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앵거리는 말투부터 바꿔요"…절박했던 '굿파트너' 그 변호사

2024-09-24

드라마 '굿파트너' 쓴 최유나 변호사 인터뷰

최유나(39) 이혼 전문 변호사, 아니 시청률(최고 17.7%)과 화제성(방영 2주차부터 1위)을 모두 잡고 지난주(20일) 종영한 드라마 '굿파트너' 최유나 작가를 만나고 와서 지인에게 그의 인생 얘기를 했더니 이런 말이 바로 튀어나왔다. 예상 못 한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다. "쉽다고?"

최 변호사는 대학(한국외대 영어통번역학과) 시절 남들보다 한참 뒤처진 출발선 앞에서 지레 겁먹고 도망갔다. 그렇게 '도망쳐 도착한 곳(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1기)에도 낙원은 없다'(미우라 켄타로 만화『베르세르크』명대사)는 걸 확인하고는 한 번 더 좌절해야 했다. 바닥을 친 성적 앞에서 생을 놓아버릴까 싶을 정도의 엄청난 심리적 타격을 받았다. 각성 끝에 변호사가 됐지만, 눈앞엔 또 "앞으로 밥 벌어먹긴 어렵겠다" 싶은 현실의 벽이 서 있었다. 좋은 졸업 성적에 영어 실력까지 갖췄지만 8개월 넘게 법무법인(로펌) 문턱을 못 넘었으니 하는 말이다.

노력 대신 지레 겁먹던 20대

사는 게 벅차 움츠렸던 30대

나를 위로하고 되찾은 자존감

"고맙다·미안하다"면 좋은 인생

겨우 들어간 인천 로펌에선 누구나 만만하게 대하는 '20대 어린 여자애' 시절을 거쳐야 했고, 변호사로 치고 올라가야 할 30대 초반에 낳은 첫아들은 인생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자기 혐오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성적의 바닥'을 넘어 '인생의 바닥'을 찍으며 자존감은 곤두박질쳤다.

시간·돈·에너지·힘(권한)…, 무엇 하나 없는 젊은 여자라 맨날 "죄송하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살며 세상의 모든 손가락이 나를 향한다고 느낄 때, 너무 힘들어 살려고 시작한 인스타그램 연재 웹툰 '메리지레드'(팔로어 23만명)가 드라마 '굿파트너'로 이어졌다. 집필 기간 6년, 제작진과 주말마다 10시간 넘는 고통스런 대본 회의를 거치며 쓴 총원고수는 A4 용지로 3000장이 넘었다. 첫 아이 출산 이후 지난 10여년간 맥주 한 잔의 여유조차 없는 삶을 견뎌낸 결과였다.

변호사와 작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둘 다 성공했으니 쉬운 인생일까. 하지만 지난 13일 서울 양재동 법무법인 태성에서 4시간 가까이 들은 그의 과거는 이런 선입견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기보다 쉽지 않았던 인생을 그의 시각에서 정리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뒤처진 출발선, 인생을 걸다

초등학교 때 해외 출장 잦았던 아버지(2012년 작고) 마일리지로 호주 시드니 가족여행을 갔다.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큰 세상을 처음 보곤 뇌가 변할 만큼 충격받았다. 영어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어통번역학과(04학번)에 들어가자마자 영어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외교관 자녀, 외국서 살다 온 애들….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한 동기들을 보면서 "죽어라 해도 쟤네만큼 안 되겠구나" 싶어 멘탈이 무너졌다. 출발선이 달라 따라잡을 수 없다고, 너무 쉽게 포기했다. 지금은 안다. 국내파 친구들이 더 좋은 통역사로 성장한 걸 보면서 그때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하지만 그땐 뒤처진 '출발선'만 보였다.

아버지 권유로 들어간 로스쿨에서 처음 법 공부할 때도 그랬다. 난 ABC부터 시작하는데 이미 사법시험 준비했거나 법대 나온 동기들은 변제이행이니 뭐니 뜻 모를 단어 써가며 판례 스터디를 했다. 다시 한번 뒤처진 '출발선' 앞에서 "인생 망했다"고 좌절했다. 급기야 1학년 1학기 성적은 정말 바닥,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 서울대 로스쿨생 뉴스가 남 일 같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1학년 2학기부터 학교 정독실에서 동기 120명 전원이 같이 공부하면서 각성했다. 동기들과 비교하자 비로소 보였다. 출발선 문제가 아니라 내가 노력을 안 했다는 걸. 늦은 밤 아무도 집에 안 가고, 추석 때 고향 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아, 인생이 끝난 게 아니라 인생을 내려놔야 하는구나,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곤 공부만 해야 하는구나. 다행히 졸업 무렵 '로 클럭'(법관 임용 후보인 재판연구원) 시험 대상자가 될 정도로 최상위권 성적까지 끌어올렸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성적은 좋은데 면접 보는 족족 떨어졌다. 면접관인 한 로펌 대표 변호사한테 물어봤다. 대체 뭐가 부족하냐고. "말투를 어른스럽게 하라"는 피드백이 왔다. 어려 보이는 외모와 앵앵거리는 말투가 문제였다. 이걸 안 바꾸면 변호사로 밥 못 먹겠다 싶어 절박해졌다. 당장 "난 40대 여자 변호사"라고 캐릭터를 설정해 연기하듯 독하게 말투를 바꿨다. 화장과 옷차림까지 전부. 그리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인천 법무법인 로시스 면접까지 불과 1~2주 있었는데, "나이(27)보다 훨씬 들어 보인다"는 말을 들으며 합격했다. 엄청난 성취감과 함께, 이제부터는 어떤 캐릭터로 살 지 내가 정하겠다고 결심했다. 나이조차 어쩔 수 없는 약점이 아니라라는 걸 알았으니까.

세상의 손가락질, 뚫고 나오다

왜 이혼 변호사가 됐느냐고 많이들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10여 년 전만 해도 다들 기피했다. 이혼 부추겨 먹고 산다는 나쁜 이미지에다, 1000만원 안 되는 돈으로 1년 넘게 끄는데 챙길 건 너무 많다. 소송 당사자에겐 큰돈이겠지만 로펌 대표 입장에선 고용한 변호사 월급도 못 뽑는다. 그러니 변호사 본인은 좋은 대접은커녕 지칠 수밖에.

그런데도 난 이혼 변호사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배당받은 사건만 처리하는 여느 신입과 달리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이혼 상담을 자청했다. 당시 인천 조이혼율(1000명당 이혼 건수)은 전국 1위(현재 제주). 게다가 로펌이 1층이라 부부싸움 후 충동적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많았다. 법률 상담이랄 게 없이, 계약까지 가지도 않을 상담료 한 푼 없는 인생 상담에 낮 시간을 할애했다. 밀린 서면은 야근하며 썼다. 대표가 이를 눈여겨봤고, 2년 차에 직원 넷 둔 이혼팀장이 됐다.

막상 맡아보니 이혼 변호사 사무실은 거의 콜센터였다. 소송인들은 불안하면 하루 대여섯 번 넘게 전화한다. 동료 변호사들은 "맡은 40~50건 중 이혼이 한 건만 있어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이혼 사건만 수십 건 하느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힘들어서 참 많이 울었다. 그래도 때려치우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서른 되도록 집 돈 가져다 공부만 했지 사회에 도움이 된 경험이 없는데, 누군가 나를 선택하고 내게 기댄다는 게 감사했다. '굿파트너' 속 늙도록 매 맞고 사는 아내 장면에 "요즘 이렇게 맞는 사람이 어딨냐"는 댓글이 달린 걸 봤다. 그걸 보고 오히려 놀랐다. 황혼 이혼이 내 전체 수임 사건의 절반인데, 매일 1건 이상 폭행 사유로 인한 이혼 상담을 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위기는 5년 차 때 또 찾아왔다. 로스쿨 동기 남편과의 사이에서 첫아이를 낳았는데 이듬해인 돌 될 때까지 정말 우울했다. 365일 매일 오후 7시면 귀가해 밤 1시쯤 아이가 잠들고 나면 이유식 만들고 2시에 잤다. 근무 중엔 양손에 무거운 가방 두세 개씩 들고 인천가정법원 뛰어다니느라 너무 힘든데, 집에선 또 1초도 못 쉬는 날의 연속이었다.

겉보기엔 그럴듯해 보였지만 일·가정, 뭐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뚝뚝 떨어졌다. 소송 상대방 측한테는 "이혼 부추겨 남의 가정 깨는 가정파탄범" 소리 듣고, 의뢰인한테는 "왜 저녁 7시 이후엔 전화 안 받느냐"고 항의받았다. 어르신들은 어리다고 무시하는데, 어린이집에서는 (어른인) 엄마가 더 잘 챙겨야 한다 타박했다.

비단 내 문제라기보다 한국 여성이라면 대부분 20~30대에 다 겪는 일 같다. 그래서 지금도 젊은 여성들 보면 괜히 짠하고,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온갖 어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와 세상의 모든 손가락이 전부 나를 향하는 거 같지만, 이때만 뚫고 나오면 세상은 그렇게 암울하지 않다고.

굿파트너, 목숨 걸고 같이 성장하다

내 인생의 명장면을 꼽는다면 첫 번째가 '이혼' 전문성을 보증하는 '전문분야 등록증서'(변협) 받았을 때(2014), 두 번째가 첫 아이 출산 후 처음 얼굴 봤을 때(2016), 그리고 세 번째가 지난 7월 '굿파트너' 1화 시청률 봤을 때다. 드라마 끝나고 다음 날 아침 시청률 나올 때까지 날밤을 새웠는데 잘못 본 줄 알았다. 김은숙도 박지은도 아니고 완전 무명 신인 작가 첫방이 무려 7.8%라고?

드라마가 잘 되니 전업 작가할 의향이 있는지 질문도 받는다. 답부터 말하자면, 그럴 생각 없다. 변호사로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썼지, 작가 되려고 쓴 게 아니다. 내 경험과 무관할 걸 쓴 자신은 없다. 시청자도 안 볼 거 같다. 무엇보다 내가 작가로서 재능이 있어서 시청률이 잘 나온 게 아니라, 이혼 변호사가 직접 겪은 생생한 이혼 얘기를 써서 재밌었다는 걸 안다.

나는 전업 작가가 아닌 변호사니까 아무리 '고구마'라고 욕먹어도 법을 틀리게 쓰면서까지 시청률을 위한 억지 '사이다'를 날릴 순 없었다. 하지만 법을 잘못 쓰지 않는 선에서, 마지막 16화 탈고 때까지 일 순위는 언제나 재미였다. 남의 돈으로 내 가치관을 고집할 생각은 없었다. 대중의 선택을 받으려면 재미가 정답이었다. 이 정답을 위해 고치고, 또 고쳤다.

첫 방송 시청률에 그렇게 행복했던 이유다. 처음 드라마 쓰기 시작했을 땐 혼자였지만, 이후 프로듀서(PD) 한 명 또 한 명, 감독, 제작사 대표, 여기에 배우가 캐스팅되고, 어느 날 눈 떠 보니 현장 스태프가 한 200명 있었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데다 이 많은 사람이 본업도 아닌 신인 작가 바라보며 고생하는 걸 알기에 시청률 부담이 엄청났는데, 민폐 끼치지 않게 돼 기뻤다.

솔직히 처음부터 이런 마음은 아니었다. 30대 초반 육아에 치여 일과 부부생활 둘 다 힘들 때 털어놓을 데가 없었다. 친구한테 하소연하면 감정 쓰레기통 삼는 거지만 SNS라면 다 같이 공감할 수 있겠다 싶어 '메리지레드'를 썼다.

'굿파트너'도 비슷했다. 가족 반대에 자투리 시간과 잠까지 포기하면서까지 굳이 한 건 내가 위로받고 싶어서였다. 남 얘기 듣기만 하다 내 과거(극 중 한유리·김재희)와 현재(차은경), 이상적 존재(정우진·전은호)가 섞인 등장인물들을 통해 쌓인 감정을 해소했다. 처음엔 이 정도로 만족했다.

그러다 지난 연말 촬영장에 가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악조건을 뚫는 배우들과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는 스태프들의 집중력을 목격하곤 제작진에게 "앞으론 드라마 볼 때 무릎 꿇고 보겠다"고 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방영까지) 7개월 동안 목숨 걸자, 나를 버리자"고 마음먹고 완성한 대본을 전부 다시 썼다. 집 앞에 원룸을 얻어 작업실로 썼는데, 주말이면 내가 가기도 전에 제작진이 먼저 우르르 몰려와 "재미있다, 없다"를 놓고 하루 10시간 넘게 대본 회의를 했다. 7월에만 4㎏ 빠질 만큼 힘들었지만 하고픈 말이 제대로 전달된 거 같아 기쁘다. 결혼도, 심지어 이혼도 하나의 선택이다. 다만 그 선택을 옳게 만들기 위해 모두 말하자.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바람 핀 지상조차 내 분신" 최유나 변호사가 말하는 '굿파트너'

이혼 변호사 경험뿐 아니라 결혼 생활 10년 넘게 하면서 나이 40에 애 둘 둔 엄마가 돼보니 보이는 게 많다. 감정은 젖혀두고 현실적으로 조언하는 '굿파트너' 속 차은경 변호사(장나라 분)는 그렇게 나왔다.

시청자들은 경험 많고 공사 구분 확실한 차 변호사와 그와 함께 성장하는 신입 한유리 변호사(남지현)만 내 분신으로 생각하겠지만, 주인공 전부 다 나였다. 심지어 바람피우는 남편 김지상(지승현)조차 나였다. 바람은 빼고 사랑하는 아이에게 정성 쏟는 모습 말이다. 아빠를 정말 좋아하는 딸 재희(유나) 역시 아빠와 돈독했던 내 어린 시절을 담았다. 가장 사랑하는 아빠이자 베스트프렌드가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다면 어떨까, 그런 상상에서 나왔다.

그런가 하면 워라밸 잘 지키는 전은호 변호사(피오)는 내 이상향이었다. 비록 신입 변호사지만 사랑받고 커서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고, 무엇보다 일을 잘하기에 칼퇴근이 가능한 인물이라서다. 큰애가 태어난 지난 2016년부터 지금까지 두 아이 돌보려 매일 오후 7시 전에 일을 마쳐야 해서 늘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내 모습이 투영돼 있다.

정우진 변호사(김준환)는 오랫동안 옆에 두고 싶은 인물의 전형이었다. 같이 술 마시며 직원들 고충 들어주는 등 회사를 부드럽게 이끌면서도 미래 비전까지 제시하는 제대로 된 관리자를 늘 갈망했는데, 바로 그런 인물이다.

지난 5~6년을 친구 안 만나고 저녁 약속 한 번 없이 오직 법무법인 대정의 변호사 4명 등 극 중 캐릭터하고만 대화하며 살았다. 듣기만 하고 말할 데 없는 직업이라 쌓인 게 많았는데, 대정 변호사들이 온전히 내 얘기를 들어준 덕분에 민폐 끼치지 않고 감정 해소를 잘했다. 탈고 후 처음 2~3일은 "(대본 쓴) 노트북 한강에 던져버려야겠다"고 할 만큼 홀가분했는데, 지금은 이 인물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그만큼 나에게 준 게 진짜 컸구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굿파트너' 대본 작업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었고, 힐링 그 자체였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