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작가 “맛은 어머니…독자 위해 다양한 밥상 차려야죠”

2024-09-24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만화가 허영만(본명 허형만·77), 어느덧 등단 50주년을 맞은 그의 만화 인생을 기념하는 전시가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0월20일까지 ‘종이의 영웅, 칸□의 서사’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선 그의 대표작과 함께 원화, 드로잉, 취재 자료 등 아카이브 자료 2만여점을 선보인다. 7일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 관람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허 작가를 만났다.

“누가 대학교 보내준다더냐.”

허 작가를 만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아버지의 한마디다. 전남 여수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며 미술대학 진학을 꿈꿨지만 아버지의 멸치 어장 사업이 잘되지 않으면서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들은 말인데 지금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요. 제 심장을 열어보면 아마 저 글씨가 새겨져 있을 거예요. 대학을 못 나왔다는 콤플렉스는 서른이 넘어서도 저를 쫓아다녔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그래도 대학은 보내주셔야죠’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대신 어려서부터 즐겨 봤던 만화를 직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서울에 있는 만화가 김석에게 자신을 문하생으로 받아달라고 무작정 편지를 썼다. 김석의 허락으로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에 그의 작업실로 갔지만 문하생이 하는 일이라곤 일본 만화를 베끼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하다간 얻을 게 없겠단 생각에 그는 고향 집에 일이 생겼다는 핑계를 대고 화실을 나왔다.

여수로 돌아와 고등학교 마지막 학기를 마친 허 작가는 졸업식 다음날 어머니가 준 3만5000원을 들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그 후 여러 작가의 문하생 생활을 거쳐 1974년 한국일보 신인만화공모 당선작 ‘집을 찾아서’로 등단했다. 허 작가는 다양한 장르에서 히트작을 내놓았다. 액션물 ‘각시탈’(1974)과 ‘비트’(1994), 어린이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1990), 도박을 다룬 ‘타짜’(1999), 관상을 주제로 한 ‘꼴’(2008) 등이다.

“가족에게도 맨날 밥하고 김치만 차려주면 좋아하겠어요? 하물며 독자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잖아요. 다양한 밥상을 차려줘야 하죠. 늘 다음 소재를 고민하고 준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허 작가의 명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만화 ‘식객’이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연재한 ‘식객’은 트럭에 식재료를 실어 장사하는 ‘성찬’이 제철 식재료와 농민, 요리사들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로 150여 가지 음식을 다뤘다. ‘식객’은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강조한다. ‘쌀’이 주인공인 1권 1화에선 ‘농촌이 무너지면 민족의 뿌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라는 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식객’을 쓰기 전 자료 조사에만 꼬박 3년을 보냈다는 허 작가를 힘들게 한 음식 중 하나는 전남 향토 음식 ‘정어리쌈’이다.

“이름은 정어리지만 생긴 건 멸치거든요. 시장에 가서 ‘이게 정어립니까? 멸치입니까?’ 물었더니 ‘사서 먹기나 하면 되지, 뭘 그런 걸 묻냐’는 답이 돌아왔죠. 동네 어르신, 대학교수한테까지 물어보고 옛날 책을 찾아봐도 정어리쌈에 들어가는 건 새끼 정어리다, 큰 멸치다로 말이 갈리는 거예요.”

끊임없는 현장조사 끝에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정어리쌈에 들어가는 건 대멸치고, 옛날 전남 사람들은 정어리와 멸치를 모두 정어리로 불렀다. 시간이 흘러 여수에선 정어리가 잡히지 않게 돼 지금은 대멸치만 정어리로 칭하며 먹고 있다’였다. ‘식객’ 연재 후에도 2019년부터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을 통해 맛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맛은 어머니예요. 태어나서 가장 먼저 먹는 음식이 어머니가 해준 것이니 입맛은 어머니로부터 정해지죠. 어머니가 해준 것 같은 음식, 앞으로도 계속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광양=황지원 기자 support@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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