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건이 아니에요”···불의·불법의 송출·수령 ‘K-입양’ 70년

2025-03-17

국제입양 아동을 받는 국가는 수령국, 보내는 국가는 송출국이다. 송출은 ‘사람을 해외로 내보냄’보다는 ‘물품, 전기, 전파, 정보 따위를 기계적으로 전달함’이란 뜻이 강하다. 수령은 ‘돈이나 물품을 받아들임’이란 뜻뿐이다. 뜻을 다시 들여다본 건 이경은 국경너머인권 대표가 <국민을 버리는 나라>(글항아리)에 적은 문장 때문이다.

“나는 물건이 아니에요.” ‘나’는 생후 15일 된 아기 ‘SK(이름 머리글자)’다. 이 대표는 책의 한 장에서 꿈 형식을 빌려 SK를 대변한다. SK는 2012년 6월 한국에서 미국으로 불법 입양될 뻔했다. 와중에 미국 난민아동수용소에 보내질 위기에도 빠진다. 당시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이던 이 대표가 미국 법정에도 서 가며 송환에 앞장섰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법무부나 외교부 고위 간부들은 SK를 ‘불법에 연루된 자’ 취급했다. 외교부는 미국 고위급이 연락하기 전까지 ‘나 몰라라’ 했다. 주한 미대사관 직원 등 미국인을 상대한 것도 이 대표였다. 이 대표는 “이빨 하나를 맞바꿀 정도의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책은 법무부와 외교부 등 힘 있다는 부처의 몇몇 공무원들에 대한 고발장이기도 하다.

‘SK 사건’은 불법 국제입양(해외입양) 아동을 국가가 되찾은 유일한 사례다. ‘불법 이송’ 아동을 되찾으려는 국가 사례는 그 전후로 거의 없다. 불법이 만연한데도 방치, 방관해 온 게 한국 국제입양의 역사다. 이 대표는 인터뷰에서 SK 전후로도 유지된 불법의 시스템, 국가의 부재 문제를 여러 차례 지적했다.

이 대표는 “국제입양은 불법과 불의의 마켓(시장)에서 이뤄지는 거래”라고 말한다. SK 사건의 불법 시장 무대엔 입양을 종용하는 시설장, 돈을 노리는 브로커 등이 등장한다. “한국은 미국 사람들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두 살 미만의 아기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공급처 역할을 해왔다”고 했다.

책 제목(국민을 버리는 나라)에 문제의식을 담았다. “국민으로 태어났는데 국가가 보호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아이들을 내버리는 겁니다. 취약한 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해외로 판 겁니다. 사람이 아무리 작아도 사람입니다.”

한국은 오래전에 불법으로 ‘고아 호적’을 만들어 내보냈다. 이런 점에서 ‘고아 수출국’이란 오명은 엄밀하지도 않다. ‘불법으로 만든 고아 수출국’이었다. 이 대표는 “‘고아’로 만들어 국제입양을 수월하게 보내는 프로세스의 창시국이 한국이다. 그 시스템이 1980년대부터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했다”고 말한다.

소위 ‘인륜’도 최소한의 성의도 없었다. 한국 입양기관은 세 살, 여섯 살짜리 형제를 프랑스에서 각각 다른 집으로 보내려고도 했다. ‘빠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가 성인이 된 형제에게 사연을 듣는 내용도 책에 들어 있다. 최근까지도 다른 사람이 한국에서 낳은 아기를 자기가 출산한 듯 속여 미국으로 데리고 나가려던 사례가 적발됐다. 이 대표는 영사 업무를 해본 미국 외교관들은 이런 사건에 익숙하다며 “오래전부터 이들은 이런 사안을 ‘불법 입양 시도’가 아니라 ‘인신매매’ 혹은 ‘인신의 불법 이송’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해왔다”고 했다. 이 대표가 2012년 미국 법정에서 판사에게 받은 질문 하나는 “당신 나라에는 사적 입양이 없나요?”다. 사적 입양은 법원이 개입하지 않는 입양이다. 판사가 한국의 입양은 사인들과 사적 기관이 결정해온 사적 입양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이 대표는 받아들였다.

국제입양은 “송출국과 수령국을 합해 100여 개국이 관련된 국제적 현상“이다. 연구자들은 국제입양인 규모를 적게는 50만 명에서 많게는 100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한국 통계는 상대적으로 정확하다. 70년에 걸쳐 사적인 민간 입양 시스템을 구축한 결과다. 20만 명을 내보냈다.

국제입양인들이나 이 대표가 중요시하는 건 ‘정체성’이다. 이 대표는 미국, 덴마크 같은 수령 의회 의원들이나 조사위원회 위원들을 만나 조언을 해줄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지금 국제입양 시스템은 사람의 정체성을 지워버립니다.”

국경머너인권 영문 홈페이지 한 카테고리 제목은 ‘right to origin’이다. 정체성과 뿌리를 찾을 권리다. 이 대표는 “국경너머인권이 성인이 된 국제 입양인들의 인권 이슈 중 제일 주목하는 부분이 훼손된 자신의 정체성을 알 권리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국제인권법 연구자다. 국제형사법 등 국제법과 EU법 관련 전문가 등 유럽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하기도 한다. 박사 학위 논문 ‘국제입양에 있어서 아동 권리의 국제법적 보호’는 서울대 법대에선 국제입양을 다룬 최초의 논문이었다. 논문을 보완해 영문 책 으로 냈다. 이 대표는 정체성을 찾으려는 여러 국가 출신 국제입양인들이 필독서가 됐다고 말한다. 이른바 수령국에서 바라본 국제입양 논문이나 책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지만, 송출국에서 이 문제를 다룬 책이나 논문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법대에서 만난 브라질 출신의 국제입양인이 너덜너덜하게 읽은 책을 가져와 사인해달라고 했다는 일화도 전했다. 이 대표는 개별적인 가족 찾기 같은 일을 하지 않는데도, 그 사정을 모르는 중국, 스리랑카, 인도, 에티오피아 같은 국가 출신 국제입양인들이 관련 서류를 보내거나 조언을 구한다고 했다. 이들 중 입양인 권리 운동을 진행하는 활동가들은 “이 책은 내 손에 무기를 쥐여준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기를 떠나보낸, 팔아버린 국가 문제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들이 그동안은 자신이 처한 상황 등 개별 사례 만을 가지고 싸웠다. 책의 법적 연구 결과에서 그 싸움의 보편적인 근거를 확인한 것”이라고 했다.

이 연구를 하다 보면 가장 자주 접하는 반박이 “그게(해외 입양이) 잘 된 사람도 있고 안 된 사람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라고 한다. 이 대표는 인터뷰 내내 문제는 잘 되고 못 된 제각각의 케이스(개별 사례)가 아니라 불법과 불의한 시장과 연결된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입양 문제를 조사하러 방한한 덴마크 의원이 공식 회의가 끝난 뒤 따로 보자고 하더니 ‘자기가 아는 입양 부모가 정말 정성스럽게, 사랑으로 키운다’고 이야기를 해요. 개별 사례들이 이 구조적인 불의를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했더니, 동의하고 갔습니다.”

‘K-입양’이라고 해야 할까. 한국의 입양 관계자들은 한국 아이가 미국 입양 부모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는 말을 곧잘 한다고 한다. 유럽 ‘수령국’ 사람들도 하는 이야기다.

“2022년에 만난 유럽의 한 위원회 사람은 ‘한국에서 오는 입양은 깨끗하고, 투명하며, 안전하다’고 하더군요. 그게 서유럽 수령국을 뒤덮고 있는 생각입니다. 예방 접종도 잘 되어 있고, 유괴된 아이도 아니고, 정부에서 인가받은 기관들이 서류도 잘 처리하는 점을 두고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거죠. 한국은 어떻게 보면 대기업처럼 국제입양을 처리하니까요.“

국제입양은 아픈 역사만 남긴 채 사라질 듯하다. 이 대표는 여러 서유럽 국가 공적 조사위원회 등에 자문을 해준다.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등 여러 국가 위원회가 국제입양 제도를 조사했다. “한국이 보내겠다 말겠다 하는 논의는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이미 인권 국가를 자처하고, 자랑하는 주요 국가 정부들이 이 제도를 지속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입양아를 안 받겠다고 결론 내거나 공식화 한 상태”라고 했다. 송출국 중엔 중국이 2024년 해외 입양 금지를 발표했다.

이 대표는 독보적이다. 행정고시 출신 잘 나가던 공무원이 연구자로 변신한 걸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한국에선 해외입양과 국제법을 연구하는 이들이 드물다. 70년간 20만 명을 보낸 국가인데도 법 문제를 들여다보는 연구자는 드물다. “돈도 명예도 자리도 보장 못 받는 연구라 그런 듯하다”며 웃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국제입양을 보내 국가의 원죄를 되새기며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어느 나라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 답을 우리가 찾아야죠.”

이 대표는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 같은 국제법을 거울과 같다고 말한다. “이 협약은 지금 기준에서 비판하는 이들도 많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가 만든 규범이다. 이런 법들은 우리를 비추어 보면 어디가 뒤틀렸는지, 어떤 누더기를 걸쳤는지 알 수 있는 거울”이라고 했다. 한국이 70년간 쌓아온 ‘입양 법제’를 두고는 ‘공기’라고 했다. “공기는 들이마시고 사는 사람들을 완전히 지배한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에는 분명히 뭔가가 빠져 있다. 혹은 반대로 어떤 유독 성분이 들어 있을 수 있다. 다만 우리가 거기에 적응해서 살고 있기에 제대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이 대표는 서유럽 등 다른 법제에서 살아온 입양인들이 한국의 법제 문제를 직관적으로 알아챈다고 했다.

‘독성 있는 공기의 성분’을 바꾸는 일은 힘들다. 이 대표는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릅니다. 우리 세대에서 못 해낼지도 모릅니다. 시작은 해봐야 이게 10년 걸릴지 20년 걸릴지 알 수 있지 않나”라고 했다. 이 대표는 그 시작이 국제법 연구와 연구자들의 연대라고 본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갔다. SK 사건은 언뜻 긴박하게 전개되는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불문학(서울대)을 전공했다. 이 대표는 “너무 깊은 기억이라 머릿속에서 그냥 나왔다. 내비게이션 따라가듯 써 내려갔다. 스토리로 풀려고 했다. 국제법 책은 썼는데, 전문가 등 소수가 읽는다. 의미 있는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대중서로 써야 했다”고 말했다.

SK의 안부가 궁금하지는 않을까. 마지막에 한 질문이다. “궁금하지만 알려 하지 않는다. 지금은 연구자라 더 그렇다. 한 사람의 인생에 그런 일을 해도 됐을까 하는 의구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들었다. 법과 원칙을 따르려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 인생을 그냥 이렇게 살듯이 SK도 그의 인생을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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