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3 불법계엄 사태 당일 오전 기획재정부가 1200억원 가까운 일반 예비비를 ‘사이버 안보 위협 대응 경비’ 명목으로 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정부 쌈짓돈’으로 불리는 예비비로 불법계엄을 우회 지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기재부에서 받은 ‘예비비 잔액’ 자료와 국무회의 회의록을 종합해 보면, 정부는 계엄 당일인 지난해 12월3일 오전 10시~10시23분 국무회의를 열고 ‘사이버안보 위협 대응 경비(2급 비밀)’ 명목으로 일반 예비비 약 1180억원 지출안을 의결했다. 같은 당 김영환 의원에 따르면 기재부는 이 돈을 국가정보원에 배정했다.
국가재정법상 예비비는 각 중앙관서의 장이 기재부 장관에게 사용 신청을 하고, 기재부 장관이 예비비 사용계획명세서를 작성해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면 대통령 승인을 거쳐 사용하게 된다. 이 중 2급 비밀에 해당하는 예비비 지출안건은 국무회의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나 지출액은 공개되지 않는다. 계엄 당일 오전 2급 비밀인 일반 예비비 지출액이 이번에 확인된 것이다.
민주당에선 이를 두고 ‘사이버 안보 위협’ 명목의 예비비 쓰임새가 계엄과 관련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회 통제를 받지 않아 ‘정부 쌈짓돈’으로 불리는 예비비로 계엄을 우회 지원하려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통상적인 국정원 예산이었을 수는 있으나 윤 전 대통령의 진술 등을 고려했을 때 우회 지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윤 전 대통령이 지난 2월13일 헌법재판소 8차 탄핵심판에서 계엄 당일 홍장원 당시 국정원 1차장에게 전화해 “국정원은 특활비나 자금이 많으니까 후배가 있는 방첩사(국군방첩사령부)를 잘 챙기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은 또한 계엄 당일 저녁 소집한 국무회의에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게 건넨 쪽지를 통해 “예비비를 조속한 시일 내에 충분히 확보하여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국회 해산을 전제한 것으로 보이는 “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 마련”도 함께 지시한 바 있다.
오 의원은 “계엄 당일 의결된 거액의 일반 예비비의 용처를 국회에서 철저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예비비 지출 과정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국회 통제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도 “기재부가 계엄 당일 오전 ‘사이버안보 위협 대응’ 명목으로 배정한 예비비가 계엄 실행과 관련된 활동에 사용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며 “윤 전 대통령이 당시 왜 이렇게 예비비에 집착했는지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정원에 집행하는 예비비 규모는 국가안보상 2급 기밀이라 확인해줄 수 없고, 집행 내역을 알 수 없다”며 “기재부는 예비비가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 기재부 예산 주머니에서 정보기관으로 주머니만 바꿔줄 뿐”이라고 말했다.