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비 27조의 저주…사교육비 1% 늘자 출산율 0.3% 떨어졌다

2025-02-05

서울 강남구에 사는 변호사 A(35) 씨는 3년 전 결혼했지만, 자녀 계획은 아직 없다. 그가 임신을 미루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경력 단절 우려이지만,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도 한몫했다고 한다. ‘대치 키즈’ 출신인 A 씨는 “아이를 낳는다면 내가 자란 방식 그대로 키우게 될 텐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유치원생 시절부터 월 300만~400만 원씩 아이한테 쏟아붓는 주변 지인들을 보면 아이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사교육비 지출이 1% 늘어나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이 최대 0.3%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김태훈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5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연 제37회 인구포럼의 ‘사교육비 지출 증가가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 발표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2007년부터 2023년까지 16년간 물가 수준을 반영한 사교육비 데이터와 합계출산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는 “사교육비 지출이 증가한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빠르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연구에 따르면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1% 증가하면 다음 해 합계출산율은 약 0.192∼0.26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2023년 평균 실질 사교육비 지출은 36.5% 늘어났고 같은 기간 합계출산율은 42.9% 줄었다. 김 교수는 “사교육비 증가가 합계출산율 감소분의 15.5~22.3%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사교육비 지출은 아이가 출생한 후 몇 년이 지나서부터 발생하는 만큼 A 씨와 같은 예비 부모의 출산 결정에 이들이 예상하는 미래의 사교육비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사교육비 증가는 특히 둘째 이상 출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교육비가 1% 증가할 때 첫째 자녀의 합계출산율은 0.068~0.175% 감소했지만 둘째와 셋째 이상 자녀의 합계출산율은 각각 0.303~0.451%, 0.522~0.809%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초중고사교육비조사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초중고 학생 중 79%가 사교육에 참여했다.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7조원으로 추정된다. 2015년 약 18조원에서 8년 만에 50%가 뛰었다. 같은 기간 초중고 학생 수가 609만명에서 521만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사교육 시장 규모는 더 커졌다.

김 교수는 사교육비 증가 원인으로 자녀 수 감소, 학부모의 고학력·고소득화와 같은 인구학적 특성 변화를 들었다. 또 대입 재수생 비율의 상승에도 주목했다. 그는 "한국의 재수생 비율이 높고, 재수 기간의 사교육비 지출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실제 사교육비 지출이 과소 평가됐을 수 있다"며 "재수 입학으로 많은 젊은이의 사회 진출이 늦어짐에 따라 천문학적인 생산 감소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노동 시장 진입과 혼인이 늦춰져 미래 출산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재수생 증가와 관련해 “서울 강남·서초 등 고소득 학군지에서 재수생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재수는 교육 불평등 심화를 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제도”라며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재수생 증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김은정 보사연 부연구위원은 “더 나은 일자리를 얻으려는 문제로 교육비 지출이 증가하는 것”이라며 “사교육비 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함께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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