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이 제시한 엄격한 판단 기준이 K팝 전속계약 분쟁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고 있다. 엔터업계에서 통용되는 ‘신뢰관계 파탄’이라는 표준계약서상 조항이 해석여지에 따라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어, 법조계와 엔터업계에서는 구체적 조항이 신설되거나 개별적 추가 계약을 통해 분쟁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K팝 그룹 뉴진스·피프티피프티·츄 등의 계약 해지 소송에서 나타난 판례를 보면 '신뢰관계 파탄'은 구체적 계약 위반이 입증돼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법원은 특히 지난달 30일 뉴진스와 어도어 소송에서 명확한 선을 그었다. 뉴진스가 주장한 '민희진 축출로 인한 신뢰관계 파탄'에 대해 법원 측은 "회사의 경영상 판단"이라고 못박았다. 매니지먼트 의무 위반 등을 내세웠지만 구체적 계약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법원이 제시한 기준은 엄격하다. 단순한 불만이나 기대와 다른 경영 방침만으로는 계약 해지 사유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도어 측이 승소하면서 '신뢰관계 파탄' 조항의 남용을 경계하는 법원의 입장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지난해 6월 가수 츄와 전 소속사 간의 소송에서 재판부는 "정산 의무 불이행과 불합리한 정산 구조는 전속계약 신뢰 기반을 붕괴시키는 중대한 계약 위반"이라며 계약해지를 인정했다. 결국 핵심은 계약 위반의 구체성에 달려있다.
이에 법조계는 피프티피프티 기획사 어트랙트와 멤버 3인 간 130억원 규모 손해배상 소송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피프티피프티는 정산 자료 미제공, 건강관리 의무 소홀 등을 내세워 계약 해지를 주장했다. 뉴진스가 주장한 '경영진 교체'와 달리, 피프티피프티는 정산과 건강관리라는 구체적 계약 의무 위반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에 어트랙트 측은 지난해 1월 계약 해지 된 3인과 이들을 빼내려고 시도한 더기버스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다. 지난 8월 22일 1차 변론기일이 열렸고, 이달 28일 2차 변론기일이 예정돼 있다. 소송은 내년 상반기 즈음에 마무리될 전망이다.
문제의 핵심은 '신뢰관계 파탄시 계약해지' 조항 자체의 모호성이다. 이 조항은 2000년대 후반 상대적 약자였던 연예인 권리 보장을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K팝 시장이 급성장하며 연예인의 지식재산권(IP) 가치가 크게 오른 지금, 오히려 악용 소지가 생겼다는 지적이다. 김연수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특정 프로듀서에게만 제작을 맡겨야 한다는 식으로 개별 계약을 명시적으로 해두는 것도 사전에 분쟁을 막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와 엔터업계에서는 판례를 토대로 신뢰관계 파탄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처럼 모호한 조항으로는 분쟁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K팝이 '글로벌 대세'가 된 만큼, 계약 분쟁으로 인한 이미지 타격과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할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기고] 'ESG 유행'은 가도 'G'는 남는다](https://img.newspim.com/news/2025/09/02/250902105328094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