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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8시3분쯤 대구 중구 동성로 한 3층짜리 상가건물. 건물 외벽에 붙은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 포스터 위로 시뻘건 불길이 솟구쳤다.
해당 화재는 일부 누리꾼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영상에는 ‘여기 ○○(가게 상호명)이래’ ‘○○은 제발 무탈하길’ ‘맴찢(마음이 찢어짐)…. 하, 나의 추억이여’ 등의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일본 인기 만화 ‘슬램덩크’의 성지로 알려진 대구의 한 상가가 불에 타 전국 마니아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20일 대구소방본부에 따르면, 슬램덩크 성지로 알려진 상가건물은 지난 13일 발생한 화재로 전소됐다. 소방당국은 전기적 요인으로 불이 난 것으로 추정하고 관련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보낸 상태다.
소방 관계자는 “상가 내부에 LP판이나 각종 소품이 많았으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됐다”며 “사실상 재사용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여 전소 판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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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난 상가는 칵테일 등을 제조해 판매하는 술집이다. 하지만 슬램덩크 마니아들에게서는 꼭 들려봐야 하는 ‘슬덩 성지’ 더욱 유명하다. 슬램덩크 초판 등 수십년 된 만화책과 구하기 어려운 한정판 피규어 등 각종 굿즈가 가득했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상가에서 팔던 일부 칵테일 명칭도 ‘정대만’ ‘강백호’ ‘서태웅’ ‘양호열’ ‘정우성’ ‘윤대협’ 등 슬램덩크 캐릭터 이름으로 지어졌다. 스폐셜 안주로는 ‘산왕 북산전 까나페’도 있었다. 이곳을 자주 찾았다는 윤석준씨(39)는 “전국에 몇 안 되는 슬덩 성지였다”며 “타지에서 지인들이 대구를 찾으면 꼭 데려가던 곳인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 김영호씨(41)도 “2년 전 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되면서 해당 상가를 찾는 방문객도 부쩍 늘어난 것으로 안다”며 “추억이 서린 공간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화재 소식을 들은 일부 누리꾼들도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등을 통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해당 게시글 및 댓글에는 ‘사장님이 모아왔던 슬덩 수집품, 골동품 전부 불타버렸다고 한다. 팬으로서 가슴이 아프다’ ‘우리 아지트 어떡하나’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소장품들이 사라졌다’ 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슬램덩크는 일본 유명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그린 만화다. 1990년부터 6년간 일본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된 이 만화는 1993년 TV 애니메이션 방영과 함께 1990년대 농구 붐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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