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인구가 감소되어가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예전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와 표어가 온 사방에 나붙었었다. 그러다가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며 산아제한운동을 하기도 했고 남자들 정관수술 받으면 예비군 훈련도 면제해주던 웃지 못 할 시절이 있었다.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이 내려져있어 인구가 급속도로 늘었다. 어느 순간부터 인구감소로 돌아서더니 이젠 급격한 하향곡선에 나라의 존립마저 걱정하는 시대가 도래 할 줄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핵가족 시대의 흐름과 개인주의가 강한 요즘 젊은 세대들이 우리가 겪지 못 한 환경에 살고 있다. 신생아 출생률은 줄고 노령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 사회적 부담이 가중되는 것 같아 미안함 마저 든다. 어려웠던 시대와 비교하면 지금 잘 사는 시대여서 다행이라면서도 돌아가는 일상생활이 기계인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바쁘고 살기가 팍팍하다 보니 낭만을 누릴 기회도 적다.
젊은 세대들이 각박한 세상에서 돈을 벌어 결혼하고 집장만 하느라 정신없이 살다보니 여유도 없는 너무 힘든 시대가 되었다. 아기 낳아 육아하기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한다. 국제화 시대에 다행인지 자연적인 흐름인지 모르겠으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농촌 곳곳에 외국인 근로자들로 노동력의 상당 부분이 대체됐고 국제결혼이 증가해서인지 외국인이 많이 증가했다. 십 년 전만 해도 일 년에 몇 명 정도로 보기 드물었던 외국인 환자가 이젠 다수가 되어 환자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여하간 인구가 줄어 걱정이 된다. 나의 젊은 시절에는 자녀가 두 명은 기본이고 딸이 둘이면 아들 낳을 때까지 셋, 넷 낳는 경우가 주위에 있었다. 두 딸 아빠인 내게도 상당한 세월동안 아들 하나 더 낳으란 권유와 압박을 받았는데 두 딸도 축복이고 딸들이 잘 성장한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히 생각한다. 그 두 딸이 군위 농촌에서 한여름 태양 볕에 그을리면서 동네 아이들과 들과 냇가로 뛰어다니며 뛰놀던 때가 가장 낭만적이고 추억으로 남는다고 한다. 이젠 독립하여 가정을 이루어 첫 손주를 보았는데 우리 때와 달리 아이 하나 케어 하는데 여간 힘든 게 아니란 걸 깨닫는다.
집에서 살림만 한다면 몰라도 맞벌이 하는 대부분의 신혼부부에겐 육아가 너무 힘든 일이다. 하나도 힘든데 둘 이상은 정말 대단한 애국부모라 생각된다.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힘든 과정을 지켜보며 한순간도 마음 졸이지 않은 적이 없다. 대한민국 모든 부모님들이 겪은 헌신과 희생과정을 절실히 깨닫는다. 지금 이 시대에 두 명은 고사하고 한 명도 낳지 않거나 결혼도 하지 않는 비혼주의자들이 늘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 이런 이유로 파격적인 출산과 육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나라가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불식시키려면 나라에서 다양한 대책으로 젊은 세대들이 결혼할 수 있는 여건을 최대한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이를 낳는 것도 힘들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육아와 교육이 너무 힘들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가임여성 출산율 평균 0.72명에 비해 큰딸이 허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아이 한 명은 낳았으니 평균은 넘었다며 으스대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다. 더 안 낳겠다는 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입장과 한 편으로는 나라걱정이 앞선다.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나 각자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지만 한 편으로는 옛적 퇴근 후 아빠를 기다리던 아이들과 같이 말 타기도 하고 숨바꼭질하며 놀아주던 때가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지금도 새들이 떠나버린 빈 둥지처럼 아이들의 그 공간을 회상하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한 세월 훌쩍’이라더니 필자 역시 아이들 공부시키고 독립하는 걸 보며 세월 참 빨리 지나간다는 걸 깨닫는다. 그나마 지금까지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커줘서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자식은 최고로 소중한 보물이듯이 독립해도 잘 지내고 있겠지 하면서 늘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대한민국 부모의 마음을 안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내일을 그려본다.
두 딸
두 딸의 수없는 전화
마지막엔 항상
“사랑해”
큰딸
“나두요”
작은딸
“나도”
수없이 들어도 듣고 싶고
들을 때마다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져
보고 싶다
많이
큰딸 사랑해!
작은딸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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