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생 김형서군(가명·15)은 초등학교에서 친구·선생님과 갈등을 겪은 후 학교 생활을 어려워하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 김군은 침대에 들어가 1년 동안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목욕을 하지 않아 손발엔 각질이 쌓였고 이불 속에서 모바일 게임만 했다. 2023년 9월 은둔생활을 시작한 김군은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서서히 방 밖으로 나오게 됐지만 여전히 외출을 어려워하고 있다.
김군 같은 고립·은둔 청소년 10명 중 4명은 일상으로 복귀한 뒤에도 또다시 고립되는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립·은둔을 겪는 청소년의 70%는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는 25일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전국 9~24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고립·은둔 청소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만9160명이 온라인 자기응답식으로 조사에 참여했고 이중 5484명이 고립·은둔 상태로 집계됐다. 정부는 이번에 처음으로 고립·은둔 청소년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전국 단위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고립 청소년은 12.6%, 은둔 청소년은 16.0%였다. 고립 청소년은 긴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를, 은둔 청소년은 집 안에만 머물며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를 뜻한다. 여성 청소년이 고립·은둔 상태인 비율(70.1%)이 남성 청소년(29.9%)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연령별로는 19~24세 50.4%, 13~18세 45.2%, 9~12세 4.5%가 고립·은둔 상태로 나타났다.
고립·은둔 청소년 10명 중 4명은 재고립·은둔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이 처음 고립·은둔인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한 청소년은 39.7%였다. 고립·은둔 청소년의 71.7%는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고, 55.8%는 ‘은둔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 고립·은둔의 저연령 현상도 나타났다. 10명 중 7명은 고립·은둔을 18세 이하 때 시작했다. 16세 이상 18세 이하 때 시작했다는 응답이 29.7%로 가장 많았고, 19세 이상 24세 이하(27.7%), 13세 이상 15세 이하(25.6%) 순이었다.
고립·은둔 이유는 대인관계(65.5%), 공부 및 학업(48.1%), 가족관계(34.3%)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19~24세의 경우 진로 및 직업을 원인으로 꼽은 비율(47.2%)이 전체 연령대 평균(36.8%)보다 높았다. 고립·은둔 기간은 2년 이상~3년 미만이 17.1%로 가장 많았고 1년 이상~2년 미만(16.7%), 6개월 이상~1년 미만(16.6%), 3년 이상(15.4%) 순으로 이어졌다.
고립·은둔 생활을 하는 청소년들의 삶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4.76점으로 고립·은둔 상태가 아닌 청소년(7.35점)보다 현저히 낮았다. 10명 중 6명(68.6%)은 불규칙한 식사를 했고 5명(56.7%) 이상이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한다고 답했다. 10명 중 4명은 방의 어질러진 물건을 정리정돈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주일 넘게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는 응답도 7.8%였다.
정서적 불안도 큰 것으로 조사됐다. 고립·은둔 청소년 10명 중 6명(62.5%)은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 ‘절망적인 기분이 들 때가 있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63.1%, 59.5%였다.
청소년 당사자와 가족들의 고립·은둔 상황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으로 조사됐다. 가족 10명 중 6명(66.2%)은 청소년의 고립·은둔 생활을 모르거나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청소년 스스로도 고립·은둔 생활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거나(23.7%)나 고립·은둔 생활을 하면서도 고립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도(17.8%) 했다.
최홍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추후 전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대표성 있는 조사를 거쳐야 정확한 실태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앞선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실제 고립·은둔청소년의 비중은 5% 정도로 추측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