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전문가’ 김은영(43) 서울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한 40대 후반의 교직원이 찾아왔습니다. 2년 넘게 지속된 피로감 때문에 여러 검사를 했지만 특별한 이상이 없자 마지막으로 정신과 진료실을 찾은 거였죠.
잠을 얕게 자서 아침에 일어나기 너무 힘들어요. 전보다 감기도 잘 걸리고, 술도 금방 취하고 숙취도 오래가고요.
운동은 좀 해보셨나요?
해봤는데 소용 없었어요. 요즘엔 회의 일정도 깜빡하고, 업무 실수도 많고요. 퇴근하고 나선 너무 피곤해서 가족들과 말하는 것도 버거울 정도예요. 일반 병원도 가봤는데,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하니 답답해 죽을 노릇이에요. 저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닐까요?

혹시 이 기사를 읽는 여러분도 위 사례처럼 “지친다”는 말을 달고 살지는 않나요. 원인도 모른 채 피곤함에 절어 하루하루 버티며 살고 있지는 않나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지금 딱 쉬어야 할 타이밍입니다.
김 교수는 ‘휴식의 힘’을 강조합니다. 제대로 된 휴식 없이 떠밀리듯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나를 갉아먹는 삶에 적응하게 된다는 거죠. 몸과 마음이 내는 구조 요청 신호도 들을 수 없게 됩니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하는 마음으로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일상이 무너지게 되죠.
10년 넘게 서울대 보건진료소 정신건강센터에서 서울대 학생과 교직원의 마음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김 교수는 “특히 서울대 학생들에게서 번아웃 증상이 많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것만 배웠지, 제대로 쉬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죠. 서울대라는 목표를 이루고도 불안해하는 학생이 많다고 하는데요. 도대체 쉬는 게 얼마나 중요하길래 김 교수는 이렇게 강조하는 걸까요. 휴식의 방법을 담은 책『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심심)를 쓴 그에게 해답을 들었습니다.
✅ 서울대 입학해놓고 왜 이렇게 불안해하나
서울대 정신건강센터는 언제 생겼나요?
1965년에 생겼으니까, 유서가 되게 깊죠. 원래 서울대병원에서 트레이닝 받는 정신과 전공의나 임상강사가 파견돼 실습하는 곳이었어요. 그러다 90년대부터 대학생 자살이 늘자 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생겼죠.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의 경우 90년대엔 한 해에 학생 6명이 자살한 적도 있어요. 2000년대 초반에는 4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기도 했으니까요.
학내에 전문적으로 학생들의 정신질환을 예방하고, 진료하고,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저도 그렇게 임용됐죠. 현재 학내에 정신건강센터가 있는 곳은 서울대를 비롯해 카이스트·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 세 군데예요.
대체로 공부를 많이 하는 학교들이네요?
그렇죠. 초기 성인기는 스트레스가 엄청 많은 시기예요.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취업이나 진로같이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니까요. 가뜩이나 불안한 시기를 지나야 하는데, 실패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까지 더해진 거예요. 주위 친구들은 다 잘하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본인을 갈아 넣다가 번아웃이 오는 학생이 많죠.
서울대 학생들도 그런 고민을 하나요?
내담자 기준으로 얘기하면, 엄청난 긴장 상태에 놓인 학생들이 절대다수예요. 특히 취업할 시기가 됐을 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안한 마음에 진료실을 오는 학생이 많아요. 이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렸을 때부터 과도한 사교육을 받으며 짜인 커리큘럼에 따라 공부했거든요. 정해진 과정 내에서 성과를 내 1등을 하는 데에 특화된 거죠. 그런데 대학이나 취업은 그렇지 않잖아요. 과목 선택부터 진로 정하는 것까지 자신이 선택하고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매우 서툰 거예요. 그러니 불안하고 힘들 수밖에요.
만족하며 학교에 다닐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상담하며 학생들 이야기를 들으면, 본인이 선택한 게 거의 없더라고요.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학원에 다니다가 어떤 대학을 가야 할지, 심지어는 대학에 와서도 수강 과목부터 동아리, 대학원 지도교수까지 결정해주는 부모도 있었어요. 이거 엄청 큰 문제예요.
(계속)
서울대 학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문은 무엇일까요? 또 요즘 1020세대가 더 불안한 이유는? 상담실에 찾아 온 학생들에게 김 교수는 어떤 처방을 해줄까요? 김 교수의 인터뷰는 아래 링크에서 이어집니다.
📌서울대 입학해놓고 왜 이렇게 불안해하나
📌잘 쉬어본 경험 없는 아이들
📌잘 쉬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일
📌10분도 필요 없다, 잘 쉬는 아주 간단한 방법
☞"불안해요" 서울대생들이 왜? 정신과 의사 캠퍼스 상주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