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에 베이징에 다녀왔다. 중국 전승절에 시진핑, 푸틴, 김정은이 나란히 섰던 사진이 떠올랐다. 중국에 모인 20여명 정상들에게 ‘반트럼프’ 말고는 공동의 가치가 없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30여년간 지속된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기반한 질서가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이 중상주의를 주도하고 있고, 반미 연대도 강화되는 모습이다.
베이징 시내의 많은 전기차를 보면서 중국의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발전·송배전 설비, 통신, 배터리, 자율주행 모빌리티의 수준이 연상됐다. 나폴레옹은 청나라를 가리켜 ‘잠자는 사자’라고 했다는데, 이제 그 사자가 깨어나 축적의 시간을 거쳐 질주를 시작한 것일까. 일에 감정이 개입하면 본질이 흐려진다. 우리는 중국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건가. 혐중 감정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1990년대 이후 중국은 한국에 수출시장이자 공급망 기지로서 성장동력을 제공해왔다. 여전히 제1 수출시장, 교역 대상국이지만 2023년 이후 대중 수출이 감소하고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됐다. 중국의 경기 사이클 문제라기보다는 중국이 한국 없이도 공급망을 완성하는 단계에 올랐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지난 30년간 한국이 중국에 필요한 파트너로서 지위를 누렸다면, 이제 그러한 구조가 변하고 있다.
‘중국제조 2025(2015~)’와 ‘14차 5개년 계획(2021~2025)’은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염두에 두고 기술과 산업의 자립자강을 목표로 했다. 인공지능(AI), 전자통신, 산업용 로봇, 전기차, 우주항공, 바이오·제약 등에서 성과가 있었다는 중국 내 평가가 있다. 직접 경쟁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이 느끼는 압박은 크다. 중국과 세계 시장 경쟁 압력뿐 아니라, 중국이 핵심 광물과 전략물자의 전 공정에 걸쳐 수출 관리를 강화하고 있어 공급망 불안도 커졌다. 한국 철강, 석유화학, 조선,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의 어려움도 중국과의 경쟁 구도 속에서 볼 수밖에 없다. 지금 중국은 과잉 설비로 인해 내부의 가격 인하 경쟁이 심하고, 이 압력이 동남아와 유럽 시장으로 분출되고 있다. 이 또한 우리 기업에 부담이다.
지중(知中).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이 우선이다. 중국은 스스로 ‘중국 특색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모델이라고 한다. 2008년 금융위기가 뉴욕 월가에서 발생하고 그 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미국식 모델이 개도국에 유일 해답이 아니며 그걸 강요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하게 됐다. 과학기술과 하이엔드 제조업에 이르기까지 중국이 보인 성과와 중진국 함정을 넘어 1인당 소득 1만3000달러에 이르게 된 과정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한다. 최근에는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을 위해 기술주도 혁신, 내수 강화, 생산성 제고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 연구개발센터를 신설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는데, 중국 내부의 기술 발전 생태계가 강하기 때문이다.
중국을 안다는 사람들은 내부의 치열한 경쟁, 뛰어난 상술, 이익 중심 사고가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고 평가한다. 중국은 주고받기에 철저한 상대방이다. 중국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어려운 문제다. 그간 한국이 경쟁 우위를 지키면서 이익을 누렸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한·미관계, 미·중 갈등, 우리 내부의 정치 양극화는 한·중 간 디커플링을 하라는 압력을 높이고 있다. 시장과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난 30년의 중국 이용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고 관계 단절의 길로 가는 것은 성급하다. 실용주의에 기반해 새로운 용중(用中) 전략을 세워야 하겠다.
서로 국민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데 합의할 필요가 있다. 그다음은 우리 하기 나름이다. 어려운 승부가 될 것이다. 크고 힘센 상대에게 이익을 주면서 나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카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쟁 우위 영역을 지켜내면서, 경쟁이 불가피한 부문도 한국의 전략적 입지와 브랜드를 중국의 생산 능력과 결합하는 창의적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쪼개지는 세계에서도 누군가는 허브 역할을 해야 할 테니까. 국제관계의 기본은 상대가 나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에 성공한다면 앞으로의 30년도 중국을 디딤돌로 삼을 수 있겠지만, 실패하면 큰 장벽에 가로막힐 것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현실을 객관화하는 것, 어떤 상대든 배울 점을 찾는 것이 강자의 자세다.
헌트릭스는 노래한다. 숨지 말고 맞서라고, 두려움 없이 거짓 없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