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5조는 ‘농업직불제’ 개념”…한발 빼는 정부

2025-01-02

첫 공익직불제 기본계획 심의 과정에서 별안간 직불제에 대한 용어 논란이 터졌다. 직불제 예산을 5조원으로 확대한다는 표현이 기본계획에 빠진 점을 국회가 추궁하는 과정에서다. 정부는 5조원까지 예산을 늘리는 건 공익직불제의 상위 개념인 ‘농업직불제’라고 설명하는데, 이에 대해 ‘농민 기만’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5∼2029 제1차 공익직불제 기본계획안’에 대한 심의는 지난해말 시작됐다. 세세한 내용보다도 직불제 용어 자체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기본계획에서 농식품부는 2029년까지 농가당 직불금(기본+선택) 지급액을 350만원으로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100만농가 수를 적용하면 필요한 예산은 3조5000억원이다. 올해 정부가 공익직불금 지급을 위해 편성한 예산은 2조9500억원이다. 향후 5년간 5000억원가량을 더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셈인데, 현 정부 핵심 농정공약인 ‘직불제 예산 5조원 확충’과는 거리가 먼 수치여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5조원을 약속한 건 공익직불제가 아닌 농업직불제라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업직불제는 공익직불제 외에도 청년후계농 영농정착 지원사업, 농지이양 은퇴직불, 농업수입안정보험 등 ‘직불성 예산’이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말장난’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최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군산·김제·부안을)은 “(5조원 표현이 처음 나온) 지난 대선 이후 농민 모두가 공익직불제 확대를 생각했다”면서 “(정부 설명은) 농민 기만이자 사기로 비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국정과제를 살펴보면 농식품부 해명은 개운치 않은 측면이 있다.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농업직불금 관련 예산을 5조원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면서 이를 위한 세부 과제로 ▲공익직불제 사각지대 해소 ▲선택직불제 확충 등을 들고 있다. 곧 공익직불제를 확대·개선해 예산을 5조원으로 늘리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5조원 표현이 등장한 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현재보다) 2배 확충’이라는 표현도 눈여겨봐야 한다. 당시 공익직불제 예산이 5조원의 절반인 2조4000억원으로 고정돼 있어 이런 표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농업직불제에 공익직불제 외의 사업이 붙기 시작한 건 현 정부가 출범 1년 만인 2023년 4월 내놓은 ‘농업직불제 확대 개편 방안’부터다. 당시 농식품부는 ‘농가별·품목별 실제 수입·매출이 일정 수준 이상 변동하는 경우 이를 완화하는 프로그램(현재 수입안정보험)’을 도입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를 두고 정부가 5조원 공약을 지키기 어려우니 농업직불제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각종 사업을 포괄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법적 근거가 ‘농업·농촌 공익기능 증진 직접지불제도 운영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공익직불제와 달리 농업직불제는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특히 농가에 보험료를 지원하는 수입안정보험을 농업직불제에 포함하는 것은 어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과 맞물려 1990년대 유럽 등에서 먼저 도입된 직불제는 특정 품목에 대한 가격 지지 대신 정부가 재정 지불을 통해 농가소득을 직접 지지하는 정책으로 통용돼왔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세계 어디서 보험을 직불제에 포함하느냐”면서 “선택직불제 확대가 핵심인데, 우리 농업의 자원 가치를 분석하고 농가별 경영 상태를 파악하는 등 선택직불제 확충을 위한 체계가 부족하다보니 다른 사업을 직불제로 묶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석훈 기자 shaku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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