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 최전선 ‘진은숙의 세계’는

2024-10-24

진은숙과의 대화

이희경 엮음

을유문화사 | 376쪽 | 1만8000원

음악학자 이희경은 “새로운 정보도 쉽게 받아들이는 시각과 달리 새로움과 낯섦에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청각의 특성상, 현대음악은 현대미술보다 더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진은숙이 기자, 글로벌 제약 기업 기술 책임자, 물리학자, 음악가와 나눈 대화를 엮은 이 책은 현대음악 작곡의 최전선에 있는 진은숙의 세계에 접근하는 통로가 된다.

진은숙은 대화에서 자신의 예술관, 작품 창작 배경 등은 물론 프리랜서 작곡가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일부러 모호하게 말하거나 젠체하는 태도로 거장인 양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가 얼마나 음악에 헌신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항상 나의 최대치를 하면서 소리를 질러야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알아줬고.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작품도 그렇게 되었”다고 하고, “메피스토펠레스가 와서 영혼을 팔라고 하면 당장 팔 거예요. 누가 나한테 진짜로 이 곡이 잘된다는 보장을 준다면 무슨 짓이든지 해요”라고 말한다.

이는 동아시아 출신 여성으로서 독일에서 현대음악을 한다는 사실과도 관련 있다. 한국적인 요소를 넣는 대신 보편성에 호소한 진은숙의 음악을 독일 음악계는 오랫동안 외면했다. 이방인에겐 “우리(독일)가 못하는 구석을 채워 주는 역할”만 기대했기 때문이다. 진은숙의 작품이 쌓이고 명성이 올라 더 이상 그의 곡을 연주하지 않으면 망신스러울 상황이 돼서야 독일에서도 진은숙의 곡을 들을 수 있었다.

진은숙은 단호하다. “작품을 만들 때는 이 작품이 누구를 위한 건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 왜냐하면 우리가 당장 누구에게 어필하고 없어지는 예술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쉽게 음표를 적지 않고 한 음 한 음 숙고해 결정하기 위해 손으로 악보를 쓰고, “소리를 듣는 내면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피아노 곡을 쓸 때조차 피아노 한 음도 치지 않는다는 창작 과정도 흥미롭다. 책 말미엔 진은숙의 작품 목록과 연주자들도 수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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