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정원] 장인, 고향으로 돌아가신 날

2025-02-02

솔숲 사이로 따듯한 햇살이 스며드는 산속에 테이블이 깔리고 밥차에서 방금 만든 따듯한 국과 밥이 올라왔다. 옹기종기 앉은 삼십여명의 사람들은 영하의 날씨에 움츠러들었던 속 깊숙이 따듯한 국물을 흘려 보냈다. 나흘 동안 이어진 장인의 장례식이 마무리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장인은 아흔 넘게 사셨고 임종 순간까지 고통 없이 지내셨기에 호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한겨울에 돌아가셨으니 유족들이 조금은 고생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상조회사가 진행하는 장례에는 유족들이 별로 할 것이 없다. 염습의 과정도 타인에게 맡기고 그저 조문객들을 열심히 맞이하는 게 유족의 일이다.

단지 상조회사의 등장만이 장례문화의 변화를 가져온 건 아니었다. 장인의 장례는 본의 아니게 4일장으로 치러졌다. 우리 풍습이 일반인은 3일장인데, 이는 과거 교통의 낙후로 인한 조문객 배려였으니, 요즘은 더 짧아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4일장으로 늘어난 것은 화장장의 넘치는 수요로 예약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요즘 한해 태어나는 인구는 23만명이지만 사망자는 35만명이다. 산부인과는 한산하고 장례식장은 넘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혐오시설이란 편견으로 화장장은 특히 수도권에서 매우 모자라다. 현재 우리나라 사망자의 91.5%가 봉안이나 수목장 등을 하기 위해 화장을 한다. 그러니 화장장이 모자라 장례 일정을 늘리는 매우 모순된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장인은 평생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사셨는데도 고향으로 돌아가 묻히길 원했다. 경상도 군위의 한밤마을이 고향이다. 부림 홍씨인 장인은 살아생전에도 고향 자랑을 자주해 나 역시 처형들과 묘사를 간적이 있다. 큰 선산에는 홍씨들의 묘 백여기가 흩어져 있었다. 직계만 관리해도 벌초에는 어마어마한 공이 들었다. 게다가 요즘엔 멧돼지가 많아 봉분이 제대로 남아나질 않는다. 묘를 덮는 떼장은 곤충이나 지렁이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 멧돼지들이 집중적으로 묘를 파헤친다. 이러니 인력은 없는데 산소를 돌보는 경비만 자꾸 늘어 골머리를 앓는다. 그래서 홍씨들도 흩어져 있는 묘를 파묘하고, 한군데 모아 관리하고자 한다. 아마도 대부분 집안들도 그러할 것이다.

예전보다 십년 이십년을 더 사는 요즘, 오히려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어찌하면 아프지 않고 죽을지, 어찌하면 요양원에서 쓸쓸히 죽지 않을지, 어찌하면 자식들이 잊지 않고 찾아볼 곳에 묻힐지. 이를 모두 충족하면 행복한 죽음이겠으나 가능하지 않기에 사람들은 고민하는 것이리라. 가난했던 시절보다 삶이 풍족하다는 요즘의 죽음 풍경들이 오히려 스산하기 그지없다. 이는 생산력을 지니고 태어나야 할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에 비해 더이상 노동하지 못하는 죽은 이들의 처리는 각자의 몫으로 돌리려는 비정한 자본주의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사회를 성장시키는 데 한몫을 한 인간의 죽음은 마땅히 사회가 행복하게 치러줘야 비로소 선진사회나 복지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고민할 시점이다.

이상엽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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