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미국에서 생산된 원유·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를 추가 도입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축소를 요구할 것을 대비해 방파제를 쌓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7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미국산 원유가 전체 원유 수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4.2%(1억 4000만 배럴)를 기록했다. 2016년 0.23%(245만 배럴)에 비약적으로 늘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던 시기에 물꼬를 튼 게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다. LNG도 마찬가지다. 미국산 LNG 도입은 트럼프 1기 정부 시절 크게 늘었다. 한국가스공사가 2019년 18년간 11조 원 규모의 미국산 LNG를 추가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 때문에 정부 안팎에서는 트럼프 당선을 계기로 한국이 미국산 원유·LNG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현실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블룸버그도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한국 정부 당국자들이 수개월 전부터 트럼프가 승리해 무역 상대국들에 압력을 넣을 경우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스공사가 올해 장기 계약이 종료되는 900만 톤(카타르 490만 톤, 오만 410만 톤) 중 400만 톤만 확보한 뒤 내년부터 발생하는 500만 톤의 공백을 현물거래 등으로 충당하려는 것도 중단기 미국산 도입 확대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더 늘리라는 압박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기준 연간 농식품 수입액 중 미국산 비중 20.9%로 가장 크다. 농식품에선 한국이 86억 7000만 달러 적자지만 일부 검역 협상에서 타결되지 않은 품목이 타깃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이 한국에 요청한 검역 협상 품목은 총 14개로 집계됐다. 이 중 미국이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품목은 캘리포니아산 넥타린(천도복숭아)과 11개 주 감자로, 두 품목은 현재 총 8단계 검역 절차 중 5단계인 위험관리 방안 작성 단계에 진입한 상태다. 나머지 6~8단계는 초안 작성, 행정 예고, 고시 등 행정절차인 만큼 사실상 마지막 단계인 셈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산 감자의 경우 지난해 5월 4단계를 통과했다”며 “현재 국산 고구마와 단풍나무 분재를 미국에 수출하고 미국산 넥타린·감자를 수입하는 식의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검역 협상은 과학적 절차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속도를 높이라는 압력은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대부분의 농산물 관세를 철폐했기 때문에 검역 문제, 새로운 생명공학 제품 승인 절차 개선 등 국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 언급되고 있는 다양한 요구들이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정부는 미국산 소고기·밀 등에 대한 수입 확대 압박은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 농산물이 한미 FTA에 따라 개방돼 있는 데다 물량 제한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국내로 들어오는 전체 농식품 중 미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수입국 중 가장 큰 20.9%(91억 달러)로 농식품 분야 대미 무역수지는 86억 7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