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

2025-02-04

“요즘도 삼재가 있나요? 모든게 엉망진창이고 어렵네요. 험한 꼴 당해가며 손톱에 기름때 묻혀 정비소를 차렸고 고객과의 신뢰를 밑천으로 삼아 번듯한 회사로까지 발전시켰는데 나쁜 일이 겹쳐서 오네요.

종업원끼리 사소한 다툼이 싸움으로 번져 불을 내지를 않나, 손님이 맡긴 차를 타고 나가 사고를 내서 합의금에 수리비까지 내고, 또 틀림없다 싶어 갈아탄 주식이 바닥을 치기까지…. ”

외양만 보고 월세를 올려야겠다는 은근한 협박에도 나갈 수 없는 처지라 허리 굽혀 비위를 맞춰야 한다 아이들과의 대화는 언제인지 기억에도 없고 부인과도 등 돌린 지 오래.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혹시라도 바람을 피우지는 않나 의심은 가지만 따지자면 작고 초라해진다. 밥상머리에서도 데면데면 오히려 밖이 편하다. 조금 다가섬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실천으로 가기까지 천리길이다. 마음의 빗장은 꼭꼭 닫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꽃향기에 취해 가정에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재미는 사라지고 혹시 하는 두려움에 생각을 멈추게 한다. 불안감은 어디에서 왔는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꼼꼼히 되짚어보자.

어머니는 불청객처럼 치매를 맞이했다. 슬픔 그 자체였다. 잊힐 수 있다는 현실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새가 되는 꿈을 꿨고 마지막을 정리해야겠다 싶어 꿈과 현실을 끼워 맞추는 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죽음에 담담하고 싶다.

곱고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던 처녀적 모습은 거울 앞에 앉아도 변함이 없다. 속아서 결혼은 했지만 운명이라 받아들였고 아들, 딸 뒷바라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 가슴을 시리게 한다. 추운 겨울에도 남의 집 품을 팔았고 양동이 가득 담은 생선을 이고 동네방네 목이 터져라 외치고 다녔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고 언제라도 약자 편에서 함께 울어줬던 것은 자부심이다. 가족들과 합의 하에 늙고 기운 없는 몸으로 낯선 종교시설에서 나흘을 보낸 뒤 냉정한 이별인사를 했다. 천륜을 끊은 불효다.

긴 침묵이 끝나고 다시 이어가길 화장을 했고 외가 쪽에 선산이 있어 할머니 산소 근처에 모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는 소문만 들었고 직접 확인한 바는 없다. 사망신고만 돼 있고 절에서 정해진 날에 제사를 지냈는데 그나마 서로가 바쁘다는 핑계로 흐지부지 없어졌다. 묘라고 부르기엔 민망했지만 구색은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유골 바로 옆 윗쪽에 심어져 있던 나무가 벼락을 맞은 자국이 보였다. 한 번이 아닌 며칠간에 두 번 같은 장소에서 엎드려 잘못을 고해야 한다. 책에는 안 나오는 특이한 경험이다. 분명한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지만 이쯤에서 그만 노여움을 풀어 달라 간청에 손을 내밀었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지금 우리는 어떤 위치인지 쓸쓸한 미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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