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만 외에도 의료의 힘을 빌려 외모를 가꾸거나, 몸 관리를 외주화하는 사례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성장호르몬, 탈모 치료 분야다. 이런 ‘내몸 관리의 외주화’에 대해 “건강에 영향이 없는데도, 아름다운 외모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른 것”이라는 의견과 “의술의 힘을 빌려 컴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다면 뭐가 문제냐”는 의견이 엇갈린다.
성장 상태가 정상적인 아동이 단순히 키가 더 커지기 위해 성장호르몬 주사치료를 받아도 될까. 성장호르몬 치료가 필요한 특발성 저신장증(같은 성별·연령 아동 100명 중 키가 3번째보다 작은 경우)이나 성장호르몬 결핍, 터너증후군 등 다른 질환이 있는 경우에 대해선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키가 자라는 효과도 확인됐고 부작용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적절한 의료적 조치가 있으면 대부분 관리가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성장에 문제가 없는 아동·청소년이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는 비율이 더 높다. 한국보건의료원이 해당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환자 보호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소아 저신장에 해당하지 않으면서 단순히 키 성장만을 위해 치료를 받았다고 응답한 비율이 58.9%를 차지했다.
정상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장호르몬의 효과 및 부작용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윤지은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6일 통화에서 “키 성장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높은 국내 분위기에서 성장호르몬 주사치료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겠다는 취지에서 지난해 연구를 진행했다”면서 “하지만 정상 아동을 대상으로 성장호르몬 주사치료의 안전성·유효성을 연구한 경우는 전혀 확인되지 않아 (연구진이) 문헌고찰 대상으로 최종 선택한 문헌은 0편이었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많은 아동·청소년과 보호자들이 통과의례처럼 ‘성장치료’를 놓고 고민한다. 치료 과정에 들어가는 적잖은 비용 역시 걱정을 키운다. 서울의 유명 성장클리닉에서 제시하는 한달 치료비용은 보통 60만~80만원 선이다. 경북 영천에서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키우고 있는 이모씨(41)가 성장호르몬 치료를 두고 가장 고민이 깊은 지점도 비용 문제다. 이씨는 “아이는 키만 커진다면 주사쯤이야 매일 맞을 수 있다고 조르는데, 가까운 곳엔 병원이 없어 대구까지 나가야 한다”며 “여기저기 알아보니 왕복 교통비까지 더해도 서울이 더 저렴해서 눈 딱 감고 갈까 싶다가, 1년에 1000만원이나 하는 비용이 만만치는 않다 보니 또 망설이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장호르몬 치료를 하는 의료기관에선 키가 커지는 효과를 볼 수 있는 나이는 금방 지나간다며 보호자들의 마음을 더욱 급하게 만든다. 사춘기가 오고 난 뒤엔 치료 효과가 급감할 수 있어 늦어도 여아는 11세, 남아는 13세 이전에 병원을 찾으라고 권유한다.
최적의 시점을 놓칠까 두려워하는 당사자들의 모습은 탈모 치료 분야도 비슷하다. 조금이라도 머리카락이 더 남아있을 때 적극적인 치료를 시작해야 한 가닥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단 마음에 환자들의 마음은 조급해진다.
탈모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실제로 모발 한 가닥이 돈은 물론 치료 성과와도 직결된다고 말한다. 지난해 모발이식 수술을 받은 직장인 유모씨(32)는 “모발이식은 한정된 밭에서 머리카락을 옮겨 심는 거니까 늦어질수록 빈 공간이 더 늘어날 수 있다”며 “키도 평균보다 작은데 머리 상태까지 더 심각하게 되면 결혼정보회사에서 아예 등급조차 못 매기는 상태가 된다는 말에 경제적으로 무리가 됐지만 결국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성장호르몬 주사와 탈모 치료는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의료적 해결책에 적극적으로 의지한다는 점에서 위고비·마운자로를 위시한 비만 약물치료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 의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이런 ‘외주화’는 일면 불가피해 보이는 지점도 있지만, 애초부터 의학으로 해결할 대상이 아닌데도 문제 설정이 잘못된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는 “비만은 당뇨병 등 만성질환 위험을 높여 기대수명을 단축시키는 건강상의 문제가 분명한 것과 달리, 단순히 키가 조금 작거나 남성형 탈모가 있는 정도는 건강 면에선 거의 문제가 안 된다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특히 한국에선 키가 작거나 탈모가 있을 때 고충을 겪는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 문제는 외모에 과도하게 높은 기준을 적용하는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당사자에게는 의술의 힘이라도 빌려야 할 절박한 문제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응하려 탈모·성장치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의료 전반에서 소외된 지역일수록 이들 치료를 받을 때도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불평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누구에게나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탈모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피부과 전문의 A원장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비대면 진료 범위가 넓어지면서 탈모치료제 처방 및 구매 과정에서도 경쟁이 더욱 심해져 결국 환자들은 실질 부담이 줄어드는 혜택을 누렸다”며 “의료적 해법이 모든 면에서 해결책은 아니지만 다른 대책과 함께 쓰이면 긍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