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승차 시위 자발 참여
200여명 “장애인도 시민”
응원봉·손팻말 흔들며 격려
활동가 “이런 적 처음” 감격
“시민을 보호하라.” “장애인도 시민으로.”
24일 오전 8시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승강장에 20~30대 여성들의 구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승강장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다이인(die in·죽은 듯이 누워 항의하는 시위) 행동’에 연대하려고 모인 시민 200여명으로 가득 찼다. 몇몇은 K팝 팬 응원봉을 흔들었다. 전장연 활동가가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면 “맞습니다” 하는 외침과 박수가 쏟아졌다. 통상 전장연 시위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 활동가들이 나섰던 것과 비교하면 이날 시위는 크게 달랐다.
시위 제지·진압 광경도 변했다.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장애인 활동가들을 강제로 끌어내고, 장애인이 휠체어에서 떨어져 다치던 모습이 사라졌다. 이날 공사 직원들이 박경석 전장연 대표를 막고 끌어내려 했지만 “시민을 보호하라” “비켜라”라고 외치며 거세게 항의하는 시민에게 제지당했다.
시민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과 남태령 집회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에 항의하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면서 보고 들은 연대의 경험이 자신을 안국역으로 이끌었다고 입을 모았다. 국회 앞 탄핵 촉구 집회에 나섰던 사람들이 “탄핵 이후엔 소수자가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남태령의 농민들, 지하철역의 장애인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뻗기 시작한 것이다.
출근 전 안국역을 찾았다는 권구름씨(31)는 “국회 앞과 남태령 둘 다 다녀왔는데 그곳에 모였던 시민들이 전장연 시위에도 온다는 사실을 알게 돼 오게 됐다”며 “4호선 혜화역에서 시위하는 장애인 활동가들을 볼 때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는데 오늘 나오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여성으로서 겪은 소외의 경험이 농민·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해 손을 내미는 계기가 됐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윤정은씨(24)는 “소외된 서러움을 연대를 통해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를 얻어 많은 여성이 집회에 나온다고 생각한다”며 “그 경험이 쌓여 오늘 이곳에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다이인 집회 이후 헌법재판소 앞으로 향했다. 시민들이 잇따라 발언에 나서면서 집회는 오전 11시를 넘겨서 진행됐다. 한 시민은 “그간 함께하지 못해 죄송했다”고 말했다. 다른 시민은 “활동가들은 강인해서 행동에 나서는 줄 알았는데, 남태령에 갔을 때 ‘활동가들도 두렵지만 목소리 내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돼 동참하게 됐다”고 했다.
활동가들은 시민들의 연대에 놀라고 감격했다. 전유리 활동가는 “이렇게 많은 시민이 모인 적은 처음이라 놀랐다”고 말했다. 박 대표도 벅찬 목소리로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끌려나갔었는데 오늘은 시민들 덕에 끌려나오지 않아 감사한 마음”이라며 “그간 발언하지 못하거나 보이지 않았던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탄핵 국면을 맞이해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과 함께 터져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