원을 수령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
가령 근로자가 월 10만원 납입할 경우 5년 뒤 예상 수령액은 805만원에 달한다. 월 30만원은 5년 뒤 2416만원, 월 50만원은 5년 뒤 4027만원을 각각 수령하게 된다. 중소기업 재직자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며, 적립금은 근로자가 납입한 금액의 20%를 기업이 부담해야 한다.
이는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기획한 '청년내일채움공제'와 유사하다. 두 사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재정 투입 여부와 가입기한, 가입대상 등이다.
기존 청년내일채움공제는 만 34세 이하 청년이 2년간 월 12만 5000원(총 300만원)을 납입하면, 기업에서 300만원, 정부에서 600만원을 각자 지원해 총 1200만원의 목돈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특히 정부는 기업들의 비용부담을 의식해 적립금을 △30인 미만 기업 전액지원 △30~49인 기업 80% 지원 △50~199인 기업 50% 지원 등으로 사실상 비용을 대납해줬다.
하지만 당시 상품은 '청년'에만 가입대상을 국한해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다, '1000만원대의 목돈 확보'가 장기근속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해 정부는 이번에 가입기간을 연장해 목돈 규모를 대폭 늘리고, 세제혜택 등의 혜택도 제공하기로 했다.
대표적으로 세제혜택을 살펴보면, 근로자에게는 기업지원금에 부과되는 소득세의 50%(청년은 90%)를 감면해주고, 기업에게는 기업지원금에 대한 법인세 9~24% 적용 또는 세액 25%를 공제해준다.
은행들도 다양한 금융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해당 상품 가입 시 중소기업 재직자에게 최고금리 연 5.0% 외에도 가입자 10만명 달성까지 매 1000번째 가입고객에게 연 3.0%포인트(p)의 특별우대금리를 추가 제공하고 있다. 또 기업의 가입 부담 완화를 위해 '중소재직자우대저축공제' 가입 기업을 대상으로 대출 이자 및 카드 결제 대금 등에 사용할 수 있는 금융 포인트를 기업당 최대 50만원까지 제공한다.
하나은행도 가입사에게 수수료 및 환율우대, 금리감면, 단체 상해보험 등의 혜택을 제공 중이다. 또 상품에 가입한 근로자에게 하나머니 5000포인트를 제공하고, 상품에 가입한 근로자가 5명 이상인 기업에게는 이달 말까지 대표자 앞으로 최대 50만 포인트를 지원한다.
이를 통해 정부는 근로자에게 자산형성의 기회를 제공하고, 기업들도 인력이탈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 중소기업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비용절감'만 내세워 부담금을 지불할 용의가 없는 까닭이다. 여기에 경직적인 인사문화까지 더해져 근로자가 섣불리 회사 측에 제안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근로자가 이 상품에 가입하려면 기업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과 선제적으로 협약을 맺어야 한다. 인력난이 극심하지 않고서는 기업이 선제적으로 상품 가입을 독려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셈이다.
또 적립금 부담도 모자라 거래은행 변경 등의 복잡한 행정절차를 반길 기업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평가도 있다. 아울러 정부가 제공하는 세제혜택도 기업에게 실질적으로 얼마나 이득인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중소기업 재직자는 "기업이 가입자가 낸 금액의 20%를 같이 내줘야 하는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 참여할 기업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다"며 "회사 재직인원이 100명대에 달하는데, 상품을 소개했더니 돈 없다며 안 해준다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직자도 "기업이 중진공과 협약해야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인데 회사 눈치를 보느라 용기내어 신청해달라 말할 수 없다"며 푸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