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양대규 기자] 4대 그룹 중 삼성전자만 지난해 유일하게 기업가치제고(밸류업) 공시를 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가장 많은 의견을 낸 기업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이미 삼성전자가 밸류업 공시의 세부 계획안은 모두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법리스크와 낮은 실적으로 지속적으로 떨어진 주가하락에 대한 부담 등으로 현재 밸류업 공시를 발표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9일 재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4대 기업 중 SK그룹,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모두 밸류업 공시를 제출했으나 국내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만 밸류업 공시를 진행하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함께 삼성그룹의 계열사들도 밸류업 공시를 하지 않았다.
SK그룹은 지난해 10월 28일 지주사인 SK가 기업가치제고계획 공시를 발표했으며, 계열사들도 10월 24일 SK텔레콤, 10월 30일 SK이노베이션, 10월 31일 SK네트웍스, 11월 21일 SK스퀘어, 11월 27일 SK하이닉스의 순으로 개별 공시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4대그룹 중 가장 빠른 지난해 8월 28일 현대자동차의 기업가치제고계획 공시를 시작으로 10월 31일 현대글로비스, 11월 19일 현대모비스, 12월 3일 기아가 각각 공시했다.
LG그룹은 LG전자의 지난해 10월 22일 공시를 시작했으며, LG가 11월 22일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발표했다. 그룹과 같은 날 LG유플러스, LG이노텍, LG에너지솔루션, LG생활건강, LG화학, LG디스플레이 등의 계열사들도 개별 공시했다. 또한 LG전자는 12월 17일 2차 기업가치제고 공시를 발표하며 밸류업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다른 3대 그룹이 지난해 적극적으로 밸류업 공시를 했지만 삼성전자와 삼성 계열사는 별다른 공시를 하지 않을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업계 일부는 삼성전자가 밸류업 공시를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기업가치제고에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15일 삼성전자는 10조원의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10조원은 삼성전자 시가총액(2024년 11월 25일 10시 기준) 약 340조원의 3%에 달하는 수치다.
당시 삼성전자는 이사회를 열고 향후 1년간 총 1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분할 매입하는 자기주식 취득 계획을 의결했다고 공시했다.
3조원 상당의 주식을 3개월 내에 사들여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다음달 17일까지 보통주 5014만4628주, 우선주 691만2036주를 매입한다. 금액으로는 보통주 2조6827억3759만원(주당 5만3500원), 우선주 3172억6245만원(주당 4만5900원) 규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나머지 7조원어치 자사주는 자사주 취득을 위한 개별 이사회 결의 시 주주가치 제고 관점에서 활용 방안과 시기 등에 대해 다각적으로 논의하여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은 2017년 9조3000억원 매입 이후 7년 만이다. 이후 2018년 자사주를 전량 소각한 후 자사주를 취득하지 않았다. 당시 소각한 자사주는 보통주 4억5000만주, 우선주 8000만주 등 약 4조8000억원 규모다.
삼성전자가 밝힌 당시 자사주 매입의 목적은 '주주가치 제고'다. 이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목적과도 일치하다.
정부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주요 목표는 상장 기업이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과 같은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증시를 강화하는 것에 있다.
다만 그럼에도 삼성전자가 적극적으로 밸류업 공시를 발표 못한 것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이재용 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 부당 합병, 회계 부정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2015년 5월 합병하는 과정에서 거짓 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주요 주주 매수, 불법 로비, 시세 조종 등의 부정행위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2월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은 오는 2월 3일 항소심 선고기일을 앞두고 있다.
또한 지난해 삼성전자가 실적 부진으로 생각보다 높은 수익을 내지 못해서 밸류업 공시를 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요청에 의해 국내 기업들이 밸류업 공시를 내놓고 있지만 기업의 밸류업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실적"이라며 "지난해 밸류업 공시가 쏟아지는 중에도 한국의 유가증권시장은 지속적인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주주환원과 주가소각이라는 단기적인 밸류업이 아니라 실제로 실적이 좋아져야 기업가치가 상승한다는 것이다. 8일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잠정 실적 발표에서 시장전망치보다 낮은 매출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29.1% 줄어든 6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시장전망치인 영업이익 7조9705억원을 크게 하회하는 성적이다.
다만 업계는 삼성전자의 밸류업 공시가 생각보다 늦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26일 금융위원회는 김병환 금융위원장 주재로 ‘기업 밸류업 간담회’를 개최했다. 당시 간담회는 삼성전자·KB금융지주·HD한국조선해양·감성코퍼레이션 등 상장사와 국내외 애널리스트들이 참석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상장사들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고 충실히 이행하는 등 밸류업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화답했으며 삼성전자도 밸류업 공시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