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원자력 합의에 따른 기대와 과제

2025-11-19

경제와 안보 분야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한·미 협력을 명시한 팩트시트(Factsheet)가 최근 발표됐다. 조선업을 비롯해 주요 안보 관련 기술이 포함된 원자력 분야에서 농축·재처리와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 핵연료 농축을 통한 원전 연료 공급 안정성 확보,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통한 관리 부담 완화, 선진 원자로 연료 공급 능력 보유라는 원자력 산업계의 숙원을 해결할 길이 열렸다. 나아가 그동안 경제안보 강화에만 기여했던 원자력 기술이 원잠 건조를 통해 국가 안보에 기여할 길도 생겼으니 환영할 일이다.

원자력업계 숙원 해결할 길 열어

미 의회 승인 등 후속조치 필요

원잠용 SMR 개발에 투자·지원을

한국은 26기의 원자력발전소(원전)를 가동하는 세계 5위의 원자력 강국이다. 원자력은 고리1호기를 가동한 1978년 이래 지난 47년간 총전력의 약 3분의 1을 초저비용으로 공급하며 전기요금을 낮게 유지하는 데에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낮은 전기요금이 급속한 산업 발전과 국민 생활 편의 증진의 원동력으로 작용해온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원자력은 향후 도래할 인공지능(AI)과 탄소중립 시대에 안정적인 저비용 무탄소 전력원으로서 역할을 지속해야 한다.

이런 역할에 필수적 요건은 원전에 사용하는 농축 우라늄 확보다. 현재 전 세계 농축우라늄 공급의 40% 이상은 러시아가 담당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과정에서 천연가스를 자원 무기로 이용했던 것처럼 농축우라늄도 자원 무기화 수단이 될 수 있다. 한국이 자체 우라늄 농축 능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원자력을 통한 진정한 에너지 안보 강화가 가능한 이유다.

사용후 핵연료에는 강한 독성의 방사성 물질이 총량의 약 8% 정도 포함돼 있고, 나머지는 거의 무해한 우라늄이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통해 우라늄을 분리해 내면 일단 영구처분 대상 물질의 양이 대폭 감소한다. 그뿐 아니라 방사성 물질 중 수천 년 이상 방사선을 뿜어내는 초우라늄원소(우라늄보다 무거운 원소)를 분리해 내면 고속중성자원자로 같은 선진 원자로의 연료로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영구처분 관리 기간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이런 유용성 때문에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는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이라는 재처리 기술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일종의 전기화학 기술인데, 플루토늄 같은 핵무기의 원료물질을 선별·분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핵 비확산성이 높은 기술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의 기술적 타당성, 경제성, 안전조치성은 한·미 공동연구를 통해 이미 입증됐다.

그러나 그동안은 한·미 원자력협정의 제약 때문에 한국에서는 사용후핵연료를 직접 사용한 실험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 아이다호국립연구소에 연구원을 파견해 실험을 진행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이번 한·미 합의 덕분에 앞으로는 한국에서도 사용후핵연료를 사용한 기술 개발을 할 단초를 확보해 다행이다.

자주국방에 필수적인 원잠 개발에는 해저 전투 상황이라는 극한 환경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 특수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이 필요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용도별로 다양한 상업용 SMR을 민관 합작으로 개발 중이다. 관련 기술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급이라 할 정도다. 이런 기술 능력이 있어도 경사 요동과 폭뢰 충격을 견디고 급발진 및 장기간 가동이 가능한 원잠용 SMR을 개발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점을 극복할 국가적 의지가 있더라도 원잠 기술 구현에는 장기간 가동 소형원자로에 필수적인 농축도가 높은 우라늄 연료 확보가 관건이다. 이번 한·미 합의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농축도가 높은 핵연료 공급 약속을 받아낸 것은 매우 중요한 성과다.

향후 농축과 재처리, 원잠 기술 구현을 위해서는 한·미 원자력협정 후속 조치, 미국 의회 승인 등 외부 절차가 따라야 한다. 한국 내부 절차도 필요하다. 특히 농축 기술은 한국에서 개발한 적이 없기에 단기적으로 해외 기술을 도입할 것인지, 장기적 안목으로 국내 기술을 개발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재처리 기술 구현과 원잠 개발에는 국민적 공감대가 중요하다. 국내외 난제들이 술술 풀려 원자력 기술이 한국경제와 안보의 핵심 기술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