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국제공항 제3터미널. 공항을 나서면 왼쪽에는 붉은색 간판을 내건 에미레이트그룹의 본사가, 오른쪽으로는 도심행 지상철 역사 한 면에 에미레이트항공의 거대 전광판이 입국객을 맞았다. 면적 약 51만㎡로 인천공항 1터미널과 규모가 비슷한 두바이공항 3터미널은 에미레이트항공만 쓰는 전용 터미널이다.
UAE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은 주요 도시에 허브 공항을 짓고 항공·관광 산업을 빠르게 육성하고 있다. 석유 생산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다변화하고,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차원에서다. UAE정부는 국가 전략인 ‘관광전략2031’을 통해 UAE를 세계 최대 관광 목적지로 키우고, 연 4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해 두바이에는 1872만 명의 여행객이 묵어 전년 대비 9% 증가했다.

이 성장 전략의 중심에 에미레이트 항공이 있다. 1985년 보잉과 에어버스 각 1대씩 총 2대의 항공기로 운항을 시작한 이래, 40년 만에 운용 항공기 규모는 260대 이상, 취항 노선은 150여개 노선으로 빠르게 늘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두바이 항공 산업(에미레이트 그룹·두바이 공항·연관 산업) 규모는 373억 달러(약 53조원) 규모로, 두바이 GDP(국내총생산)의 27%를 차지할 정도로 항공산업이 무역·관광·고용 등에서 핵심 성장 동력이다.

빠른 성장의 핵심 요인은 환승 마케팅과 연계 혜택이 꼽힌다. 에미레이트 항공은 여러 대륙을 잇는 중동의 지리를 환승의 허브로 내세워 6개 대륙의 150개 도시를 연결한다. 다른 항공사 직항 티켓보다 가격도 낮은 편이다. 예를들어 이달 말 인천-파리 왕복 티켓(이코노미석 기준)은 국내 대형 항공사 직항으로 243만원에 이용할 수 있지만, 에미레이트 항공으로 두바이 경유 시 144만원으로 100만원가량 저렴해진다. 6~8시간 이상의 장시간 환승 시에는 ‘두바이 커넥트’ 프로그램으로 호텔 숙박과 교통편, 음식도 제공된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중동 항공 3사(에미레이트·에티하드·카타르항공)을 이용한 인천공항 출입국 여객은 89만9080명으로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았고, 올해 8월 기준 인천에서 두바이를 경유해 연결편에 탑승한 고객이 약 80% 이상이었다.

공격적인 투자와 인프라 확충을 통한 서비스 개선에도 적극적이다. 보유 항공기를 전면 개조해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을 신설 중이다. 연말까지 전체 항공기의 40%에 도입해 70개 도시를 운항할 예정이다. 시설 투자도 늘렸다. 지난 9월과 10월, 두바이 공항 3㎞ 인근에 각각 1억3500만 달러(약 1923억원)와 800만 달러(약 114억원)를 투자한 항공 안전 교육 센터와 객실 승무원 전문 환대 교육시설을 공개했다. 16일 방문한 트레이닝 센터에서는 에미레이트항공이 운영하는 3종 항공기를 실제 크기로 구현한 시뮬레이터가 갖춰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2층 구조 비행기인 A380의 2층과 지상을 잇는 13.4m 슬라이드 비상 탈출 교육과 해상 비상 착륙 훈련 등이 이뤄진다. 에미레이트 항공 관계자는 “기존 대형기와 새로 도입할 A350까지 실제 모습 그대로 교육하기 위한 곳으로,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투자는 두바이 지방 정부의 전략과도 맞물린다. 두바이 통치자인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막툼은 지난해 알막툼 국제공항에 350억 달러(약 50조원) 규모의 새 여객 터미널 건설을 승인했다. 두바이 국제공항의 5배 규모로 확장 중인 알막툼 공항은 연간 최대 2억6000만 명의 승객 수용을 목표로 두바이 공항의 기능을 2032년까지 이관할 계획이다. 에미레이트 항공 관계자는 “정부의 공항 투자는 부지 확대뿐 아니라 고객 경험을 향상하는 전략적 조치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 시장은 중동 항공사들에도 중요한 시장으로 꼽힌다. 에미레이트 항공은 지난해 2월부터 인천-두바이 노선을 주 7회에서 주 10회로 증편했다. 에티하드 항공도 아부다비 노선을 주 7회에서 11회로 늘리며 한국 소비자와의 접점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이근영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중동 항공사들이 고급화된 서비스와 가격으로 경유 노선을 확장하면, 국내 항공사들의 유럽 등 장거리 직항 노선이 타격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거 호주 콴타스 항공은 중동 항공사의 확장으로 호주발 로마(2003년), 파리(2004년), 프랑크푸르트(2013년) 노선 등을 순차 폐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