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사춘기를 겪는 대한민국

2024-07-26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를 봤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피할 수 없이 알게 되는 노래나 캐릭터, 게임, 영화 같은 것이 있다. 어떤 것은 ‘저것도 한때겠지’라며 꾹 참고 같이 즐기는 노력을 하는가 하면, 어떤 것은 아이들이 의아할 정도로 몰입해서 ‘덕분에 즐겼다’ 할 때도 있다. 딸 둘을 키운 필자의 입장에서 ‘겨울왕국’이나 ‘인사이드 아웃’은 필수 코스였고, 같이 후속편을 기다릴 정도로 좋았다.

경제적 풍요 뒤엔 ‘낙오 공포증’

정치·사회 갈등으로 사방 지뢰밭

기존 방식 붕괴로 혼란만 가중

다양한 생각 인정하고 수용해야

‘인사이드 아웃’은 사람의 감정들에 캐릭터를 부여하여 주인공 라일리의 내면의 이야기를 감정의 캐릭터들로 풀어가는 영화다. 발달심리학적 고증이 잘 되었다는 느낌이 들고, 무엇보다 섬세한 유머가 매력적이다. ‘인사이드 아웃 2’는 라일리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전작의 감정들에 새로운 감정들이 추가되고 내적 갈등을 겪는 이야기다. 밝고 씩씩하며 다정한 ‘좋은 사람’ 라일리가 성취에 대한 열망과 불안에 휩싸이며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짠하게 공감되어서, 전작만큼의 경이로움은 없었지만 후속편이 또 나오면 보리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다 문득 우리 사회도 지금 사춘기를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장기간 고도성장은 전 세계에 유명한 이야기다. 그 결과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에 들어섰다가 2023년 기준으로는 14위를 하고 있다. UN 회원국이 193개, 국제올림픽위원회 회원국이 206개인데, 그 많은 나라 중에 10% 이내에 드는 나라라니 새삼 자랑스럽다. 경제 규모만 커진 게 아니라 국민 소득 수준도 괄목할 만하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2023년에 4400만원을 넘었다. 1960년에 1만원 남짓, 1970년은 8만8000원, 1980년 103만원, 1990년 467만원, 2000년 1377만원, 2010년 2673만원이었으니, 물가 상승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수치 변화다.

성장 자체에 골몰할 때에는 많은 것들이 묻혔다. 먹고 사는 여건이 눈에 띄게 나아지는 동안에는 집단적으로 낙오 공포가 있는 것처럼 물질적 풍요에 매진했다. 하지만 추세적으로 보면 경제성장률은 1973년에 14.9%를 찍은 이후 이미 하락하고 있었다.

다만 1980년대에도 연평균 성장률이 10%가 넘었기 때문에 성장을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87년에 민주화를 성취하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른 후 얄궂게도 1990년대 연평균 성장률은 6%대로 급격히 떨어진다. 커진 몸집을 시스템이 버텨내지 못하고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다.

평생직장이 하루아침에 산산이 흩어지고 나니, 성장도 허망하고 목적의식 자체가 흐려졌다. 마치 영화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버려지고 혼란을 겪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사춘기도 이때 찾아온 것 같다. 기존 체제에 대한 회의, 각자도생, 가족의 붕괴는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에 대한 합의도 깨버렸다. 예컨대 합계출산율이 계속 하락세여도 외환위기 전까지는 1.5명 이상의 정체 상태였는데, 2000년 무렵부터 다시 하락이 시작되어 2005년 1.1명으로 전저점을 찍었다. 그 후 다시 1.26명까지 회복했으나 2014년 세월호 사건,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공교롭게 꺾인 합계출산율은 현재 세계 최저 수준에 이르렀다.

작은 자극에도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춘기처럼 우리의 갈등도 불붙기 기다리는 마른 장작이 쌓여 있는 것 같다. 정치 갈등, 세대 갈증, 젠더 갈등 등 사방이 지뢰밭이다. 묻어 놨던 사실과 감정을 헤집고 매사 싸움거리를 찾아 목소리를 높이는데, 정작 내 뜻대로 되면 좋겠다는 바람 외에 긍정적인 미래상이나 바람직한 지향점은 찾기 어렵다. 그런 논의조차 편 갈라 왜곡되니 전문가 집단도 잔뜩 움츠려든 상태다. 점잖게 살 수 있는데 굳이 험한 꼴 당하기 싫은 것이다.

대한민국이 사춘기라고 생각하면 해법은 있다. 영화에서 감정의 캐릭터들이 라일리의 ‘좋은 사람’ 일면뿐만 아니라 각종 부끄럽고 어리석은 면모까지 결국 라일리로서 사랑하고 끌어안은 것처럼, 우리 사회 안의 다양한 생각과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해야 한다.

어떤 개인도 완전무결한 정체성을 가질 수 없듯이 대한민국도 흠 없는 국가일 수는 없는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도, 절대로 안 되는 것도 없지 않을까. 사춘기를 딛고 진짜 성숙한 어른이 되려면 인정과 수용을 배워 실천해야 한다.

민세진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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